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을 하다 보면

멍 때림을 즐기는 자

by 새벽책장

대바늘로 옷을 뜨는 걸 즐긴다.

처음에는 '옷 뜨는 김뜨개'라는 유튜버의 조끼를 하나 뜨게 되었는데, 너무 예쁜 핏이 나와서 뜨개질로 만든 옷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옷은 나의 첫 작품이었는데, 핏은 예쁘지만 다 만들고 보니 설명할 수 없도록 이상한 코가 여러 군데 눈에 띄어서 눈물을 머금고 푸르시오(실을 푸르는 걸 푸르시오라고 부른다.)를 해버렸다.

뜨개질은 겉뜨기 안뜨기 밖에 몰랐지만, 나름 세이브 더칠드런의 신생아 모자 뜨기도 자주 참여했었던 전적이 있었기에, 호기롭게 시작했는데 이것은 뜨개질의 신생아적인 발상이었다. 뜨개질은 안뜨기 겉뜨기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운 세계이다.

지금은 여러 가지 무늬 뜨기를 배우고 있다. 이제는 설명을 조금 들으면 새로운 무늬도 떠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물론 자신감만 생겼다.


뜨개질은 재봉틀과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재봉틀로 옷을 만드는 일이 뜨개질보다 훨씬 쉽고 금방 끝난다. 이렇게 말하면 봉틀러들이 화를 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두 가지를 다 해본 나의 생각은 그렇다. 재봉틀 옷과 뜨개옷은 너무나도 다르다.

하루 만에 옷이 완성되는 기적은 거의 없다. 하루종일 뜨개질만 하다 보면 조끼 정도는 거뜬히 만들어내는 고수분도 계시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조끼 하나도 최소 보름에서 한 달이 걸린다.


오른손으로 실을 돌리는 아메리칸 기법(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기법이다.)으로 시작했던 나의 대바늘은 이제 컨티넨탈(왼손에 실을 걸고 뜨는 기법)로 바뀌었다. 컨티넨탈을 시작했을 때에는 처음 젓가락질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더디고, 서툴러서 포기하고 싶었다. 그냥 하던 대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지만 나를 채찍질한 것은 많은 유튜버들의 영상 속 손놀림이었다. 컨티넬탈로 뜨면 손목도 안 아프고 더 빨리 뜰 수 있다는 말에 생각 없이 열심히만 뜨다 보니 이제는 컨티넨탈이 어렵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무엇이든 하던 대로 하는 것이 편한 법이다. 관성의 법칙은 과학책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 삶의 모습에서도 종종 드러난다.

미라클 모닝을 하려고 했지만 침대에 계속 누워있고 싶은 것은 누구나 그렇다. 그러나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나면 다시 침대에 눕기 싫어진다. 이런 것도 하던 일을 계속하려는 관성 아닐까.

아메리칸 기법으로 계속 뜨는 것을 고집했다면 지금도 느린 속도를 가진, 더 천천히 옷을 뜨는 뜨개인이 되었을 것이다. 옷이 자라나는 속도가 더디다면 지금보다 뜨개질에 흥미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닌 일들이 많다.


꽈배기 뜨기도 그렇다. 처음에 내가 꽈배기를 어떻게 떠? 그냥 겉뜨기 안뜨기나 하자,라는 마음을 버리고 한 번 해보자, 하고 시도하니 정말 별 기술 아니었다. 꽈배기 뜨기에도 다양한 무늬가 있어서 초짜인 내가 말하는 것은 기본 꽈배기를 말한다. 그래도 그거 꽈배기 하나 떠놓으면 옷이 얼마나 테가 나는지 모른다.

뜨개질에는 꽈배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름도 처음 듣는 다양한 무늬들은 그것을 생각해 낸 사람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배색을 시작하면 뜨개질의 세계는 또다시 끝도 없이 펼쳐진다.




스트레칭하는 김연아 선수에게 기자가 물었다. "스트레칭하실 때 무슨 생각하세요?"

피식, "스트레칭하는데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나는 김연아 선수가 좋다. 그리고 뜨개질이 좋다. 그냥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나도 연아선수처럼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뜨개질을 한다. 팟캐스트나 유튜브 하나 틀어놓고 뜨개질하는 시간은 꿀맛 같다. 아이들의 방학 동안 이런 꿀맛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오늘 아이들을 등교(드디어 등원시킬 아이가 없다. 모두 등교한다. 감개무량하다.)시키고 공원 한 바퀴를 돌 생각이다.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조금 빠른 걸음으로 짧고 굵게 걸은 후 계단으로 올라와야지. 그리고 김연아 선수처럼 스트레칭을 한 후에 아무 생각 없이 뜨개질을 할 거다.

오 완전 개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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