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옷이 없는 건 대한민국 여자들이라면 한 번쯤은 겪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열 살짜리가 입을 옷이 없다고 아침마다 짜증 내는 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싶다.
공주옷이나 레이스, 핑크 따위에 목숨을 걸고 겨울에는 크록스, 여름에는 부츠를 신고 나가는 '죽이고 싶은 일곱 살'에도 우리 딸은 무난하게 내가 골라준 옷을 입고 다녔다. 피부가 예민해서 목이 답답하거나 기모가 있는 옷을 싫어했을 뿐이지, 디자인 따위는 개나 줘 버리는 아이였는데, 여덟 살이 되면서 달라졌다. 아니 조금 늦되다고 해야 하나.
남들은 치마에서 바지로, 핑크에서 민트로 기호가 이동하는 초등 저학년 시기에 원피스와 공주옷에 빠져 학교에 드레스를 입고 가질 않나, 바지는 절대 입지 않고 운동화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늘 구두와 샌들을 신고 다녔다. 그런 일이 아홉 살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더니 올해는 드디어 원피스는 조금 멀리하고 바지에 빠졌는데, 긴 바지는 절대 안 된다. 무조건 반바지에 반타이즈를 신어야 한다.
게다가 크롭티가 유행이라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열 살짜리가 배꼽티를 입고 다니니, 전형적인 유교걸인 나는 내 딸이 남사스러울 따름이다.
"나 오늘 학교 안 갈래. 입을 옷이 없잖아."
우리 집에서 옷이 가장 많은 아이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닌 것 같지만, 나도 한 때는 입을 옷이 없는 옷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기에, 이해한다. 그런데 그건 스무 살쯤 돼야 생기는 옷장이 아닌가. 요즘 애들 빠르다지만 빨라야 할 건 느리고 느려야 할 건 빠르니 같이 사는 동거인의 입장에서 곤란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오버핏을 좋아하는 내가 작년 여름에 사준 아주 박시한 티셔츠는 단 한 번도 그녀의 선택을 받지 못했었다. 그걸 들어 올리며 "이거 너무 길다고 잘 안 입었잖아. 엄마가 이거 잘라줄까?"
"어? 지금? 좋아. 나 기분이 좋아졌어. 학교 갈래."
뱃속에서부터 용암 같은 게 분출하려고 하지만 참아본다. 참아본다. 참아본다.
참을 인을 세 번 외치고 재봉틀 앞에 앉는다. 대충 자르고, 지그재그로 마감한 후 한 번 접어 박음질을 했다.
그렇게 5분 만에 박스티가 크롭티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악마로 변하려던 나도 다행히 천사엄마로 변신한 순간이고 말이다.
재봉틀이 있어서 다행이다.
주섬주섬 뭘 만드는 걸 좋아해서 아이의 옷을 리폼해 줄 수 있어 다행이다.
리폼이라면 그야말로 나를 리폼해버리고 싶을 때가 하루에도 열두 번인데,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며 등교시킬 수 있는 내가 된 건 재봉틀 덕분일까, 우리가 살아온 시간 동안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게 된 덕분일까.
오늘따라 잘 웃으며 등교한 아이들을 떠올리며 나도 기분이 좋다. 그래서 잘라낸 티셔츠의 밑부분으로 가지고 싶다던 슈슈를 두 개 만들어 봤다. 양갈래 머리를 했던 지난주 어느 날, 쌍으로 된 슈슈가 필요하다며 나를 들들 볶았던 게 생각나서였다.
리폼이 된 물건은 마치 새것처럼 느껴진다.
원래 있던 것을 조금 바꿨을 뿐인데 울상이던 기분이 구름 위로 날아가기도 한다. 오늘 아침의 아이처럼 말이다.
나 역시 원래 있던 그대로이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꾼다면 이렇게 새로운 사람으로 탈바꿈한 것처럼 개운하고 가뿐한 기분이 드는 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