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계획한 것이 있다.
구체적인 목표가 아니라 나만의 루틴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에는 내가 너무 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일단 일상을 유지할 기초 체력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4개월이 지난 지금,
8시에 눈을 떠
핸드폰으로 오늘의 부동산 기사를 보면서 잠을 깬다.
(이탈리아 바닷가에 사는 사람치고 무미건조한 편)
침대에서 일어나 오늘의 양말을 골라 신고
(양말에 민감한 편. 아침에는 혈약순환이 안 되서 그런지 발이 차갑다)
아이패드로 스위스 클래식 FM 라디오를 틀고
(보통 아침엔 바하나 서정적인 바로크 음악이 많이 나온다)
테라스에 있는 귤 나무, 꽃 나무, 시소, 바질, 로스마리, 기타 등등 허브에 물을 준다.
스테인레스 전기 포트에 물을 끓여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괜히 모카포트에 커피를 끓이기도 한다. 마시진 않고, 아침에 맡는 커피 냄새가 그리울 때 그냥.
아침엔 그냥 맹물이 좋다. 맹물을 대신할만한 차도 아직 발견하지 못 함)
오늘의 과일, 보통 사과나 키위를 깎고,
비타민 및 건강 보조제 2알, 프로 바이오틱스 한 봉을 먹는다.
운동할 때 어지러우니까 달달한 빵 한 쪽을 간단히 먹고,
따뜻한 물, 찬 물을 번갈아 세안제 없이 세수를 하고,
빌리프 스킨, 키엘 아보카도 아이크림, 카말돌리 프로폴리스 립밤, 에스티로더 에센스를 바르고,
눈썹을 다듬고 그린다.
(문신을 아직 못 한데다 눈썹 숱이 별로 없어서 잊지 않고 아침마다 그리는 편)
1시간 반 동안 요코와 페이스타임으로 아슈탕가 요가 또는 스트레칭을 한다.
점심을 준비하고,
일을 한다.
12시. 점심을 먹고,
일을 한다.
오후 2시. 한 시간 동안 온라인으로 위빠사나 명상을 하고
일을 한다.
6시 반. 저녁을 준비하고,
저녁을 먹고
일을 하거나 k팝 들으면서 목욕하거나
넷플릭스를 본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상온의 레드와인을 마신다.
맥주는 언제부턴가 별로다.
에일이나 논필터는 괜찮은데, 라거류는 정말 별로 몸에서 안 받는 듯.
그런데 이상하게 라임을 넣은 코로나는 좋다.
라임이 들어가서 그런지, 멕시코 테루아가 있어서 그런지
왠지 맥주에서 마르게리타 맛이 나는 느낌이라.
이를 구석구석 닦고, 세안 후
아침 화장품 + 끈적끈적한 시세이도 고농축 크림을 바른다.
이상하게 잠 자기 전인데도 신경이 쓰여 눈썹은 꼭 그린다.
일요일은 하루 종일 잘 때도 있다.
장을 보거나, 밀린 빨래를 하고, 집을 청소한다. 쓰레기도 버리고.
일주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정신을 차려보면 계절이 바뀌어 있다.
시간에는 가속도가 붙고
생각은 과거에 정지된 느낌이다.
어느 한편으로는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좀 더 벌자 싶고,
어느 한편으로는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하고싶은 것 하자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