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걸 갖고 싶어

원단산이 쌓여 가네

by 새벽책장


옷을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예쁜 디자인의 패턴을 보면 드릉드릉 하지만, 가장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은 원단의 유혹이다.

원단 값은 천차만별이어서 사이트마다 잘 둘러보고 사야 좋은 것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물론 동대문으로 나간다면 직접 만져보고 살 수 있으니 최선이지만, 육아맘인 나에게 그런 일은 불가능했고, 인터넷 세상은 편리하고 매력적이었다.

대부분 oo원단, oo패브릭이라는 이름의 인터넷 카페에서 원단을 구매했다.

내가 가입한 카페는 일주일에 한 번 일정한 시간에 판매를 하곤 했다. 인기 있는데 재고가 부족한 원단은 순식간에 줄을 서야 구매할 수 있고, 줄을 서지 못한 자는 살 수 없다.


-8시부터 시작입니다. 요이땡

댓글에 1이나 2나 3처럼 자기가 살 수량을 재빠르게 적는다. 다들 손가락이 어찌나 빠른지, 수량 안에 들지 못하면 좌절의 늪에 빠진다.


그렇게 사대던 원단들이 지금 우리 집에 박스로 쌓여있다.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는 나에게 가장 큰 적은 그놈의 원단 박스다.

살 때는 성공했다고 그리 좋아하던 원단들이 이제는 짐덩어리가 되다니.

이 원단으로는 이런 걸 만들 수 있어요, 라며 유혹하던 예쁜 원피스나 멜빵바지의 이미지들은 나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였고, 곧 아이에게 만들어 입힐 것처럼 손가락에 모터를 달고 줄 서기에 성공했던 원단은 이제 아이 취향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내복지 1마면 아이 내복 한 벌이 나오던 시절, 묻지마 내복지를 20마를 사고 "와 1500원으로 내복 한 벌을 만들 수 있다니 완전 개이득"을 외쳤던 나는 이제 박스 안에 잠들어 있는 묻지마 내복지를 들여다보며 언제 만들지를 묻는다. "과연 이번 생에 가능한가."

이제 2마 반은 가져야 한 벌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이 자라 버렸지만, "그래도 아직 기회는 있어. 중학생이 되기 전에는 저 내복지를 쓸 수 있을 거야." 하며 나를 다독인다.

원래 원단은 묵혀야 제 맛 아니겠는가.


오가닉이라는 이름의 원단 덩어리들


사진으로 볼 때는 당장 만들 것 같은 원단도 막상 손에 받아 들면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별로 안 예뻐서 그냥 티셔츠나 만들어야겠다, 하고 보면 찰떡궁합인 옷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냥 천 쪼가리로 만났을 때와 옷으로 만났을 때는 그 느낌이 사뭇 달라진다.

또, 세탁기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쪼글쪼글 쭈그렁뱅이가 되어 더 이상 손이 가지 않는 원단이 있고, 건조기에서 막 꺼내 탈탈 털어 입어도 뽀대 나는 원단들이 있다.

전문지식은 없지만 눈으로 보기에 예쁜 것과 나의 몸에 닿았을 때 예쁜 것이 구분되는 순간들이다.






여고생 시절, 친해지고 싶었던 친구가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 있을 때 반짝이던 그녀는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해야 할까, 딱히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 예쁘지도 않았고, 통통했다. 머리도 항상 어중간한 단발을 하고 있어서 외모에 신경도 안 쓰는 듯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히 성격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녀 주변에는 항상 친구들이 많았다. 여고생 특유의 발랄함을 지니고 있었을까, 어느 날은 한없이 우울해 보이기도 했지만 다른 날은 깨발랄의 극치를 넘나들던 조울증 같은 성향의 아이였는데 말이다.

그녀와 단짝이 되고 싶어서 매점에서 사 온 국찐이빵을 건넸다. 그녀는 빵을 뜯어 반쪽을 나에게 내밀며 같이 먹자고 말했다. 국찐이빵을 나눠먹던 우리는 그 순간에는 웃었지만, 결국 단짝이 되지는 못했다. 나는 그녀가 좋았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내가 비집고 들어갈 정도의 매력이 없었다.

그리고 나도 알았다. 우리는 단짝이 될 수 없는 성향이라는 것을.

그냥 반짝이던 그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항상 중심을 차지하던 그 소녀를 나도 갖고 싶었던 것이다.

친해지지 못해서 당시에는 조금 슬펐고, 아팠다. 소녀들이란 그런 거니까.



욕심부려 사대던 원단들이 지금은 골칫덩어리가 되어서 '언젠가는 소진해야지, 언젠가는 옷으로 탈바꿈해야지'라고 말만 하며 상자 속에 잠들어 있다.

이미지에 속아서 불필요한 것들을 더 이상 사들이지 않겠다는 교훈 따위는 얻지 못했지만, 나는 이제 대충이나마 내 취향을 알게 되었다. 예쁘고 반짝이는 것들이 결국 나에게 쓸모없어지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알만큼은 나이를 먹었으며, 내가 좋아하는 것과 손이 잘 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는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를 잘 알게 되었느냐, 그건 또 다른 의문이다. 아직도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하며 나조차도 낯선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반짝이는 것들을 다 가질 수는 없으며, 그것이 나에게 와서도 계속 반짝일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이 반짝이지 않고, 한쪽만 쭈그렁뱅이가 된다면 함께 할 수 없다. 서로를 반짝반짝 만들어줄 단짝이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이다.


그래서 욕심내 사모았던 원단들도 곧 당근마켓이나 중고나라에 올라갈 예정이다. 누군가의 손에 닿아 멋지고 반짝이는 옷이 되길 바라며.


국찐이빵을 나눠먹었던 그 친구는 서로에게 잘 맞는 사람들 틈에서 아직도 반짝이며 살고 있겠지.




대문 사진 출처_픽사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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