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욕을 한다. 그런데 잘하지는 못한다.
영화에서 욕을 찰지고 맛깔나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리만족을 느끼곤 한다.
고기도 뜯어본 자가 잘 뜯는다고, 욕도 많이 듣고 많이 해봐야 하는데 욕을 한 지 얼마 안 됐다.
들어주는 자가 없으니 늘지를 않는다. 그렇다. 나는 욕을 잘 하지만 주로 혼자 있을 때 한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고상하고 우아하게 콧소리를 내며 혼잣말을 하고 싶었는데, 혼자 있으면 다른 인격이 나온다.
나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그런데 삶이 너무 답답한 거다. 노래방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치며 노래를 할 물리적 시간도 없고, 욕이라도 안 하면 속이 터질 것 같아서 혼잣말로 욕을 뱉었다. 어, 약간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이번에는 더 걸쭉하게 뱉어본다.
대놓고 싸울 수 없는 사람들(대부분 내 주변인들이 해당한다.)을 떠올리며 욕이라도 뱉어낸다.
소리도 같이 지르고 싶은데, 그건 누가 들으니까 안되고, 낮게 읊조린다.
"이런 십팔쌕조카크레퐈쓰 신발들 같으니라고"
사실 안전운전을 하는 건 당연하지만 나는 사고가 나면 큰일 난다. 블랙박스 제출 불가다.
예전에 라디오에서 어떤 게스트가 그랬다. 결혼할 사람의 진면목을 알고 싶으면 그가 운전하는 차의 블랙박스를 확인해 봐라, 와 썅. 그럼 나 완전 결혼 못해.
인간의 한 면을 보고 그 사람을 다 판단하면 안 된다. 나는 그 정도 인간쓰레기는 아니다. 그냥 사람에게 대놓고 못하니까 혼자 하는 것뿐이다. 그 분은 진정 모든 면이 일관되시는지 궁금하다.
대놓고 못하니까 혼자 하는 찌질이라고 욕해도 할 수 없다. 나는 그래도 사람 면전에 대고 욕하느니, 찌질이로 살겠다.
나한테 땍땍거리며 잔소리를 늘어놓던 엄마가 전화가 오는 순간 목소리 톤이 상향되면서 세상 그렇게 친절한 사람도 없는 듯이 말하는 걸 보면 정말 가식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러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공적인 나와 사적인 내가 서로 다른 인격체로 살고 있지 않나. 나만 그런가.
"나도 순례자가 되고 싶다. 순례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내 인생에 관광객은 되고 싶지 않다."
순례주택, 유은실
안타깝게도 나는 성지를 순례하는 순례자가 될 수는 없다.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 마더테레사처럼 살기에는 나는 내가 너무 빈약하다. 그래도 겉보기엔 우아한 할머니가 되고 싶었는데, 마음이 지옥인 채로 행동거지만 우아하면 병들기 쉽다. 나는 건강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고 진짜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을 욕으로 장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혼자 있을 때만 여전히 욕을 할 것이다. 화가 나면 욕을 뱉을 것이다. 나도 좀 살아야 하지 않겠나. 모두를 이해하고 포용하고 안아줄 수는 있다. 그런 다음에 내 마음도 돌봐 줄 것이다.
많은 심리치료사와 상담사들이 내담자가 되어 상담을 받는 경험을 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것들을 돌봐주기만 하다가는 자신의 마음에 병이 생기기 십상이다. 내 마음이 건강해야 다른 사람의 마음도 돌볼 수 있다.
"어른이 왜 솔직해. 마음을 좀 숨겨."
-순례주택, 유은실
너무 솔직하게 나의 모습을 다 보여줄 수는 없다. 나는 어른이니까, 나의 마음상태를 아이들에게 여과 없이 노출할 수는 없다. 내 마음은 자주 가라앉기 때문이다. 가라앉은 나에게 침잠당하지 않는 방법은 나를 속이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타인에게 나의 진정한 내면을 속속들이 들키면서 살 수도 없으니, 나는 나를 철저히 숨길 것이다.
그래도 가끔 마음의 소리가 바깥으로 나올 때가 있다.
...... 썅.
너무 화나면 나도 모르게 나온다.
습관은 무서운 법이다. 자꾸 하다 보니 습관처럼 나오기도 하는 이 욕지기들. 철저히 숨겨야 하는데 실패할 때도 있다.
우아한 할머니가 되고 싶었는데, 다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