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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Jan 30. 2023

지금을 살다

잘 익은 망고열매색 하늘이 보이는 여기

우리 집 뒤쪽 창으로는 인천대교로 들어가는 고속도로가 보인다.

이 동네로 이사오기로 하고 집을 보러 왔을 때 뒤창으로 넘어가는 붉은빛에 감탄을 쏟아내며, 마음을 확신하고 말았다.

-그래, 이 집이야.

결정을 하고 나서도 부동산에 나와 있는 매물을 몇 군데 더 보았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도 있었고, 빈 집도 있었다. 해가 넘어가는 즈음의 그 분위기에 취해 아파트만 결정했지 '바로 그 집'이 아닌 조건에 맞는 다른 집을 매매했다. 그러나 이사를 온 후, 아무리 기다려도 나를 반하게 만든 석양을 도무지 만날 수가 없었다.

한눈에 반해 다 같은 뷰를 보장하리라고 나 혼자 단정하고 이 아파트라면 다 좋아, 를 외쳤던 나를 반성했다.




새벽에 부엌 식탁에 앉아 인천대교를 오가는 자동차의 불빛들을 바라본다. 저 다리를 지나면 공항이 있다. 물론 저 다리를 지나는 사람의 반의 반의 반도 공항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왠지 저 불빛들 속에 있는 사람들은 곧 이륙할 것만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그래도 저 길을 지나면 공항이 나오지,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외국에 갈 수 있지, 하는 생각.

멍하니 차들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새벽 시간은 싸늘한 공기처럼 흘러간다.


자유롭던 시절에는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다. 달콤한 이미지로만 존재하던 도시들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었을 때, 대체적으로 당황스러웠고 적당히 실망했다. 

늘, 여행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다.

-아, 이제 집에 간다.

그럴 것을 뭐 하러 떠났을까. 

-여기를 떠나면 뭐 새로운 거라도 나올 줄 알았던 모양이지? 흥, 그런 건 없단다.

젊은 시절 몇 번의 비행으로 내가 깨달은 것은 그거 하나다.


여기에서 만족하기.

진짜 여기에서 만족할 거야? 더 높은 곳을 향해가야지. 

늘 앞으로 나가고만 싶었고, 이곳을 탈출하고만 싶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어디를 가도 만족하지 못했고, 다시 돌아가고만 싶었던 그런 여행처럼, 나는 오늘도 조금 우울했다.




우리 집에 살게 된 지 일 년 가까이 되어가던 어느 날, 저녁을 하고 있는데, 부엌 창으로 빨간빛이 들어와서 눈이 부셨다.

처음 집을 보러 다닐 때 만났던 그 석양을 시월의 어느 날에 마주쳤다.

집을 보러 다닐 때가 이때쯤이었다. 이사를 들어온 건 겨울이었고, 그래서 이 석양을 그동안 못 만났던 건가.

정말 그런 걸 수도 있고, 그날은 유독 날씨가 좋아서였을 수도 있다.


소설 긴긴밤에 나오는 바로 그 잘 익은 망고열매색 하늘이 여기 있었다.

일 년에 딱 한 번 이맘때쯤에만 볼 수 있는 망고빛이었다.


파랑새 이야기는 동화책에서만 나오던 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 누군가는 내가 깨어나기도 전에 이미 옷을 입고 자동차를 끌고 저 고속도로로 들어선 그 시간들이 있다. 

모두의 하루가 똑같지 않으니, 모두의 내일도 똑같지 않을 수밖에 없다. 진부하지만 내가 어떻게 살게 될지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변한다.

그래서 오늘도 힘을 내야 한다.

이렇게 우울감에 빠져있어도 새벽이 지나, 내가 먹이고 키워야 할 생명들이 시작하는 하루를 나도 같이 살아내야 할 것이다.


왠지 마음속에 걱정과 불안이 다시금 차올라도 그것들을 떨쳐내기에는 내가 역부족인 이런 날도 있는 것이라고, 나는 공항으로 떠나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조차 없는 사람이지만, 언젠가는 북유럽 어느 도시에서 하루종일 저 잘 익은 망고색 하늘을 바라보고 있게 될 날을 또 그리워한다.

결국 다시 돌아오고 싶어 안달나 할 걸 알면서도 해보고 싶다. 어쩔 수 있나. 해보고 싶으면 해 보고 또 후회하라지.


그런데 북유럽의 백야가 하루종일 석양은 아닐 텐데. 뭐, 또 실망만 하는 여행이 될지라도.

인생은 그냥 힘을 내보고 견뎌보고 시간을 짜내봐야지만 뭐라도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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