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옷에 대한 칭찬을 듣고 나면 늘 이루어지는 대화 패턴이다. 예쁘다는데 ‘만들어드릴게요.’라는 말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이렇게 해서 늘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을 부담으로 생각하는 내향인의 고민은 시작된다.
어차피 완벽한 옷을 만들 수는 없다. 솜씨 좋으신 분들이 판매하는 패턴을 사서 가장 비슷한 치수를 본뜨고 오려내고, 이것을 적당한 원단에 재단하여 재봉틀로 드르륵 하면 끝이다. 그래서 내가 만든 옷을 내가 입는 일은 어렵지 않다. 아니 오히려 재미있고 즐겁다. 좀 이상한 부분은 흐린 눈을 하고 안 보면 그만이니까. 그리고 남들에게는 이런 부분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이 옷을 선물한다면 그건 다른 문제이다. 적당한 원단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그래서 원단 카페를 또 열심히 뒤져본다. 검색하는 것을 너무 싫어하는 나는 원단 카페를 찾아 헤매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적당한 원단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실패하는 일도 허다하다. 그리고 내가 입었던 그 옷과 똑같은 원단은 이미 판매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 하는 옷은 디자인도 디자인이지만 원단의 영향도 크기 때문에 원단이 달라지면 그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적당한 원단을 찾지 못한 채 걱정과 후회로 재봉질을 하고 있다.
‘아, 내가 왜 만들어 준다고 했을까. 별로 안 예쁜 거 같은데, 만들기도 힘들고. 차라리 저번에 내가 입고 갔던 옷을 드릴까?’
만들면서도 왜 이렇게 만족스럽지가 않은지. 완성된 옷을 드리면 대부분의 반응이 비슷하다. 고마워는 하지만 딱히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 아 괜히 만들어줬어. 다음부터는 안 해야지.
이렇게 내가 만든 옷은 잊히는 일이 대부분이다.
이해는 한다. 엄청난 퀄리티가 있는 옷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내가 만든 옷 중에 잘 입는 옷이 있고 버려지는 옷이 있지 않은가.
나의 첫 선물은 아이들 조끼였다. 겨울에 내복 위에 하나 입히면 좋은 조끼, 시중에 판매하는 조끼들은 거의 다 목까지 덮어줘서 예민 보스 우리 딸은 절대 입지 않는다. 목에 닿지 않고 암홀도 깊게 파인 조끼가 너무 마음에 들어 남편 친구의 아이들에게 선물해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초보 봉틀러였다. 다음날 캠핑을 같이 가기고했고, 새벽 2시까지 조끼 4벌을 만들었다. 단추 구멍도 내 본 적 없는 초보는 단추 대신 끈으로 묶을 수 있게 마무리하였고, 다음날 계획대로 선물을 했다. 아이들이 잘 입어줬는지는 모른다. 아이 엄마들의 마음에도 들었을지 모른다. 선물은 보내면 내 소관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쿨하게도 ‘나는 선물했으니 그다음에는 네 마음대로 해.’라는 마음가짐은 나에게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다. 그 옷을 잘 입는지 안 입는지 자꾸만 관찰하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분들에게 선물하게 될 일이 생기면 후회할 걸 알면서도 드르륵 박고 있다.
그러면서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옷이라는 것은 아주 사적인 취향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사적인 영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렵고 또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런 생각이 든 이후에는 주로 타인에게는 소품을 선물한다. 지갑, 에코백, 파우치, 북커버. 내가 만든 소품들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소품 선물은 나에게도 그에게도 사소한 즐거움이 되어준다.
엄마가 만들어 준 옷도 어렸을 때는 잘 입어줬는데, 커가면서 기성복만 찾는 큰 아이.
아직도 엄마가 만든 옷을 좋아해 주는 둘째 아이.
취향의 존중.
다른 사람들의 취향을 존중한다.
앞으로도 내가 만든 옷과 소품들은 나와 내 취향을 존중해주는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