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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이안 Apr 04. 2024

가방을 메는 연습

가방과 나

가방 메는 연습을 한다. 

이른 아침 목적지로 향하기 전 가방부터 메는 연습을 한다. 

그 안에 든 것을 지키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우선 미움이 가득하고,

2015년부터의 네 사진이 가득하다.

시간의 더께가 내려앉아 무게를 더하고,

주말의 담소는 어느새 모두 휘발되었다.

즐거운 일들이 회오리바람처럼 몰아쳤다 사라진 자리에 나와 가방이 남았다.


품에 소중하게 끌어안고 

만원 전동차를 탄다 행여 누군가 미움을 눈치챌까, 미움을 도둑맞을까, 

행여 분노가 사방으로 튀어나오진 않을까,

미움과 분노가 품 속의 소중한 것처럼 안겨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지켜야 할 자산이 되어버린 해묵은 감정들.


지키기 위해선 제대로 멜 줄 알아야 한다. 

지키기 위해선 때로 다른 방법도 시도할 줄 알아야 한다. 


무의식적인 몸짓처럼 익숙해진 감정에 과감하게 가위질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미움도 분노도 상실이나 슬픔도 자책하는 마음이나 어떤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마음도

어느 정도 털을 정돈하면 

작고 귀여운 것이 돼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어떤 것은 충분히 가벼워질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렇지 않은 것은 가방의 충분한 공간을 차지하며 독보적인 존재를 드러낸다. 

다른 것과 구별되는 단 하나의 존재. 

어쩌면 그것은 내가 자신을 알아차렸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는다. 


한편 미용을 한 감정은 

유치원 때, 구멍가게 아저씨의 불친절함에 품은 분노나

짝꿍에 대한 미움 정도로 작다. 


외계 행성에서 수십 광년 떨어진 지구를 바라보듯 

거인 같은 몸뚱이로 먼지 같이 작아진 감정을 보면서 

가방 메는 연습을 한다.


어떤 것은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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