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이안 Oct 07. 2024

지민이 두 번째로 좋아하는 장소

 출근 준비를 할 때 지민은 자고 있었다. 지민은 아침잠이 많았다. 한 번은 집에 중요한 서류를 두고 나오는 바람에 지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전 8시였다. 지민은 당연히 받을 리 없었다. 수십 번 전화를 걸어도 애꿎은 통화음만 이어졌다. 지민의 잠은 깊었다. 흔들어 깨워도 일어날까 말까 했다. 그렇게 매번 혼곤한 잠을 자는 사람은 처음 봤다. 어쩌면 지민은 밤마다 심해를 유영하는 문어였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니 덤보 문어라 해두자. 아기 코끼리 덤보를 닮은 생김새로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먹잇감을 찾아다닌다. 덤보 문어가 사는 곳은 햇빛이 닿지 않는 암흑의 세계다. 어마어마한 수압을 이겨내고 수면 밖으로 나오려면 굉장한 힘이 필요하다. 지민이 잠에서 쉽게 깨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덤보 문어가 희미한 빛이 있는 곳을 향해 쉼 없이 지느러미를 움직인다. 아직 지민이 도달하지 못한 수면 밖 휴대폰은 쉼 없이 울린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열린 창문 틈으로 바람이 불었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휘감고 어디선가 낮은 비트의 힙합이 들려왔다. 비트는 점점 가까이 크게 다가왔다가 이내 멀어졌다.

 ‘시작부터 하는 게 아니었어. 그건 내 실수야. 애초부터 우린 삐걱댔어. 처음부터 함께하는 게 아니었어. 누가 그랬지, 우린 참 잘 어울린다고.’

 달리는 오토바이가 외부 스피커로 틀어놓은 음악이었다. 좋아하는 힙합가수의 음악이라 비트는 낯익었다. 가사도 다 알고 있었다. 헤어진 연인에게 쓴 편지였다. 물론 지민과 나의 관계가 연인 사이는 아니었지만, 실수란 단어가 유난히 크게 와닿았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저기 창 밖으로 걷는 사람들 모두 실수를 한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황급히 달리거나, 나처럼 잰걸음을 걷는 사람들. 모두 다르게 생기고 나이도 다르고 생활 환경도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실수를 한다. 누군가 내게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좋아하는 장소를 지민과 공유하기 시작한 것이라 답할 것이다.


 현관문을 열자 고요한 공백이 나를 맞이했다. 집 안은 묘하게 차분했다. 인공지능 스피커의 전원은 꺼져 있고 식탁에는 지민이 사 온 꽃들이 시들어갔다. 고장이 잦은 벽시계만 오늘은 어쩐 일인지 분주하게 초침을 움직이며 제 일을 하고 있었다.

 굳게 닫힌 방문을 열기 무섭게 야단스러운 소음이 들렸다. 방문 앞에 세워둔 옷걸이에서 뭔가 떨어진 것 같았다. 단단한 물체인지 꽤나 큰 소리가 났지만 침대에서 자고 있는 지민은 잠잠했다. 그 애는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심해를 유영 중이었다.

 이제 막 주름이 생기기 시작한 희고 얇은 피부 위로 노랗게 염색한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물결쳐 흘렀다. 한때 노란 머리카락은 애니메이션에서 현실 세계로 빠져나온 캐릭터처럼 보였다. 그만큼 잘 어울렸다. 시간은 죄가 없었다. 누군가 말했듯, 나이는 단지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횟수에 불과했다. 그래서 매년 증가하는 상수에 집착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노란 머리카락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매력도가 하락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민은 지상의 빛을 향해 올라가길 단념하고 다시 심해로 돌아가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먹잇감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표정이 평온한 걸 보면 덤보 문어로 심해에서 살아가는 삶은 상상보다 만족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애를 깨우는 걸 단념하고 돌아섰다. 바닥에 떨어진 건 짙은 푸시카 컬러의 미니 백이었다. 붉은빛에 가까운 분홍색 비즈로 만들어졌고, 비즈는 그늘진 곳에서도 반짝반짝 빛났다. 그리고 아주 작았다. 단단한 재질이라 휴대폰 하나 구겨 넣기도 어렵지 싶었다. 유치원 아이에게 매 주기엔 너무 화려했고, 이걸 들 사람은 지민 밖에 없었다. 지민은 그런 걸 좋아했다. 그 애는 뭐든 쓸모가 있다고 했다. 지민의 지론에 따르면 예쁜 것을 보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예쁜 것은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지민의 방에 온갖 잡동사니가 굴러다니는 건 그 탓이었다. 일곱 평형 크기의 방은 침대를 중심으로 온통 크고 작은 소품으로 가득했다.

 이곳은 지민이  번째로 좋아하는 장소였다. 키티 오십 주년을 맞아 구입했다는 거대한 실물 인형부터 앙증맞은 캐릭터가 귀여워 만져봤는데 알고 보니 유럽 성인용품샵에서 구입했다는 자위기까지, 용도 상관없이 뭐든 깜짝한 물건의 소굴이었다. 지민이 좋아하는 장소를 멋대로 꾸미는 것은 간섭할 일이 아니다. 설령 내가 빌려준 방이더라도, 이미 월세를  개월째 밀렸고, 최근은 우울하다는 이유로 일도 나가지 않고 온종일 심해를 유영하는 일에 몰두하더라도.

 일단 내가 할 일은 푸시카 컬러의 미니 백을 다시 옷걸이에 걸어놓는 것, 조용히 방문을 닫는 것, 그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