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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이안 May 07. 2024

러브레터

부주의하게 쓴 편지

보고 읽는 건 고층 건물과 이메일뿐이다.

튀니지에서 도자기를 굽는 여성을 보고

너와 함께 갔던 도자기 마을이 생각났다.

토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는데

네가 웃었던가, 그런 세세한 건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할 일은

깨진 거울에게 미안해하는 일.

부주의함에 미안해하는 일.


보고 읽는 건 고층 건물과 이메일뿐이다.

그렇지 않은 시간, 나는

나사가 빠진 의자, 깨진 거울, 균형이 맞지 않는 탁자, 잊힌 기념품, 아무도 꺼내보지 않는 상장 같다.


우울은 가끔

긴 잠을 자는 즐거움을 흔들어 깨우고 싶어 한다.


보고 읽는 건 고층건물과 이메일뿐이다.

너를 생각하지 않는 날도 있다.

어떤 날은 많이 생각한다.

생각과 꿈에 등장하는 빈도수는 비례하진 않는다.

네가 나올까 봐 끝까지 꿈을 경청한다 그럼에도

어떤 꿈은 알아차리기도 전에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것과 무관하게 퇴사하면 나는

긴 벤치에 너처럼 누워 있을 것이다.

바라보는 하늘이 어떻든,

차분한 울스카프 같은 네 목소리를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고생했다고 말해줄 것이다.


부녀가 운영하는 케이크 가게에서

케이크를 사들고

더는 설레지 않지만 정든 거리를 걸어갈 것이다.


벤치에 케이크와 나란히 앉아

초를 켜고

폭우 속에서 찢어진 케이크 상자를 안고 있던 내게

튼튼한 타포린 백 하나를 건네준 그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할 것이다.


네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어땠던가

귀 기울이다 잠이 들 것이다.




월,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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