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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미인 앨리 May 27. 2023

타인의 시선 속에서

<< 줄무늬가 생겼어요 >> 데이비드 섀넌 글, 그림 / 비룡소

겨우 대학에 들어간 나는 죄인처럼 다녔다. 다른 사람한테 자랑할 수 있는 학교가 아니었기에 부모님 눈치와 타인의 시선은 파릇파릇한 젊은 시절을 어두운 세상으로 안내했다.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스스로를 죄인처럼 취급했다. 고등학생처럼 집, 학교, 집으로 오가며 엄마아빠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장학금을 받으면 뭔가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4.5점 학점에 매달렸다. 다행히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지만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모님 생각에 쓰디쓴 아픔이 밀려왔다. 붙잡을 시간도 없이 시간은 흘러갔고 내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아직 뭘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취업 생각하기에는 찜찜했다. 더구나 그 시절 취업 조건은 공부보다는 외모가 우선시라 현실적으로 취업이 어려웠다. 키가 크고 날씬한 동기들은 학점이 그다지 높지 않아도 교수 추천을 받아 현장 실습을 나갈 수 있었고 더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회사에서 바라는 조건에 밀려난 나와 동기들은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이었다. 마침 한 선배가 '편입'이야기를 꺼냈다. 편입으로 원하는 학교로 갈 수 있으며 원하는 공부를 계속하며 미래에 대한 생각을 조금 지연시킬 수 있다는 희소식이었다. 다만 편입이 수능시험보다 더 치열하고 힘드니 각오하고 시작하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말로만 듣고는 잘 몰라 편입전문 학원을 알아보고 가 보았다. 


집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곳으로 고시학원이 많은 지역 골목에 편입 학원이 줄지어 서있었다. 그중에서 편입으로 유명한 학원을 방문했다. 강의실보다 더 큰 교실에 수많은 수험생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공부하고 있었다. 입시 학원을 다니지 않았던 내 눈에는 이 모습이 낯설었다. 벽에는 대학교별로 입시 정보가 다닥다닥 붙여졌다. 꿀을 찾기 위해 열심히 날갯짓하며 꽃을 찾으러 가는 벌들이 여기에 모여있었다. 상담실에서 들은 내용은 내 머리를 멍하게 했다. 문과와 이과 과목으로 나뉘는데 주로 영어와 수학 그리고 국어가 주요 과목이며 대부분 수험생 시험이 만점에 가깝기 때문에 면접으로 당락을 결정 지으니 필기와 면접을 잘 보도록 공부하며 학원에서 주는 정보를 꼭 메모했다가 이용하라고 했다. '편입' 목표가 생기자 의욕이 불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타인의 시선과 내가 끝까지 해낼 수 있을지 시작도 하지 전에 불안이 엄습했다. 내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기회를 놓은다면 크게 후회할 것 같아 고3 때 보다 더 열심히 집중하였다. 더웠던 날이 지나가고 매서운 추위가 느껴질 때, 편입 시험 시간이 다가왔다. 3군데 원서서류를 작성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턱없이 높은 대학 원서 응시료에 치를 떨며 시험을 쳤다. 한 번에 합격하면 좋으련만 그런 기쁨은 나에게 사치인 듯 계속 떨어지다 한 곳만 남았다.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았던 나는 마지막 시험을 치고 면접 본 후 발표날만 초초하게 기다렸다. 떨리는 마음으로 합격 명단자가 적힌 벽보를 보면서 쉴 새 없이 눈으로 내 이름 찾기 시작했다. 아래로 아래로 계속 시선이 내려가는 그때 드디어 내 이름이 보였다. 다시 한번 더 확이한 결과 분명 내 이름이었다. 기쁨을 만끽하며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결과를 말했다. 이제야 엄마아빠 표정도 밝아지면서 그렇게 어두웠던 내 미래가 터널 속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숨구멍이 조금 틔이기 시작한 대학생활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예전과 달라진 내 행동에 엄마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가게 일도 리포트나 동아리 핑계 되면서 도와주지 않자, 엄마의 불만은 쌓였다. 적금처럼 적립되던 엄마의 불평은 만기 된 적금을 탄 표정과는 다르게 터져버렸다. 내 입장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엄마와 엄마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 입장이 맞붙으면서 만나면 으르렁 거려 집안이 썰렁하였다. 아빠가 중재자로 나섰지만 한계가 있었다. 대학 친구들은 하나같이 나보고 늦은 나이에 사춘기라며 웃곤 했지만 엄마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다. 더구나 "두 사람은 상극이라 좀 떨어져 있어야 해."라고 말한 점쟁이 말이 계속 내 귀에 맴돌아서인지 며칠이라도 좋으니 엄마와 좀 떨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찼다. 내 간절함이 통한 걸까. 마침 학교에서 미국으로 워킹홀리데이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학점이 인정되는 만큼 지원자는 4.0 이상의 성적과 1차 필기시험, 2차 면접을 통과해야 참가할 수 있었다. 약 일 년 정도 미국에 머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시험에 떨어지면 부끄럽다는 생각에 식구들 몰래 지원했고 지원한 동기들 또한 모두 경쟁자였기에, 보이지 않는 경쟁으로 학과 분위기는 서늘했다. 15명이 지원했으며 1차 필기시험과 2차 면접시험을 같은 날 동시에 보았다. 필기시험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면접시험은 걱정이었다. 지도교수와 외국인 교수 두 명이 참석하여 면접 보는 거라 어떤 질문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지 예상 면접 질문을 뽑아 외우기에 바빴다. 가능하면 쉬운 단어로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한 나는 지원한 동기, 미국 생활에 대한 각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문제로 연습하고 또 연습하였다.  면접 볼 때 어떻게 생각해서 대답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창백해진 내 모습에 동기들 또한 바짝 긴장하며 시험을 치렀다. 일주일이 지나고 프로그램에 대한 합격이 발표되었다. "야! 워킹홀로데이 가는 인원 발표 났어. 어서 가 보자!"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는 생각과는 달리 두근거리는 속도만큼 내 발은 빠르게 전진했다. 뚫어져라 쳐다보는 합격자 명단에 밑에부터 훑어 올라갔다. 딱 중간에서 내 눈은 멈추었고, 내 이름을 확인했다. 최종 합격자 명단에 있는 내 이름을 한 번 더 확인한 후 승리의 미소로 자축했다. 2학기부터 프로그램이 진행되기에 여름 방학 동안 준비해야 했다. 1학기 기말 시험이 끝나고 집에 미국으로 가게 된 이유를 말하며 허락을 구했다. 엄마와 적당한 거리 두기를 위해 간다는 말은 빼고 해외 경험을 쌓고 싶었고 돈은 따로 필요 없다며 내가 꼭 가야 함을 어필했다. 생각보다 엄마아빠는 어렵지 않게 허락해 주었고 난 소중하게 간직한 쌈짓돈을 여기에 투자했다. 비행기 값과 숙소값은 학교에서 지원해 주기 때문에 생활비만 환정해서 가면 되었다. 아르바이트로 모아 둔 100만을 환전하며 그렇게 미국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한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유의 나라, 선진국의 대명사인 미국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아름다운 곳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인종 차별은 있었고,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사람을 이용하거나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동성 커플 그리고 무기 소유가 인정되었음을 확실히 알게 된 총기 난기 사건을 직접 경험하면서 다른 행성에 온 기분이었다. 내가 있던 곳은 남부에서도 제일 끝에 있는 섬, 휴양지였다. 은퇴해서 온 사람이 많았고 관광객들이 많았다. 그들이 동양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태도는 나를 불편하게 했다. 지금이나 K-한류 문화가 방탄소년단 음악으로 인해 좋은 이미지가 많지만 그때만 해도 'South Korea'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나라도 있냐는 식으로 바라보는 눈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하며 힘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타인의 시선 때문에 내가 하고 싶었던 행동을 못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남의 사생활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서 온 여성들이 한국으로 들어가기를 싫어한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여기서는 방해받지 않고 할 수 있었다. 새로운 내가 탄생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미국 사람들에게 너무 자신을 다 알리지 말라던 주의점을 명심하며 미국 문화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그렇게 미국 생활이 끝날 무렵 동기들은 미국에 남아 어학연수를 다니거나 미국 여행을 좀 하다 간다는 부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미국생활하면서 절대 부모님 손을 빌리지 않겠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경제적으로 힘든 나는 더 이상 미국에 머물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으로 가 있는 사이 엄마와의 거리는 조금 좁혀졌다. 어색한 포옹이었지만 엄마는 나를 반겼고 한국 생활은 다시 시작되었다. 2학기가 시작되는 가을이면 대학교 생활이 시작되고 2월이 아닌 8월에 졸업할 수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제 한국 시차에 적응되면서 2학기 대학생활을 기다리는 동안 가게 일을 도왔다. 미국으로 간 이유 중 하나가 내성적인 내 성격을 바꾸는 것도 있었기 때문에 예전보다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손님을 대했다. 반가운 이웃들은 그동안 어디 갔냐면서 말하는 끝에 "그래, 유학 갔다 왔다고? 영어 잘하겠네. 취업은 이제 문제없겠다."라는 엉뚱한 소리에 내 동공은 점점 더 커져갔다. 워킹홀러데이가 아닌 미국 어학연수 간걸로 포장되어 있었다. 순간 내 표정은 딱딱해지면서 웃지고 울지도 않은 어정쩡한 표정으로 손님을 보냈다. 엄마한테 말했지만 원망은 내한테로 되돌아왔다. "워킹데이인가 뭔가 그게 어학연수이지 않니?"라는 물음에 할 말이 없었다. 다르다고 변명해 봤자 엄마한테는 그게 그게였다. 이제 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로 도전하려고 했던 일이 사살이 아닌 거짓으로 포장되어 난 또다시 남의 시선을 의식했던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로 돌아가버렸다.





- 출처: 알라딘 서점 -

데이비드 섀넌이 쓰고 그린 <<줄무늬가 생겼어요>> 그림책은 타인의 시선으로 힘들어하는 카밀라 이야기다. 

카밀라는 아욱 콩을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친구들이 아욱 콩을 다 싫어하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 학교 가는 첫날, 옷을 42번이나 갈아입었는데도 맘에 드는 옷을 고르지 못하다가 온몸이 알록달록한 줄무늬로 변해버린다. 학교에 간 카밀라는 놀림을 당하고 몸 무늬가 계속 바뀐다. 놀란 부모님은 의사 선생님을 불러 진료하고 약 처방을 받지만, 카밀라의 모습은 더 악화되고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자꾸만 바뀐다. 의사 힘으로 치료되지 않자, 과학자들이 와서 진단하고 치료하지만 점점 더 흉측스럽게 변해버리고 아무 소용없었다. 카밀라 이야기는 세상에 알려져 카밀라는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괴물로 변해간다. 결국 카밀라는 벽과 한 몸이 되면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여러 분야의 수많은 전문가가 와서 치료했지만 어떤 치료법도 통하지 않는다. 절망에 빠질 무렵 뜻밖에도 아주 인자한 차림의 할머니가 와서 카밀라가 그토록 좋아하는 아욱 콩을 먹으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벽이 된 카밀라는 무척 먹고 싶었지만 또다시 남들 시선 때문에 고민하며 거절한다. 할머니가 돌아가려는 순간, 카밀라는 큰 용기를 내어 그토록 좋아하는 아욱 콩을 삼킨다. 그 순간 카밀라는 마법처럼 본래 자기 모습으로 돌아왔다. 남들 시선 때문에 좋아하는 아욱 콩을 먹지 않았던 카밀라는 이제 달라졌다. 여전히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만 당당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아욱 콩을 먹으며 미소 짓는다. 


<< 지식인의 옷장 >> 저자 임성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패선의 완성은 옷이 아니라 자신감 있는 표정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나 다이어트 한 몸매가 아니라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멋지다고 생각할 수 있는 당당한 자신감이라고 말한다.

카밀라가 마지막 장면에서 활짝 웃으며 아욱 콩을 맛있게 그리고 즐겁게 먹는 것처럼 나 또한 카밀라의 당당함이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인정하고 용기 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어쩌라고, 내 맘이지.' 광고 문구처럼 타인의 시선을 맞설 수 있는 당당함이 절실하다. 물론 당장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어렵다. 평생을 내성적이며 소극적으로 지내왔는데 하루아침에 외향적이며 적극적으로 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카밀라가 남의 시선 때문에 흉측한 모습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처럼 완벽하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해도 예전보다 그 시선에 무뎌질 수 있다. 마지막 카밀라가 자신 있게 자기가 좋아하는 아욱 콩을 즐겁게 먹는 장면처럼, 나 또한 조금씩 당당해질 수 있음을 믿는다.  한국사회에서 남의 시선을 완전히 무시하기는 힘들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중요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사람은 자기 살기에 바빠 타인 생활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어쩌면 남이 아닌 나 자신일 수도 있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인 내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면 << 줄무늬가 생겼어요 >> 그림책 주인공 카밀라처럼 용기 내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지금 당장 해보길 바란다. 큰 용기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아욱 콩을 기분 좋게 먹는 카밀라처럼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 남의 시선에 대한 그림책 큐레이션 ]

- 난 나의 춤을 춰: 다비드 칼리 글/클로틸드 들라크루아 그림/이세진 옮김/모래알 2021

- 유리 아이: 베아트리체 알레마냐 글, 그림/최혜진 옮김/이마주 2021

- 슈퍼 거북: 유설화 글, 그림/책읽는곰 2014

- 도시 악어: 글라인, 이화진 글/루리 그림/요요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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