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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Jun 12. 2023

머리숱이 많아 슬픈 아이

나와 남편은 머리숱이 많은 편이다. 반곱슬에 머리카락도 두껍다. 일명 개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나의 머리카락이 싫었다. 새까맣고 두꺼운데 꼬불거리는 돼지털이 간간이 섞여 있어서 머릿속을 헤집어 까슬까슬한 돼지털을 골라내 뽑아버리는 게 습관이던 시절에는 말이다.

그때 엄마가 그랬다. "숱 많은 거, 복이다. 얼마나 좋아."

개뿔, 좋긴. 나는 나의 머리카락이 너무나 싫었다.

잔머리도 어찌나 심한지 머리를 묶어도 부스스한 게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나는 내가 가진 것들에 고마움보다는 불만이 많은 편이었다. 생각해 보면 감사할 것들도 참 많은데 말이다. 젊은 시절 나의 장점에 더욱 집중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또 하고 있다. 여전히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건 나이가 들어도 크게 변하지 않는 점 중에 하나이다.


특히 외모에 불만이 많아, 나는 내 딸도 그렇게 스스로의 외모에 좌절을 할까 봐 슬쩍 걱정이 된다. 제 아빠를 닮아서 뽀얀 피부를 가지고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생뚱맞게 외할머니의 까무잡잡한 피부를 물려받았다. 친할머니의 두꺼운 쌍꺼풀은 물려받지 못했고, 결국 엄마 아빠의 새까만 반곱슬을 가지고 태어났다.

나는 딸아이의 단점을 바라보며 걱정하는 엄마가 되었다.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던 엄마라서 그런지, 딸의 단점을 보며 아이도 나처럼 외모에 자신감이 떨어져 사춘기 시절에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하며 자라날까 봐 벌써부터 지레 걱정이다.

아이도 스스로 자기는 예쁜 편이 아니라고 한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눈 밑에 점만 찍으면 장원영 닮았다고 하던 아이였는데 말이다. 그때 속으로 어이없어하며 "그럼 펜으로 점을 찍고 다니면 되겠네."라고 말해줬는데, 그 새 자신의 모습이 장원영과는 딴판이라는 것을 눈치챘나 보다.

평생 눈치채지 못하고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하며 살면 좋았을 텐데.

자기가 예쁘다고 생각해야, 더욱 꾸밀 줄도 알고, 꾸미다 보면 더 예뻐지는 게 여자니까, 스스로의 외모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으면 좋겠는 바람을 가지는 건 엄마로서 희망사항일 뿐이다.

어딜 나가면 아들은 잘생겼다는 소리를 제법 많이 듣는다. 그 아이는 아빠 키만 안 닮았으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키만 크면 외모로는 평균 이상을 할 텐데, 하며 아들은 키가 컸으면 좋겠고, 딸은 피부가 좀 뽀얘졌으면 좋겠다.


참으로 자식에게 바라는 것도 많다. 아니, 원하는 유전자를 물려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

그런데 이게 미안할 일인가. 나한테 그런 유전자가 없는데 어떻게 줄 수 있겠는가.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외모가 아니고 내적인 힘을 길러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데도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다. 나중에 아이가 나를 원망할까 봐, 그게 걱정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엄마 때문에 너무 못생겨서 내 인생이 힘들어,라고 할까 봐.


나를 닮아 숱이 많은 아이는 발레를 할 때 걸림돌이 된다. 머리를 말아 올려서 망에 넣어야 하는 발레의 특성상, 망이 터져나갈 듯이 커지면 안 된다. 망에 넣은 머리똥은 최대한 납작하게 눌러줘야 하는데, 아이는 길고 숱도 많아 항상 빵빵한 똥이 된다.

그래서 발레 콩쿠르에 나가기 전, 항상 숱을 친다. 요즘에 몇 번 숱을 쳤더니 잔머리가 심하게 많아진 기분이 든다. 그래도 여전히 머리를 올릴 때면 머리 해주시는 선생님께서 늘 한 소리 하신다.


사십 대가 되어 바라보니 또래 엄마들 중에는 정수리에 두피가 보이는 분들이 간혹 계신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느냐고, 머리를 감을 때마다 빠지는 머리카락에 속상함을 토로하신다.

그런 걸 보면 우리 엄마가 30년 전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머리숱 많은 거, 복이야." 그리고 그 말을 딸에게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다.

역시나 딸은 30년 전의 나처럼, "그래도 나는 좀 갈색이면서 얇은 머리카락이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그 시절의 나는 아직도 내 속에 있다. 그래서 아이의 마음이 백 프로 공감되고 이해된다. 하지만 인생은 더 살아보기 전에는 후회할 것도, 아쉬워할 것도 없다는 것까지는 아이는 모르리라.

아이에게 그런 깨달음의 시간은 30년쯤 더 흘러야 올 테니, 너의 안타까움이 인생에 더 큰 영향을 미치지만 않도록 나는 애쓸 뿐이다.

많은 것을 주지 못함을 미안해하지도 않아야겠다. 정말 내가 미안해야 할 일은 유전자가 아니라, 생활태도일 테니까.

여전히 나는 미성숙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감사하는 삶을 지 못한다.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되는대로 살았을 텐데, 그래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걸 보면, 역시 육아는 고되고 힘들지만 나를 키우는 최고의 수양법이라는 건 확실하다.


머리숱이 많아 슬프던 나는, 숱이 많아 속상한 딸의 엄마가 되었다.

숱이 많다는 건 슬플 일이 아니라 행복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의 30년을 응원하며 긍정회로를 돌리는 엄마가 되야겠다.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이라는 걸, 열 살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 살아보지 않으면 모른다. 단점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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