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재봉 틀러의 우당탕탕 재봉기
4년 차 휴직자.
둘째 아이의 돌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 아이의 육아로 집안은 항상 엉망진창이었고, 세수도 못하는 날들이 다반사였다.
나는 없었고, 엄마만 있었다.
산후 우울증이라는 당당한 병명조차 없었지만 늘 힘들었고, 이 동네 머리에 꽃 꽂은 여자가 바로 나였다. 아이가 돌이 지나면 돌 끝 맘이라는 닉네임으로 엄마가 편해지는 시기가 온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단언컨대 그들은 육아를 안 해 본 사람일 것이다.
돌이 지나면 미친 18개월이 찾아오고 미운 4살이 다가온다. 그리고 7살, 하하하하 세상 잘난 맛에 사는 초등 저학년. 사춘기도 아닌 주제에 사춘기 인척 하는 6학년과 말해 뭐해 중2병.
앞으로 최소 15년은 절대로 편해지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깊은 깨달음이 큰아이 4살, 둘째 아이 2살이었던 2017년에 내 삶을 관통했다.
빨리 복직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숨 쉴 구멍이 필요했다.
둘째 아이 돌잔치는 간소하게 하기로 하여 의상 대여도 하지 않았다. 마침 큰 아이가 입던 양복바지류의 하의가 있어 둘째에게 입히려고 길이를 잘라냈다. 바지단을 정리하는데 반바지로 만들면 더 예쁠 것 같아서 과감하게 자르고 바느질을 했다. 잘라낸 원단으로는 보타이를 만들었다.
와, 재미있다.
바느질하는 그 한 시간이 육아로 지쳐 있던 마음을 보송보송하게 만들어줬다.
얼마 만에 느끼는 행복감과 성취감인지.
바느질은 나에게 구원 같은 것이었다.
동네 풀잎문화센터에 당장 등록하고 일주일에 2시간 홈패션을 배웠다. 그렇게 나는 봉틀러가 되었다.
그리고 후회를 했다.
이 재미있는 걸 이제야 알다니.
서른 후반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작할 수 있다. 서른 후반이 문제인가. 여든 후반에도 배울 수 있다. 재미있는 걸 하고 살자.
그렇게 나는 숨 쉴 구멍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