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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틀을 돌리는 건 사랑한다는 것
08화
고객님을 완벽히 만족시킬 순 없지만
by
새벽책장
Dec 19. 2022
-엄마 "로미" 옷 사주세요.
-로미? 그게 누군데?
-이모션 왕국의 프린세스 로미!
아, 파산핑 왕국의 로미를 말하는 거구나.
맘카페에서는 티니핑을 파산핑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시즌이 나올 때마다 관련 아이템을 어찌나 그리 잘도 만들어대는지, 아이들은 그걸 다 사고 싶어 하고, 엄마들은 파산할 지경에 이른다.
티니핑이 시즌3까지 나온 요즘
,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도 티니핑 아이템을 산타할아버지께 친히 빌어주는 아이.
한창 티니핑에 빠져 살던 작년에는 심지어 티니핑의 주인공 "로미"옷을 사달라고 조르던 그녀에게
-나 재봉틀 하는 엄마야
.
하며 호기롭게 로미옷을 만들어 준다고 호언장담 했다.
왼쪽_SAMG엔터테인먼트 캐치티니핑 / 오른쪽_내가 만든 옷을 입은 딸(얼굴은 어플로 바꾼것. 저렇게 생긴거 아님 주의)
저걸 입고 등교한 초1이라니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저 옷은 시작에 불과했다.
-엄마 사랑이처럼 드레스 입고 싶어요.
-사랑이가 무슨 드레스를 입고 왔어?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왔어요. 나도 사주세요.
무슨 옷을 자꾸 산다고 그래?
나 재봉틀 하는 엄마야.
그런데 이런 옷은 피아노 콩쿠르 갈 때 입는 거 아니야? 그날 사랑이가 피아노 콩쿠르에 나갔나 보지. 너는 피아노도 안 배우잖아.
그렇다. 그들에겐 피아노와 드레스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그냥 입고 싶을 뿐.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다.
입으면 신발도 안 보이는 드레스를 입고 등교한 어린이를 본 적 있으신가요? 그게 저희 딸입니다만.
아이가 입고 싶은 옷을 직접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봉틀러 엄마들은 그런 행복을 호사로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정도"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사실은 아이와 나는 같은 학교로 등교하고 출근하는 사이였다. 그래서 많이 몹시도 부끄러웠다.
부끄러운데 왜 만들어줬냐고? 그거야 만들 수 있는데 돈쓰기는 아깝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걸 입고 등교할 줄은 몰랐다.
차라리 미취학이면 괜찮다. 3살, 5살의 핼러윈 룩은 몹시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었다.
핼러윈 의상도 만들어 주는 엄마
배트맨 박쥐 옷은 내가 생각해도 잘 만들었다. 이런 어깨뽕 올라가는 뿌듯함이 재봉틀을 돌리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들은 이제는 의상 주문을 하지 않는다. 고객님의 눈높이가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리라. 고객님을 만족시키는 건 아이가 어렸을 때뿐이라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그래도 우리의 관계가 계속 사랑스러웠으면 좋겠다. 하자가 발견되어도 넓은 아량으로
대화를 시도해주는 선한 고객님과 어떤 A/S도 마다하지 않는 친절한 사장님의 관계로.
앞으로도 진상고객만은 되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만.
keyword
에세이
자녀
Brunch Book
재봉틀을 돌리는 건 사랑한다는 것
06
Fit이 맞는다는 것
07
내가 만든 옷을 선물한다는 것
08
고객님을 완벽히 만족시킬 순 없지만
09
반짝이는 걸 갖고 싶어
10
뜨개질을 하다 보면
재봉틀을 돌리는 건 사랑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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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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