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를 괴롭히던 그가 죽은 뒤, 그녀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고 끝이 날줄 알았던 이야기였다. 모든 문제를 일으키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으니, 남은 세 모녀는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으리라.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상담을 하며 매일 있었던 일과 감정을 기록하다 보니 깨달은 것. 나와 가장 많이 부딪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다.
엄마. 나 아무래도 나가서 살아야겠어.
지지고 볶고 살며 서로 이해해 주는 것이 인생이라 여겼다. 하지만 세계의 평화를 위해 애쓰는 첫째 딸의 역할은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니"
'차분한 구몬 선생님 같아요'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 서로의 첫인상을 이야기해 주는 모임을 나간 적이 있다. 약 20명의 사람들이 적어준 첫인상에는 대부분 '차분하다'는 단어가 적혀있었다.
명상에서는 감정을 '파도'에 비유하곤 한다. 언제든지 밀려오고 다시 들어가는 파도. 그래서 그 감정에 휩쓸릴 필요가 없다, 그저 그것을 바라보다 보면 평안한 마음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세상사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저 아무 일 없이, 평안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상했다. 상담을 진행하면 할수록, 평화가 아니라 분노가 찾아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내 지난 세월은 도대체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엄마는? 엄마는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급격하게 몰려오는 감정들. 분노와, 슬픔과, 억울함. 그 모든 것들이 뒤엉켜 회오리치기 시작한다. 오늘만큼은 그 모든 폭풍 속으로 들어가 보리라. 나의 마음은 해안가 앉아 평화롭게 감상하라고 만들어진 파도가 아니기에.
그렇게 감정이라는 파도를 타기 시작한다. 지금껏 고여있던 수많은 감정들. 이제는 과감하게 그 거친 파도로 뛰어들어가 외친다. 여긴 나의 바다야. 어느 누구의 바다도 아닌, 오직 나만의 바다.
엄마는 왜 아빠랑 안 헤어져?
아주 어릴 적부터 묻던 질문이었다. 엄마는 답했다.
"너희를 지키려고."
그렇게 엄마는 끝까지 아빠의 곁에 남았다. 사람의 형체로 보이지 않는 모습을 할 때에도, 심지어 그 모습을 가지고 행패를 부릴 때에도 엄마는 끝까지 그를 지켰다.
그 의리가. 부부의 연을 지키기 위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버텨냈던 그녀의 굳건함이 나는 조금 버거웠다. 제발 그 끈을 놓으라고, 그게 싫으면 나라도 제발 놓아달라고 애원했다. 그래서 선언한 것이 바로 독립이었지만... 이번에도 그녀는 끈을 놓지 않았다.
거대한 고함을 지르며, 때로는 아주 단호한 표정으로 아주 오랫동안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 30년 간 아빠의 그늘에 가려져 꽁꽁 숨겨져 있던 엄마와 딸의 이야기. 딸은 분노를 이야기하고, 엄마는 슬픔을 이야기했다. 어느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서로의 이야기. 두 사람은 세상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리도 많았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을까. 파도는 폭풍처럼 거세어져 서로의 몸이 부딪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엄마의 슬픔은 분노로 바뀌어 제 몸 하나 제어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을 때. 엄마는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너희가 집을 나간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귀가 멍해져. 사실은 아무 이야기도 들리지 않아. 마치 우리 엄마랑 아빠가 싸웠을 때 같아. 엄마가 가끔씩 보따리를 싸고 집 밖을 나가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해. 그때의 공포...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
폭풍 같았던 파도가 갑자기 잠재워졌다. 방안은 침묵으로 가득 찼고. 그녀는 아이처럼 울기 시작한다. 절정에 치닫은 싸움. 더 이상 피할 수도 없을 만큼 격해진 감정. 그 사이로 새어 나온 하나의 진실...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내가 그래서 끝까지 아빠 곁을 떠나지 않은 거였구나. 그래서 힘들다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싫었던 거구나..."
족히 40년은 지났을 기억이었다. 어린 시절, 어린 엄마를 죽음의 공포로 내밀었던 기억. 그리고 그 공포를 다시 겪고 싶지 않았던 어린 엄마가 선택했던 인생. 모든 것들의 퍼즐이 맞춰졌을 때, 엄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용서를 구하기 시작했다.
미안하다고. 너무나 미안하다고. 만약 이 사실을 몰랐다면, 나는 너희의 결혼까지 반대했을지 모른다고. 지금까지 내가 우리 예쁜 딸들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지. 그리고 나 자신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이제야 깨닫는다고.
그러다 알게 되겠지. 어른이 된다는 건 가까워지든가 멀어지든가 하는 것을 반복해서, 서로 그다지 상처 입지 않고 사는 거리를 찾아낸다는 것을.
- 영화, 에반게리온
어느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은 온기를 느끼려 서로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이내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가시에 찔려 화들짝 놀래며 멀어진다. 그리고 다시 추워지면 가까워졌다가, 가시가 아프면 멀어졌다가를 반복하는 고슴도치들. 시간이 지나며 그들은 서로의 가시에 찔리지 않고,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거리를 발견하게 된다.
'고슴도치의 딜레마'라고 불리는 이 이야기는, 어느덧 '나와 엄마의 딜레마'가 되어있었다. 온기가 필요해 가까이하면 그 뜨거운 불에 서로 화들짝 놀래는 일이 반복되는, 전형적인 엄마와 딸의 이야기.
가족치료가 별게 아니에요. 누구 한 명이라도 그렇게 경계를 세우면, 나머지 가족들은 알아서 자신의 경계를 세우기 시작하거든요.
상담 선생님은 이제 어머니의 치유가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이 전부라고. 어머니와 동생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경계를 세우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오히려 내가 경계를 세워야 다른 가족들도 굳건하게 설 수 있다고.
정말일까.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지 않아도 괜찮을까. 그저 내 한 몸만 잘 지키고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게 맞을까.
세 모녀 중 지금까지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 바로 나의 동생. 신기하게도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엄마와 감정의 파도를 타기 시작하자 그녀는 본인이 나서 중재자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성을 잃고 짐승처럼 구는 자신의 언니와 엄마 사이에서, 유일하게 이성을 되찾고 힘을 발휘했다.
바로, 내가 지금까지 평생을 해오던 그 역할을 말이다.
정말이었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토록 붙잡고 있던 끈을 놓아버렸을 때. 그토록 두려웠던, 하지만 마음속 깊이 원했던 바로 그 순간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순리. 그 누구도 서로를 잡아당기지 않는, 그저 놓아버린- 평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