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책미인 앨리 Oct 03. 2022

불편하고도 어려운 관계

<< 어려워 >> (라울 니에토 구리디 / 미디어창비 2021)

오른손잡이가 왼손을 사용하면 참 불편하고 어렵다. 

그래도 가끔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면 필요할 때 용이하다.

나에게는 외손 같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엄마"다.


'엄마'라는 단어는 나에게 왼손이다. 어렵고 불편하며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엄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서로 닮았다는 말을 들으면 어색해하고 싫어한다.

왜 그런 걸까. 당신의 좋지 않은 점을 닮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문득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엄마와 포옹해본 적이 거의 없다. 

살기 바빠 그럴 수도 있다지만 나에게 엄마는 따스함보다 차가움이 더 익숙하다.


엄마는 항상 나를 볼 때 밝은 표정보다 어두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안타까운 것인지 그냥 내 모든 것이 답답하고 한심해 보이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늘 2%가 부족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드르륵

휴대폰 진동 소리가 울리고 발신이가 엄마라고 뜨면 깜짝 놀란다.

무슨 일로 나를 또 다그치려고 하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나 혼자 생각하기 바쁘다.

그리고 뭔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다. 엄마가 부탁한 일을 거절하거나 미룬 날에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서 내가 먼저 안부 인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마치 달팽이 걸음처럼 오래 걸린다.

모처럼 마음잡고 전화를 걸면 바로 통화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엄마가 필요할 때 내가 받지 않으면 야단 법석인데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을 때는 거기에 맞는 합당한 근거를 대며 변명한다.

이렇게 반복이 계속되면서 엄마와 통화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난 왜 이렇게 엄마가 불편하고 어려울까.


다른 친구들이 엄마와 함께 팔짱을 끼고 쇼핑을 하거나 미용실 가면 부러웠다.

고민 상담해주며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는 엄마 모습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그래서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우리 아이에게만큼은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대하려고 노력한다.

기질적으로 애교를 부리며 친근감 있게 하지는 못하지만 들어주고 호응해주며 소통하며 공감하려고 노력한다.


엄마한테 난 첫 아이이기에 애정이 더 가고 안쓰러워하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엄마가 생각하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난 항상 죄인 같은 생각이 들어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한다. 마치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바라는 것처럼 나에게는 엄마의 바람이 언제나 무거운 짐이었다.

무엇이든 엄마 손으로 직접 해결해야 속이 편한 엄마는 하나에서 열까지 간섭할 때가 많았다.

엄마 말 들어 좋지 않은 일이 있었냐는 식의 자기 합리화로 항상 난 엄마 말하는 대로 해야만 했다.

24시간 쉼 없이 일하는 엄마 모습을 직접 보기 때문에 쉽게 거절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엄마에 대한 부당함이 쌓이면서 소소하게 반항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늦게 사춘기가 왔다며 한 마디씩 했지만 엄마의 선택이 아닌 내 선택도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내 나름대로 발버둥 치며 지내기 시작했고 지금도 사소한 반항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추석 명절을 지내고 서울로 가는 동생을 배웅하기 위해 엄마는 동생과 함께 역으로 향했다.

차가 많이 밀려 겨우 기차 시간에 맞춰 역에 도착한 나는 동생을 배웅할 수 있었다.

동생이 플랫폼에서 사라진 후 엄마는 나를 힐끔 보며 좋지 않은 표정을 지으셨다.

한심하고 답답하다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와 함께 집으로 가는 것을 거부하였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넌 알 것 없다."라는 차가운 말을 남기고 나를 떠밀듯이 먼저 보냈다.

무거운 걸음으로 버스에 올라타고 엄마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지만 엄마는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분명 엄마가 나를 싫어하지 않는 것은 알겠는데 이 불편하고 어려운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슴도치가 가진 가시처럼 엄마에게 다가가면 어디에 찔릴 것 같은 이 불편하고 어려운 관계가 엄마와 나 사이를 더 멀게만 하는 것 같다.



- 출처: 알라딘 -

<< 어려워 >> (라울 니에토 구리디 / 창비출판사) 그림책에는 상대방에게 말하는 것이 몹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아이가 등장한다. 대답하는 것도 집중하는 것도 특히 말문이 여는 것이 몹시 어렵다고 말한다.

그게 다 시끄러운 소리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아주 조금씩 용기를 내어 아주 작은 목소리라도 말문을 여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주인공 아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보인다. 말문 여는 것이 몹시 어렵다고 말하는 아이 모습에서 내가 보였다. 불편하고 어려운 그 첫걸음을 주인공 아이처럼 작은 목소리라도 낼 수 있는 용기가 나에게는 필요하다.

특히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불편하고도 어려운 관계에 놓인 엄마에게 주인공 아이의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번아웃과 만성질병으로 몸이 많이 약해진 엄마이지만 난 여전히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나약해진 모습에 애처롭게 느껴지지만 여전히 왼손처럼 어렵고 불편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언제쯤 이 어색한 관계가 사라질까.


"어이쿠. 우리 큰 공주 왔어." 하며 따뜻한 미소로 나를 반겨주는 날이 오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흔적을 지우는 지우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