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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May 25. 2023

참! 잘했어요

<< 착한 아이 사탕이 >> 강밀아 글, 최덕규 그림 / 글로연 

바쁜 걸음걸이, 유난히 빠르게 지나가는 버스와 자동차로 펼쳐지는 분주한 아침거리.

하루의 시작을 위해 열심히 걸어가던 사람들이 빵냄새에 이끌려 하나둘씩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달콤한 침샘을 자극하며 저절로 발 길이 냄새 따라 걸어가는 곳은 어릴 적 내가 살았던 가게 딸린 우리 집이었다.


다섯 개의 회색 직사락형 알루미늄 문이 사라지면 깨끗한 창너머로 하얀 앞치마를 두르며 밀가루를 만지기 시작하는 듬직한 곰, 아빠 모습이 보였다. 고소하고 구수한 빵 냄새가 온 집안에 스며들었다. 갓 구운 빵을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행운을 그때는 몰랐다. 빵집을 지나갈 때 나는 아빠에 대한 추억과 그때 먹었던 뜨끈한 빵에 대한 추억이 침샘을 자극하였다. 아빠가 반죽한 밀가루가 봉긋한 가슴처럼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다람쥐처럼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아침 준비로 정신없었다. 손님이 들이닥치기 전 늦은 오전 9시쯤에 우리 가족은 빠르게 아침을 먹었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생각할 시간도 없이 빠르게 밥을 먹었다. 그 덕분에 지금도 밥은 쌩 달리는 고속도로 자동차만큼 빠르게 먹는다. 

손님을 맞이하는 엄마 모습은 늘 밝다. 우리 엄마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족보다 손님한테 더 반갑게 맞이하며 활짝 핀 꽃처럼 생기가 넘쳤다. 돈 버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가게 마케팅은 '친절과 부지런함'이었다. 거북이처럼 부지런하게 밤낮으로 일했으며 근면과 성실은 엄마아빠의 이미지가 되었다. 그런 엄마아빠를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도는 두 분을 걱정하기 않게 바른생활이었다.


좁디좁은 부엌에 쌓여만 가는 빵 도구와 그릇이 수북이 쌓이면 엄마는 나를 불렀다. 바쁜 엄마아빠 대신 설거지 몫은 내 차지였다. 동생들은 아직 어리기에 솔선수범하며 쭈그리고 앉아 나보다 큰 도구를 씻고 나면 온몸에 땀이 흥건했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으며 다리게 쥐가 났다. 코에 침을 발라가며 한 다리를 쭉 펴고 다시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대견스러운 듯 나를 바라보는 엄마아빠 모습에 그저 흐뭇했다. 내가 두 분을 위해 뭔가를 했다는 뿌듯함에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가며 칭찬 도장 "참 잘했어요!" 도장받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나 또한 아이였고 친구와 놀고 싶었던 어린아이였다. 엄마아빠 일을 많이 도와준 날에는 상으로 놀 수 있었다. 그날은 해가 지도록 양말에 구멍이 나도록 고무줄 뛰기도 하고 얼음 땡 놀이하면서 목줄 풀어놓은 강아지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날아다녔다. 

생애주기에 따라 나 또한 초등학생을 지나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여전히 가게 일을 돕고 있었지만, 손님을 상대하기에는 남모를 고통이 따라왔다. 당찬 성격인 엄마와는 달리, 난 아주 내성적이며 소심한 아이였다. "어서 오세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 수많은 생각과 할까 말까 고민 끝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니 종종 나를 쳐다보거나 "예?" 하며 돼물어던 손님이 있었다. 상대방 눈을 바라보지 못했고 늘 고개를 숙이며 가능하면 피해 다녔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뭔가를 물으면 "모르겠어요." "못하겠어요"라는 대답을 입에 달고 살아 그 모습을 싫어했던 엄마는 나를 보면 한숨을 쉬곤 했다. 그냥 괜찮다며 안아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해달라고 어리광 피우며 말하지도 못했다. 혹여나 내가 말을 잘못해서 혼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다른 아이처럼 쉽게 시원시원하게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맴돌았다. 그럼 이제 내가 엄마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 끝에 남들에게 가십거리가 되지 않은 모범생 모습과 좋은 성적뿐이었다.


성적이 생각보다 좋지 않자, 엄마는 답답하고 다급해졌다. 아무래도 가게 일을 하다 보니 또래 엄마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아이 성적 이야기가 우선이었다. 가게 일로 자식 공부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던 엄마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웃 사람들이 추천하는 학원에 나를 보냈다. 낯을 많이 가렸던 내가 지금보다 당당해지길 바랐던 엄마는 웅변학원으로 밀어 넣었다. 지금의 스피치 학원이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상대방에게 내 의사를 자신 있게 말하는 방법을 연설문과 같은 원고를 들고 외치는 수업이었는데 정말 싫었다. 연설하는 원고 내용은 학생마다 다 비슷했고 돈 내고 고함지를 수 있는 합법적인 공간일 뿐이었다. 조금만 내 의견을 들어주었다면 소용없었다. 나중에 대학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엄마가 학원 보내 공부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할 때마다 속상했다. 대학 입시 시간이 다가오면서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할 만큼 한다고 생각하는데 성적은 요지부동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난 공부하는 방법을 몰랐다. 누구한테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혼자 해결하려고 했다. 그래도 노트 필기 하나는 잘했기에 다른 친구가 와서 노트를 빌려 간 적은 있었다.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학원도 다니고 하니 당연시 성적이 좋을 거라 생각하는 엄마아빠와는 달리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대학 입시가 다가오면 우리 집은 바빠진다. 아빠가 만든 찹쌀떡은 불티나게 팔렸고 이제는 내가 그 찹쌀떡을 먹으며 합격기원 할 차례가 되었다. 첫 수능시험이라 언론에서는 연신 떠들었고 수험생들은 처음 치는 시험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시작되었다. 시험 지문은 보통 한 장이 넘어갈 정도로 길었고 잠시 놓치면 시험 문제를 다 풀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길고 긴 시험지와 싸움이 끝나는 것도 잠시 곧 답안을 공개하는 EBS 방송 앞으로 집중되어 아직 자유를 만끽하기에는 일렀다. 두근 거리는 심장 소리는 커지며 파르르 떨리는 손 사이로 느껴지는 축축함은 예상한 점수보다 더 낮게 나오면서 시험지 종이에 툭 떨어졌다.

그 결과 사람들이 무시하던 학교에 입학했다. 대학 가면 모든 것이 좋을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고 실망스러운 결과에 죄인처럼 학교를 다녔고 사람을 피하며 투명인간이 되었다.





강밀아가 쓰고 최덕규가 그린 << 착한 아이 사탕이 >> 그림책 책 표지를 보면 이상한 부분이 보인다.

노란색 바탕에 다소곳하게 두 손 모아 예의 바르게 서 있는 아이와는 다르게 그림자는 비딱하게 서 있다.

그림자는 사람 모습 그대로 실루엣을 보여주는데 이 그림자는 아이보다 작으며 공손하지 않지 않다.

주인공 사탕이는 언제나 엄마아빠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다. 넘어져도, 동생이 괴롭혀도, 좋아하고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한 번도 눈길 주지 않았다. 사탕이는 착한 아이니까. 사탕이는 나처럼 마음과는 전혀 다르게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 어느 날 밤, 사탕잉가 착하게 자고 있는데 사탕이 그림자가 사탕이를 깨웠다. 

"넌 왜 네 마음이랑 다르게 행동하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그건....... 나는 착한 아이라서 그래. 착한 아이는 그러면 안 되거든." 

"뭐, 착한 아이는 그러면 안 된다고? 아니야! 착한 아이도 울고 싶을 때는 울고, 화날 땐 화내도 되는 거야.

사탕이 그림자가 사탕이에게 한 말에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눈물, 콧물이 뒤엉킨 채 루돌프 코처럼 빨개질 만큼 풀고 또 풀었다. 어릴 적 난 사탕이처럼 내 강점에 솔직하지 못했다. 그저 부모님이 걱정할 까봐 전전긍긍하며 속앓이 한 것은 "참! 잘했어요."가 아니라 스스로를 괴롭히는 행위였다. 내가 생각했던 효도는 엄마아빠의 칭찬이 아닌 무건운 짐이었다. 그때 내가 힘들다고 엄마나 아빠한테 조금이라도 이야기했더라면 그 중압감이 이토록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을 텐데.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 (양찬순 지은이 / 다산북스) 책 저자는 "내 편에서 먼저 거부당하고 상처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 잘 지내야 한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어릴 적 나는 부모에게 당하고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착한 아이 '사탕이'가 되었다. "참! 잘했어요."를 듣기 위해 내 감정을 속이며 나를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되면서 내 아이만큼은 '착한 아이 사탕이'가 되길 원하지 않았다. 무조건 엄마아빠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네 감정에 솔직하라고 늘 말한다.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해주는 분위기는 아이에게 큰 용기를 준다. 누군가가 날 믿고 내 편이 되어준다고 생각하게 면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며 용기 갖는다. 다행히 요즘 나오는 그림책에는 '착한 아이 증후군' 콤플렉스에 대해 언급하며 극복하는 방법도 제시한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면, 그림책으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방법도 있다.





[ '착한 아이 증후군 ' 그림책 큐레이션 ]


- 착해야 하나요? : 로렌 차일드 글, 그림 / 장미란 옮김 / 책읽는곰 2021

- 착한 달걀 : 조리 존 글, 피트 오즈월드 그림 / 김경희 옮김 / 길벗어린이2022

- 제제벨 : 토니 로스 글, 그림 / 민유리 옮김 / 키위북스 2020

- 율라리와 착한 아이 : 데이비드 스몰 글, 그림 / 최순희 옮김 / 느림보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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