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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틀을 돌리는 건 사랑한다는 것
04화
발레 가방을 만들고 칭찬받았다.
샤넬도 아닌데
by
새벽책장
Mar 25. 2023
발레를 좋아하는 우리 집 일호에게 콩쿠르에 나갈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발레 콩쿠르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 의상비, 소품비, 메이크업비, 안무비, 지도비, 인솔비, 마지막으로 참가비도 들 거라고 한다. 역시 발레 같은 건 귀족 체육이었던 것이다.
취미로만 하기를 바랐던 나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역시 욕심 많은 일호는 콩쿠르에 나가고 싶어 했다. 3명이서 군무를 짜고 연습을 시작했는데, 주 3회 3시간씩 운동을 하니 좋긴 하다만 돈을 생각하면 아이에게 곱게 말이 나가지 않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너 발레에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이건 사지 말고 집에 있는 걸로 써." 라던지, "발레에 낸 돈이 얼만데, 또 쓸데없는 걸 사달라고 하는 거야?" 라던지.
요즘 아이들이 너무 풍족하게 자라는 것 같아서 이제는 경제 교육도 시작할 겸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사지 않도록 교육하려고 노력하는데, 꼭 "발레에 돈이 많이 드니까"로 시작하는 나의 못된 화법 때문에 괜스레 아이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고 있는 건 아닌지 미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물욕은 당할 재간이 없다. 며칠 전에도 발레 가방을 사겠다고 나서는 게 아닌가.
"아니, 아무 가방에나 토슈즈 하나 넣어가는 건데 가방이 왜 또 필요해. 그리고 발레 가방이 따로 있니, 그냥 아무거나 매!"
나의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나의 핸드폰을 가져가더니 쿠팡앱으로 들어가 발레 가방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걸 사달라고 당당하게 골랐다. 12900원. 돈이 너무 아깝다. 2900원도 아니고 12900원은 너무 비싸다. 안돼.
"그럼 엄마가 만들어줘."
앗, 그건 생각지 못한 전개였다. 요즘 재봉틀을 잘 안 하기도 하고 소품 만드는 건 살짝 재미가 없기도 해서 더는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게다가 독서모임에서 읽어야 할 책이 밀려있고, 글도 써야 하고, 뜨개질 숙제도 해야 해서 바빠 죽겠는데 또 뭘 만들라니.
하지만 집에
언제, 왜 사놨는지 모를 발레슈즈 핫픽스를 아이가 찾아낸 것으로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다. 집에 있는 걸로 해결가능하다.
오랜만에 재봉틀을 돌리니 또 나름 즐겁고 스트레스가 해소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아이의 취향대로 프릴도 달고 지퍼도 달고, 끈 길이는 대충 달았다.
하교한 아이는 들어오자마자 "발레 가방 만들었어?"를 외쳤고, 책상 위에 놓여있는 가방을 보자 환호성을 질렀다.
"엄마 최고! 너무 예뻐. 엄마 사랑해요."
아이고, 샤넬도 아니고 루이뷔통도 아닌데 가방을 선물 받고 저리 좋아할 일이야.
엄마랑은 다르게 너는 샤넬도 메고 루이뷔통도 메고 에르메스도 메는 그런 삶을 살거라.
명품 따위는 관심도 없는 엄마라서 내가 그런 걸 사주지는 않을 것 같으니 네가 벌어서 사렴.
빨리 금요일이 되어서 발레 가방을 들고 발레에 가고 싶다고 한다.
발레를 위해 가방이 필요한 건지, 가방을 위해 발레가 필요한 건지. 에라 나도 모르겠다.
"엄마 이런 거 만들어서 팔아."
"엄마 공무원이라서 안돼."
"이거
12900원에 팔면 좋겠다."
"에구 누가
12900원에 이걸 사겠니. 만 원만 받을까? 배송료 포함으로. 깔깔깔."
디자이너 해도 되겠다는 아이의 말을 듣고, 한 때 꿈이 디자이너였지, 생각났다.
샤넬 같은 브랜드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엄마표라는 이름의 발레 가방이 아이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니,
그걸로
됐다.
keyword
가방
핸드메이드
에세이
Brunch Book
재봉틀을 돌리는 건 사랑한다는 것
02
나의 로망 남매 룩
03
등교 직전, 티셔츠를 잘랐다.
04
발레 가방을 만들고 칭찬받았다.
05
망작의 조건
06
Fit이 맞는다는 것
재봉틀을 돌리는 건 사랑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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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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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있는 것은 뭐든지 좋아합니다. 글쓰기로 나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또,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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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 직전, 티셔츠를 잘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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