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작의 조건

실패는 나의 기쁨

by 새벽책장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오자마자 오늘 만든 옷을 입혀본다.

"담아 이거 봐. 오늘 엄마가 만들었어. 예쁘지?"

"응."

"입어볼까?"

"아니."

아이는 쪼르르 장난감 앞으로 달려간다.

매정하다고 느끼기에는 아이는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이 많다. 그래 등원할 때 입히면 되지.




"담아 어제 엄마가 만든 옷 입고 갈래?"

"응."

"그래 그래. 여기 엄마가 주름도 많이 잡아서 엄청 공주님 같지? 아... 그런데, 왜. 이게. 왜. 잠깐만. 담아 머리를 이렇게 해봐. 어어."

"아야 아야."


망했다.

머리가 안 들어간다. 신축성이 있어서 들어갈 줄 알았는데. 안 들어간다.

오늘 꼭 입혀 보내고 싶었는데 괜히 아쉽다.

그리고 아이에게 화가 났다. 어제 입어봤으면 밤에 수정해서 오늘 입혀 보낼 수 있었잖아.

이 모든 게 다 너 때문인 것 같았다.



아이가 등원하고 둘째의 낮잠시간이 돌아오면 다시 재봉틀 앞에 앉는다.

큰 일은 아니다. 가위로 뒤트임을 내고 자른 부분은 바이어스로 감싸 단추와 단추 고리를 달면 끝나는 일이다.

금방 할 수 있는 일이고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아이에게 쏟아내던 내 원망의 덩어리들이 아이에게 그대로 닿았을까 봐 후회가 된다.




내가 만든 옷이 항상 좋을 수는 없다. 나조차도 그런데, 타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나의 일상을 타인에게 공감해 달라고 조를 수야 없는 일 아닌가.

나에게는 기쁨이 타인에게는 무관심일 수 있고, 심지어 또 다른 의미의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남편에게 처음 만들어 준 옷은 초록색 후드티였다. 나름 아디 땡땡 전사지도 붙였는데, 입어 본 남편의 입꼬리가 거칠게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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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에는 왜 손이 안 들어가냐고.

그리고 왜 후드에 끈이 없냐고.


하, 어른이 주머니에 손 넣을 일이 얼마나 되며, 후드에 끈 맬 일이 어딨냐고.

나만의 논리로 반박하여 보지만 나조차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건 사실이다.




뒤트임을 낸 아이의 옷은 다음날 등원 룩이 되었고, 남편의 후드티는 옷장 행이 되었다.


실패는 기쁨이다. 나의 실패를 누군가에게 원망으로 쏟아부을 일도 아니고, 타인의 실패를 비난할 일도 아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실패하고 있는 나. 실패의 조건 따위는 없다. 그냥 거칠게 웃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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