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를 먹고 산다. 나도 그렇다.
오랜만에 재봉틀을 돌렸다.
요즘 크롭이 유행이라 하나 만들어 볼까 하고 시작했다. 기본 루즈핏 티셔츠 패턴으로 허리선만 위로 올려야지. 야심 차게 시작했는데, 너무 오랜만에 해서 그런가, 오버록 실들이 자꾸 끊어진다.
오버록은 4개의 실을 연결해서 시접 부분을 마무리해주는 기계이다. 처음에는 기본 재봉틀의 지그재그 기법으로 마무리를 했는데, 옷을 본격적으로 만들면서 오버록은 꼭 필요했기에 재봉틀보다는 조금 늦게 우리 집에 들어온 아이다.
실패걸이에 아무리 잘 걸고 다시 실을 연결해도 오버록의 3번실이 자꾸만 끊어져서 몇 번을 멈췄는지 모른다. 이럴 때는 짜증이 마구 솟구친다. 자고로 오버록이란 드르르륵-재빠르게 밀어내는 손맛이 제격인데, 이놈의 우리 집 오버록은 아주 천천히 드. 르. 르. 르. 륵, 마치 아기를 재우듯이 유념하며 해야 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실을 너무 큰 걸로 연결해서 그런가. 기계는 돌아가는데, 실이 재빠르게 풀어지지 않으니 끊길 수밖에. 그래도 이미 있는 실을 버릴 수도 없고 난감할 뿐이다.
-아 화딱지나. 이번에도 끊어지면 내일 해야지.
마음먹고 그냥 돌려버렸더니 우둑, 하는 소리에 심장이 덜컹한다.
오버록 바늘이 부러졌다. 오버록의 바늘은 두 개인데, 그중 한 개가 부러지고 만 것이다. 부러진 조각은 기계밑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고, 이미 빵빵해진 풍선 같은 내 인내심에 그 바늘 한 조각이 꽂혀버렸다. 펑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실도 끊어지고 바늘도 부러지고 아, 이 기계를 버리고 싶다.
여분 바늘을 찾아 서랍을 뒤져보니 이게 오버록 바늘인지 본봉(기본 재봉틀) 바늘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심지어 오랜만에 해보니 바늘 끼우는 법도 다 잊었다. 검색을 하고 유튜브를 찾아서 드디어 바늘 장착 성공.
이번에는 살살 돌려야지.
천천히 돌려본다. 바늘이 부러지지 않게, 실도 끊어지지 않게.
조심히 아기 다루듯 기계를 돌리니 그 속도가 참으로 답답했지만 더 이상의 난리법석은 일어나지 않고 어찌어찌 크롭티는 완성되었다. 대신 시접이 좀 많이 지저분해졌지만 뭐, 안 보이니까 네버 마인드.
사실 요즘 재봉틀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본봉으로 남편의 바지 길이만 몇 번 수선한 게 다였기에 오버록은 사용 안 한 지 몇 개월 됐다. 남편의 바지는 꼭 잘라줘야 한다. 하하, 나는 태어나서 바지를 한 번도 안 잘라봤다고 하니, 그는 한 번도 안 잘라본 적이 없다고 한다.
오랜만에 사용하는 기계는 역시 내 마음을 몰라준다.
녹이 슬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기계든 가구든 사람이든, 손을 오랫동안 타지 않은 것들은 티가나기 마련이다. 부러진 바늘과 끊어진 실들은 나에게 하소연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봐, 자주 만나자고."
"요즘 자꾸 뜨개질만 하고 재봉을 안 하는 이유가 뭐냐고."
"추운 방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고."
음. 그만 말해. 어떻게 맨날 재봉틀만 할 수 있어. 나도 바빠.
초등학교 중학년 이후에는 손목시계를 매일 차고 다녔다. 아빠가 길거리 리어카에서 사주신 분홍색 손목시계는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 중에 하나였다. 몇 년 사용하던 그 시계는 중학생이 되고서는 착용하지 않았다. 서랍 한 구석에 놓아두었던 시계를 몇 달 만에 꺼내보니 멈춰있었다.
몇 년을 잘 사용하다가 겨우 몇 달 사용하지 않았다고 멈춰버린 시계를 당시에는 별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비슷한 일이 몇 번 되풀이되다 보니 이것들이 사람 손을 타는구나 느낌이 들었다.
주로 교실에서 그런 일을 많이 겪는데, 예를 들면 방학이 지나고 왔을 때 벽시계가 멈춰 있다던지, 매일 잘 사용하던 컴퓨터를 겨우 20일 정도 안 켰다고 전원이 안 들어온다던지, 하는 일들 말이다.
사람과 기계는 전혀 무관한 것 같지만 기계가 혹시 사람의 온기를 먹고사는 게 아닐까 그런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기계도 그럴진대, 사람은 말해 뭐 하겠나. 손이 닿지 않았던 만큼 끊어진 실같은 일들이 자주 생길게 분명하다. 사람의 손길이란 이렇게 무서운 거다.
처음에는 자꾸 끊어지던 실도, 부러져버린 바늘도 결국 계속 작동시키니 막판에는 속 썩이지 않고 잘 굴러갔다. 정말 내 손길이 그리웠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