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t이 맞는다는 것

망작의 조건 2

by 새벽책장
완벽하지 않은 것이라도 사랑할 수 있다.
아니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할지도.


2년 전에 만든 양털 조끼는 나의 겨울을 따뜻하게 해주는 아이이다. 물론 진짜 양털이 아니라는 건 다들 이미 눈치챘으리라 믿는다.

초겨울에는 이것만 툭 걸치고 나가면 패피 저리 가라고, 한겨울에도 패딩점퍼 아래 조끼는 필수품이다. 뚱뚱해 보이는 것보다 추운 게 더 싫은 수족냉증녀의 겨울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랑스러운 존재가 바로 이 조끼다.


당연한 말이지만 옷을 만들면서는 꾸준히 입게 될 거라고 생각하며 시작한다. 하지만 보통 재봉틀이 끝나갈 무렵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깨달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아, 이건 못 입겠구나." 혹은 "오, 이번 거 괜찮은데."


양털 조끼는 만들면서도 재미있었고, 완성을 향해가면서도 지금 당장 입고 싶다는 마음을 느꼈던 옷이었다.

-아, 너무 마음에 든다.

그러나 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는 것을 모든 작업이 끝난 후에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중간에 발견했더라도 귀차니즘 봉틀러인 나는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KakaoTalk_20221217_152844403_01.jpg 세월의 흔적으로 꼬질꼬질해진 나의 양털 조끼


그것은 바로 지퍼를 거.꾸.로 달았다는 것이다.

옷을 만드는 중간에 돌이키기 힘든 실수를 했거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을 깨달은 순간 모든 전의를 상실한다. 하지만 이 조끼는 운이 좋게도 다 끝낸 후 지퍼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 이건 우리의 운명이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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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쥬니는 내 브랜드명이다. 물론 특허나 상표등록따위는 아직이다.

두 번째로는 내가 사랑하는 북 파우치다. 북을 넣는 파우치라고 만들었지만 사실 필통의 용도로 더 잘 쓰고 있다. 포스트잇과 인덱스, 연필 따위를 넣어두는데 책을 읽을 때 항상 옆에 다소곳이 놓아둔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앞선 조끼와 같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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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퍼를 거꾸로 다는 것도 능력이다


이 정도 하자는 무조건 환불각이다. 그러나 내가 만든 작품들이기 때문에 어디서 환불을 받을 수도 없고, 일단 대충 써본다.

그러나 사용해 보니 신기하게도 이것들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끼 지퍼는 굳이 자주 여닫을 일이 없었고, 필통은 어차피 열어놓고 사용하는 내 생활습관 덕분에 지퍼가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다음에 만들 때는 자석 단추를 다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언제쯤 만들지는 모르겠다.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도 손이 자주 가는 것들이 있다. 특히 옷들은 핏이 예쁘면 다 괜찮아 보인다.


Fit_모양이나 크기가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맞다.

나와 잘 맞는 사물이 있다. 그런 사물은 단점이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단점 없는 사람 없고, 나 또한 그런 것처럼 나와 핏이 잘 맞는 누군가에게는 손 내밀기도 쉽다. 인간관계는 노력해도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일단 인간 사이에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부터가 핏이 어긋난 게 아닐까.


이 글을 쓰는데 우리 집 고미 씨가 생각난다. (아, 고미 씨는 남편이다. 곰처럼 생겼다.)

아무래도 고미 씨와 나는 핏이 잘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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