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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연 Feb 11. 2024

이토록 반항적인 요가

대부분의 질병은 당신이 몸 안에 머물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이 필요한 순간마다, 잠시 생각을 멈추고 몸의 내부의 에너지에 주의를 집중하세요. 이 과정은 한마디로 말하면 '머리로만 생각하지 마라, 몸 전체로 생각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 순간의 나, 에크하르트 톨레


처음 요가를 시작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10년쯤 전, 처음으로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집을 나왔던 날. 두통이 너무 심해 이러다가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유튜브에 스트레칭을 검색했다. 그리고 만나게 된 요가.


새로 구한 자취방은 침대와 책상이 너무 커 매트를 펼 자리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냥 거대한 침대에 올라타 열심히 다운독(엎드려 엉덩이를 치켜든 자세)을 했다. 학창 시절에는 벌 받던 자세였던 그 동작이 어찌나 몸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던지. 평생을 달고 산 두통이 한 번에 사라지는 것을 본 그날, 나는 단번에 요가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당신은 왜 운동을 하는가?


요가를 가르치는 스승들은 '아사나(동작)'에만 집중하지 말라고 한다. 아사나는 명상으로 들어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아사나가 전부다. 요가를 하며 느끼는 근육과 관절 하나하나. 사실은 요가를 할 때만 느껴지는 '나'라는 사람. 아직까지도 나는 그것이 요가를 하는 이유다.


아버지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을 그 시절. 나는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은 누구지'. 눈앞에 보이는 여자가 나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몸으로는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다. 도대체 내가 누구지.


무기력했던 기억은 사건 당시 영향을 받았던 몸의 부위가 따로 노는 것 같은 기분으로 저장된다.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머리와 등, 팔다리에. 그리고 성적 학대를 받은 희생자들은 질과 항문에 그런 느낌이 남아있다. 트라우마 사건을 겪고 살아남은 수많은 희생자가 원치 않는 감각을 마비시키며 살아가고, 최소 절반 이상의 희생자가 비만이나 거식증, 혹은 운동이나 일에 중독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 몸은 기억한다, 베셀 반 데어 코르크


감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그것을 보상받기 위해 오히려 자극적인 것에 매달린다. 열심히 먹고, 열심히 달리고,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요가를 접하고 깨달은 것은, 감각을 되찾기 위해선 화려한 동작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작은 감각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애쓰지 마세요. 여러분에게 딱 3번만 반복할 기회를 드릴 거니까, 그 3번을 아끼고 아껴서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거예요. 척추 뼈 하나하나를 느끼면서요. 아시겠죠?


"1번 척추뼈를 움직여보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그 황당함이란. 하지만 느끼면 느낄수록 감각은 더욱 생생해졌다. 소마요가는 내가 경험한 모든 운동 중 가장 미세한 감각을 일깨우게 했다. 실제로 1번 척추뼈를 움직일 수 있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느껴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 자체가 우리에겐 명상이자 치유가 된다.


내 방식으로 소마요가(더 정확히는 소매틱스)를 정의하자면, 소마요가는 '잃어버렸던 감각과 움직임을 되찾는 요가'라 부르고 싶다. 갓난아기인 우리를 상상해 보자. 세상의 풍파를 아직 겪지 않은 그 아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팔을 허우적거리다가, 배를 뒤집고, 알아서 걷기 시작한다.


소매틱스는 그 자연스러운 몸의 기능을 다시 되찾게 만들어주는 운동이다. 예를 들어 누워서 머리를 들 때 목에 힘을 주는 게 아니라, 혹은 배에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등을 밀어내며 목을 들 때 조금 더 편안하게 목을 들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단, 지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주 작은 감각을 느껴보는 경험을 통해서.


솔직히 조금 걱정되기도 해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너무 빨리 치료가 진행이 되고 있거든요. 아마 요가를 하셔서 그런가 봐요.


3회 정도 치료를 진행했을 무렵. 상담 선생님은 '너무 몸이 잘 반응해서 치료 속도가 남들보다 빠르다'라고 했다. 이것은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거나 해서가 아니다. 나는 당시 소마요가를 주기적으로 수련하고 있었고, 감각을 느끼는 재미에 푹 빠져있던 찰나에 그것을 이용하는 심리치료기법을 만나 시너지가 났던 것이다.


실제로 심리치료에서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몸이 불편해지는 순간을 포착해서 상황을 대처하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불편하게 하면 몸이 마비가 된다거나, 밥을 먹으면서 배가 차오른다거나, 일을 하다가 몸이 뻐근해지는 것과 같은 아주 사소한 감각을 느끼는 것. 그리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치유의 핵심이다.


이것은 요가가 선물하고자 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내 안의 빛과 연결되는 아주 작고 섬세한 길을 열어내는 것. 몸과 영원히 연결되어, 내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는 것을 깊이 느끼는 것. 그렇게 안으로, 더 안으로 들어갔을 때 사실은 육체 그 이상의 것이 우리 안에서 살아 숨 쉰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 말이다.


그리고 서서히 인정하게 되는 사실 하나. 태어나해야 할 단 한 가지 일은, 한 마리의 짐승으로서, 하나의 생명으로서 ‘내 몸 하나 잘 지켜내자'는 것뿐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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