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차 안에서 이웃집 아주머니를 봤다. 반듯한 이마와 얇은 초승달 같은 눈은 쌍꺼풀이 졌다. 가만히 있어도 웃는 눈인데 마스크를 하고 있어서 하관의 표정은 가려져 있다. 검은색 점퍼를 입고 무릎에는 역시 검은색 가방을 올려뒀다. 다소곳하게 앉은 여인의 시선은 먼 곳을 향했다
건너편에는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역시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휴대폰을 보는 소년이 있다. 창석이보다 훨씬 체구가 크지만 어쩐지 십 대 또래인 것 같다. 여인과 건너편 소년에게서 시선을 돌린 이유는 더는 아무도 창석이의 안부를 궁금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이 궁금한 것은 남겨진 여인이 혼자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마저도 지인들이 모인 식사자리나 티타임에서 어쩌다 흘러나온 질문이며 이제 창석이는 공공연한 금지어가 되었다. 수영장에서 우연히 만난 동네 사람은 창석이가 청년이 되면 미남이었을 거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창석이의 얼굴을 떠올렸지만 그건 태어나지 않을 아이의 얼굴을 더듬는 것과 닮았다 가끔, 너의 나이 든 얼굴을 떠올려보지만 이미 이곳에서 네가 살았던 한 계절이 막을 내렸다
머리가 하얗게 세기 시작해 어느 순간부터 염색을 그만둔 너와 마트에 가서 망고를 사고 전설의 할리우드 배우가 나오는 액션 영화를 보고 도서관에 가서 네가 그린 그림을 감상하고 블루베리가 가득 올려진 케이크를 먹고 부부가 운영하는 빵집에서 호밀빵을 사 먹는데 그건 마치 태어나지 않은 네 얼굴을 만져보는 기분이다. 사방이 부드럽기만 한 암흑을 걷는 것 같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독수리를 얻어 키우는 것 같다
환승역에서 내린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질 때 나는 그만 여인을 놓친다. 검은 파마머리, 아담한 체구에 검은색 점퍼를 입은 여인들은 사방에 있다. 역사 안 커다란 현수막을 내걸고 한 상인이 목청을 높여 소리친다. 노란 바탕에 붉은색으로 적힌 대박 할인이란 글씨 앞으로 어떤 익숙한 모습이 지나간 것 같아 돌아본다. 호리호리한 키에 하얗게 센 머리. 나 혼자 세어본 네가 살아보지 않은 계절. 네가 태어나지 않은 날들. 홀로 독수리를 키워온 시간이 군중 속으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