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아

1. (후편) 각자의 입장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아

1. (전편) 각자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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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가방에서

조화 다발을 꺼내 파올로의 묘비 앞에 올렸다.


참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공동 묘지가 이렇게 평온한 장소이었던가 의아했다.



나는 역시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라,

그냥 그녀의 뒤에 별 상관없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묘비에는 미소를 띈 파올로의 사진이 함께 있었다.


그녀는 이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파올로가 그리웠다.



그녀와

이제 혼자인 그녀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괜히 울화가 치밀었다.


규정 속도를 지키며 운전하는 나에게

늦게 간다고 빵빵거리는 뒷차에

나는 더 빵빵거리며 욕을 했다.


"이탈리아 진짜 다 거지 같아."



그녀는 이런 나의 생경한 모습에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물어볼 말이 많았다.

어떤 것은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았지만,



스산한 참바람이 일기 시작하는 해질녘,

메인 광장의 바에

아무말 없이 앉아 있는 것은 더 안 될 것 같아서 입을 열었다.


"홍콩에 돌아갈 생각은 없어?"

"여기 있을 생각이야.

파올로가 요리도 다 하고,

집안일도 도맡아 해서 나는 이제 혼자서

어떻게 해야할 지 아무것도 모르겠어.

그 때는 정말 그런 게 당연한 줄 알고 고맙다는 소리 한번 못했는데."


그녀는 다시 가방에서 티슈를 꺼내 얼굴을 훔쳤다.



"엄마는 뭐라셔? 오라고 안 하셔?

"엄마한테 이야기 안했어.

우리 엄마가 이제 일흔이 넘었는데,

내가 외국에서 이런 일 겪은 줄 알면 충격 받으실 것 같아서."


나는, 그런 말을 하는 그녀가 더 충격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는 좀 필요 이상으로 격분해서 말했던 것 같다.

그녀의 상황을 나도 모르게

나에게 이입시킨 것 같기도 하다.


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나의 미래의 한 조각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섭고 화가 났다.



"그래도 엄마는 아셔야 하지 않을까...?

친오빠하고는 이런 얘기했다고 했잖아?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계속 여기 혼자 있어도 괜찮아?"



그녀는 홍콩에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애도 없고,

그 흔한 개 한 마리 없고

이탈리아 말이 익숙한 것도 아니고, 딱히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겠어."



내 속이 답답해져 왔다.


왜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걸까.



"그래도 홍콩에 친구라도 있지 않아? 어쨌든 엄마도 있고."

"가기 싫어. 내가 홍콩을 떠난지가 한 20년이 되어가는데.

연락하는 친구도 없어."




나는 너무 흥분해 있었다.

나는 이쯤에서 그녀를 종용하기를 그만두었다.



초저녁 바람이 차가웠다.

처음으로 그녀와 그의 집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강가의 아담하지만 고급스러운 그의 집에는

과하지 않지만 엣지 있는

그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그녀는 파올로가 만들어 놓은 오리 파스타 소스가

냉동실에 있다며 간단히 파스타를 먹을거냐고 물었다.


나는 오리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파올로가 만든 음식을 좋아했기에

흔쾌히 먹는다고 했다.



우리는 거실 티비에서 나오는

낱말 맞추기 프로그램을 보며

평생을 같이 산 노부부처럼

오리 파스타를 먹었다.

식기 부딪히는 소리만 가끔씩 작은 거실을 울렸다.


나는

오리 냄새가 역시나 맞지 않아

거의 남겼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가져 온 것을 건넸다.


"이건 김치찌개야. 너 한국 음식 좋아하잖아.

그리고 이건 소아베 와인인데,

몇 년 전에 파올로 별장에 다 같이 갔을 때

파올로랑 그 근처 샵에서 같이 산거야. 기억나?

칸티나에 내려갔더니 아직도 이걸 내가 가지고 있었더라고,

그래서 가져왔어."



우리는 함께 소아베 와인을 마시고

다시 노부부처럼 말없이

이탈리아어 더빙의 미국 드라마를 보았다.



분명 친구를 위로하러 온 것인데,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가 말은 안 했지만

아마 그녀도 느꺘을 것이다.

나는 하루 종일, 그리고 지금 이 거실 소파에서도

화가 났다가 속이 답답했다가

그랬다.




나에게 안방 침대에서 편하게 자라고 했지만,

나는 왠지 파올로가 자던 침대에서 몸을

뉘이기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서 얇은 모포 한장을 덮고

거실의 작은 소파에 누웠다.


오리털 이불이 있는데,

높은 장위에(이탈리아의 고택은 천장이 2-3미터 정도로 높은 경우가 많음) 있어서

아직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키가 좀 더 큰 내가 사다리로 꺼내주겠다고 하니,

위험하다고 괜찮다고 극구 사양했다.


가끔 파올로의 동네 친구가 와서

소소한 일을 도와주는 모양이었다.


소파에 누운 동안

꺼내 주지 못한

오리털 이불을 생각했다.

'점점 날씨가 더 추워질텐데...'




오랜 시간 운전을 한 탓인지

저녁 식사후 와인을 마셔서 인지

금새 깊은 잠에 들었다.


일어나니 아침이었다.

노랗고 포근한 햇살이

거실 창에 드리운 레이스 블라인드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느긋하게 일어나

그녀와 잠깐 올드 타운을 걸었다.

카페 앞에 앉아

일요일 평화롭게 시내를 거니는 사람들을 보며

브리오쉬와 카푸치노를 먹었다.



"파올로 전부인 창고가 밀라노에 있는데,

파올로가 자기 짐을 거기에 많이 두었더라고.

좋은 가구들이나 그림들이 많아."

"어떻게 할건데?"

"처분해야 되는데, 아직 어떻게 처분할지 모르겠어."





그녀는 강가 주차장까지 나를 배웅해 주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미안해. 내가 내 얘기도 많이 안 하고,

너한테 별 말도 못하고 그냥 이렇게 가서."


그녀는 다시 잠깐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솔직히 뭔가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었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소용돌이쳤다.



햇살은 여전히 따사로웠다.

나는

차창을 열고 선루프도 열고

라디오를 크게 틀었다.

70년대 이탈리아 팝이 기분 좋게 흘러나왔다.




가는 길에 있는 큰 몰에 들렸다.


명품 숍에 들려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밝은 파란색의 숄더백 하나와

내 스타일이 아닌

마르니 울체크 코트를 하나를 그냥 샀다.


평소에 쓰지 않는 큰 돈이었다.

나는 일시불로 담담하게 결제했다.




이제 태양은 뉘엿뉘엿 다음 날로 넘어가고 있었다.


빨간 노을 때문에

서쪽으로 곧게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가

마치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슴 속에서 아까부터

울렁울렁거리던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내 삶을 살자. 내 삶을 살아야 해."


집에 도착하기까지

한번 터진 방언처럼

이 말을 도대체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까처럼 화가 나거나 답답한 느낌은 없었다.




뭔가 그 사이 내가 정화된 느낌이었다.


집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치 앨리스가 호기심으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듯 차 문을 활짝 열었다.



집을 올려다 보니 거실 창문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지만

그것은 이제 나에게 이미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그것을 느끼는 순간

그 새로운 느낌이 참 좋아서

잠시 집 밖에 서 있었다.




그 날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동그란 달이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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