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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이안 Oct 10. 2024

내가 다니던 회사에는 유령이 살았어

 깨어 있을 때의 지민은, 지민이다. 내가 이십여 년간 봐온 익숙한 모습이다. 175cm가 넘는 큰 키에 어깨가 넓고 노랗게 염색한 머리는 허리까지 닿는다. 목소리가 크고 발음이 또렷하다. 꽤 위풍당당한 외양이라 지민을 한 번 본 사람들은 그 이후에도 지민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물론 기억하는 포인트는 저마다 다르다.

 덩치 큰 애? 머리 탈색한 애? 목소리 큰 애? 겉모습과 다르게 묘하게 수줍음이 많던 애?


 그리고 겪어보면 지민이 꽤나 섬세하면서도 어떤  부분에 천착하다 못해 상상의 나래를 무궁무진하게 펼치는 유형임을 알게 된다. 사실 지민이 깊게 파고드는 대상은  생각엔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뭐든  먹고  사는 것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내게 지민이 천착하는 대상은 도통 이해불가다. 물론 사람마다 중요도를 갖는 문제가 다르지만 이를 테면 지민은 이런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깊숙이 생각한다.


 어제는 내가 퇴근길에 사 온 떡볶이를 먹으면서 회사 얘기를 했다. 지민도 반년 전 까지는 회사에 다녔다.

 "그러니까 그 회사에 유령이 있었다니까."

 지민은 김말이 튀김부터 집어 들면서 화제를 꺼냈다.  

 "그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마 2주 정도 지났을 때였나. 마감이 잡힌 업무가 있어서 좀 바빴어. 일하다 보니까 자꾸 옆 부서에서 인기척이 들리는 거야. 서류 더미를 부스럭대며 정리하거나 마우스를 클릭하거나 그런 소음 있잖아. 내 자리와 옆 부서 사이에는 건물 기둥이 있고 높은 파티션도 세워져 있거든. 그것도 그렇지만 같이 일할 일도 전혀 없어서 사실 그 부서에 따로 갈 일은 없었어.  

 난 당연히 거기 이사가 아직 퇴근을 안 한 줄 알았어. 그 부서의 사원이나 과장은 아까 퇴근하는 걸 봤고. 근데 그날따라 늦게까지 마무리를 하다 보니 층에 나만 남은 거야. 이사가 당연히 있는 줄 알고 옆 부서를 갔어. 인사라도 하려고 했는데, 그 부서에 아무도 없더라. 이미 모두 퇴근했더라고. 알고 보니 그 이사는 집이 멀어서 평소에 늘 30분 정도 일찍 퇴근을 하더라고. 그걸 알고는 너무 무서웠잖아."  

 지민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무서웠다는 것 치고는 지민은 꽤 자주 야근을 했다. 야근이 잦은 회사였다.

 "그 이후에도 자주 봤어?"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 유령에게 선물 받아봤어?"

 내 표정을 본 지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있지, 그 사무실에는 분명 뭔가 살고 있었거든. 내가 너네 집에 와서 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 와서 머물러 있는 거야. 이따금 인기척도 내고, 일하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말이야. 너 그거 알아? 내가 생각보다 꽤 공손하거든. 어쨌든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존재잖아. 이미 그 존재를 느끼고 있는데 어떻게 무시하니? 출근할 때, 퇴근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구성원을 향해 인사했지."

"소리 내서?"

나는 별생각 없이 물었다.

"얘는"

지민은 의외로 폭소를 하면서 대답했다.

 "그래도 주변에 사람들 눈이 있는데 허공에 대고 인사하진 않지. 마음으로."

 지민은 가슴을 두드렸다.

"여기 가슴으로 인사하는 거야. 오늘 하루 고생 많았습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지민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나도 모르게 풉 웃음이 터졌다.

 "나중엔 인사뿐만 아니라 뭐 여러 가지 얘길 하게 되더라. 오늘은 너무 지치네요. 비싸게 주고 먹은 밥이 맛이 너무 없었어요. 요즘 너무 일이 많아요, 좀 덜 바쁠 순 없을까요? 맨날 못살게 구는 저 김 부장 좀 어떻게 해주세요, 등등 근데 말이야."

 지민이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말했다.

 "맨날 나한테 두루뭉술하게 일 던져주고, 일 못한다고 사사건건 구박하던 그 김 부장."

 기억난다. 나중엔 도가 지나쳐 비하 발언까지 하던 사람이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며 핀잔주는 클라이언트에게 지민이 발끈해 반박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자초지종을 알게 된 부장은 지민을 따로 불러서 클라이언트는 너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인데 그렇게 응대해서 되겠냐는 말을 했었다.

 " 사람 결국에 회사에서 사고 터져서 말이야, 시말서 쓰고 정직당했잖아."

 "응?"  

 "그게 다 내가 보이지 않는 구성원에게 공손히 요청한 덕분이야. 내가 뭐 힘이 있니. 그렇게라도 마음을 토로했더니 선물처럼 그 인간이 벌을 받았지 뭐야."

 지민이 진지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너 그만둘 때까지도 괴롭히던 사람 아니었어? 그 얘긴 처음 듣는데?"

 "나도 오늘 전 회사 사람에게 들은 소식이야."

 지민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껏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도 잊지 마. 이 공간은 우리만 사는 게 아니거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동거 중이야."


 지민이 환하게 웃었다. 뭐가 어떻든 지민이 덧니를 드러내며 활짝 웃은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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