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작의 조건 2
완벽하지 않은 것이라도 사랑할 수 있다.
아니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할지도.
2년 전에 만든 양털 조끼는 나의 겨울을 따뜻하게 해주는 아이이다. 물론 진짜 양털이 아니라는 건 다들 이미 눈치챘으리라 믿는다.
초겨울에는 이것만 툭 걸치고 나가면 패피 저리 가라고, 한겨울에도 패딩점퍼 아래 조끼는 필수품이다. 뚱뚱해 보이는 것보다 추운 게 더 싫은 수족냉증녀의 겨울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랑스러운 존재가 바로 이 조끼다.
당연한 말이지만 옷을 만들면서는 꾸준히 입게 될 거라고 생각하며 시작한다. 하지만 보통 재봉틀이 끝나갈 무렵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깨달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아, 이건 못 입겠구나." 혹은 "오, 이번 거 괜찮은데."
양털 조끼는 만들면서도 재미있었고, 완성을 향해가면서도 지금 당장 입고 싶다는 마음을 느꼈던 옷이었다.
-아, 너무 마음에 든다.
그러나 그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는 것을 모든 작업이 끝난 후에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중간에 발견했더라도 귀차니즘 봉틀러인 나는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그것은 바로 지퍼를 거.꾸.로 달았다는 것이다.
옷을 만드는 중간에 돌이키기 힘든 실수를 했거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을 깨달은 순간 모든 전의를 상실한다. 하지만 이 조끼는 운이 좋게도 다 끝낸 후 지퍼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 이건 우리의 운명이었던 것인가.
두 번째로는 내가 사랑하는 북 파우치다. 북을 넣는 파우치라고 만들었지만 사실 필통의 용도로 더 잘 쓰고 있다. 포스트잇과 인덱스, 연필 따위를 넣어두는데 책을 읽을 때 항상 옆에 다소곳이 놓아둔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앞선 조끼와 같은 문제이다.
이 정도 하자는 무조건 환불각이다. 그러나 내가 만든 작품들이기 때문에 어디서 환불을 받을 수도 없고, 일단 대충 써본다.
그러나 사용해 보니 신기하게도 이것들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끼 지퍼는 굳이 자주 여닫을 일이 없었고, 필통은 어차피 열어놓고 사용하는 내 생활습관 덕분에 지퍼가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다음에 만들 때는 자석 단추를 다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언제쯤 만들지는 모르겠다.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도 손이 자주 가는 것들이 있다. 특히 옷들은 핏이 예쁘면 다 괜찮아 보인다.
Fit_모양이나 크기가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맞다.
나와 잘 맞는 사물이 있다. 그런 사물은 단점이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단점 없는 사람 없고, 나 또한 그런 것처럼 나와 핏이 잘 맞는 누군가에게는 손 내밀기도 쉽다. 인간관계는 노력해도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일단 인간 사이에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부터가 핏이 어긋난 게 아닐까.
이 글을 쓰는데 우리 집 고미 씨가 생각난다. (아, 고미 씨는 남편이다. 곰처럼 생겼다.)
아무래도 고미 씨와 나는 핏이 잘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