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취향
재봉틀을 시작하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남매 룩을 만드는 일이었다.
커플룩도 아니고 모녀 룩도 아닌 남매 룩.
"딸 낳고 아들 낳았으니 200점이네."
딸이든 아들이든 육아 레벨은 아이마다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말은 아직도 종종 듣는다.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200점 엄마다.
하지만 현실은 깡패 누나와 드러눕기의 달인 동생. 육아 레벨 200점 엄마였다.
누구나 그 시절은 다 힘든 거니까, 나만 힘들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가끔 만나는 옆집 어르신의 "힘든 거 알아요. 장해요."라는 말 한마디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건 사실이다.
재봉틀을 한다는 건 그냥 기계를 조작한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에서 오는 성취감이 중독적이다.
그 시절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기에, 그 중독에 더 빠져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대로 잘 수도, 먹을 수도, 씻을 수도 없던 시절.
둘째는 발로 키운다는 건 손이 모자라서 발까지 동원해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재봉틀은 주로 준이의 낮잠시간 동안 돌아갔다. 아이가 잘 동안 쉬어야 하는 꿀 같은 시간에 나는 재봉틀을 돌렸다. 잠든 아이가 깰세라 최대한 천천히 소리가 나지 않게 박았고, 아이가 깨어나는 소리가 들리면 그게 그렇게도 아쉬웠다.
조그만 아이는 원단 조각들로 엉망이 된 바닥에 앉아 펜으로 낙서를 하고, 나는 이제서야 신나게 드드르륵 재봉틀을 돌린다. 눈만 마주쳐도 까르르 웃어주던, 한낮의 나른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가끔은 그립다.
이때만 해도 내 취향이 곧 아이들의 취향이었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육아가 그나마 내 마음대로 되던 시절은 그 시절이 마지막이었지 싶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이 크면 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많은 것을 내려놓고 너를 인정해주는 것이라는 깨달음들,
머리로만 깨닫고 가슴에는 울화가 치밀어 대는 상황들.
"엄마 말 들어. 엄마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와."
엄마에게서 듣기 싫던 그 소리를 내 자식들에게 하고 있는 내 모습.
결국 남매 룩도 내 마음대로 아이들을 다듬고 만들어가고 싶은 내 욕심이 아니었을까.
다정한 남매들이에요,라고 자랑하고 싶었던 모순적인 엄마의 마음.
집에서는 깡패지만 밖에만 나가면 동생 손을 붙잡고 걸어 다니던 담이처럼 나도 우아한 척하고 싶어 했던 엄마의 모습이 그 시절에 남아있었다.
담이가 7살 때 처음으로 "준이랑 같은 옷 입기 싫어."라고 했다.
그 이후에 나는 더 이상 남매 룩을 만들지 않는다. 목이 다 늘어난 누나 옷을 입은 준이를 볼 때면 이제 남매 룩은 안녕, 내 마음속에 고한다.
지금 아이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아침마다 스스로 옷을 골라 입는 나이가 되었다. 내 품 안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지만 크게 슬프거나 안타깝지는 않다.
아이들은 결국 떠나보낼 존재들이니까.
너의 확고한 신념과 취향들이 무럭무럭 자라나서 가끔은 어릴 때 엄마가 만들어 준 옷들을 기억하며 따뜻한 감정을 느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