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책장 Jan 22. 2023

한 걸음의 진실

우리는 모두 가지 않은 길을 동경한다.

"지금 남편 만났을 때 진짜 이 사람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강후배가 우리를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을 때,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을 삼켜야 했다.

'어휴, 결혼을 왜 그렇게 하고 싶어 해요. 그냥 지금처럼 멋지게 혼자 살지.'

삼십 대 후반 미혼인 강후배는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직장도 있고 귀여움도 있는데 왜 결혼을 못할까를 항상 고뇌하고 틈만 나면 부부생활에 대해 물어오곤 했다.


강후배의 질문에 차선배는 "연애 많이 해봤는데, 이 사람은 다르긴 했어요. 사귀기 전부터 결혼할 거 같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역시 지금도 신혼 같은 차선배의 대답다웠다.

박선배는 "아휴, 내 눈깔이 삐었지."라며 결혼의 진실을 에둘러 표현했다.

나는 "결혼 적령기에 만났으니까 그냥 결혼한 거 아닐까."라고 답했다.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 외치던 모 가수는 얼마 전 뉴스 사회면에 나오던데, 너와 결혼을 못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걸까. 결혼은 정말 도박과 같다. 운이 80%는 차지한다. 아니 90% 이상인 것도 같다. 이 사람이 가정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바람을 안 피울 거라고 나도 내 남편을 아직 장담하지 못한다.



강후배의 자유로움을 나는 항상 부러워한다. 퇴근 후 저녁이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은 우리 중에 강후배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유부녀인 우리를 부러워한다. 어떻게 하면 결혼을 할 수 있는 건지 항상 묻곤 한다. 어떻게 해서 결혼을 하게 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결혼을 하게 된 건데 말이다. 가끔은 그때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지금 육아휴직은 못하더라도 저녁이 있는 삶을 살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남편이 이 사실을 안다면 극대노하겠지만, 내 솔직한 심정이 그런 걸 어쩌나.




"나, 난자 나이가 24살이래요. 완전 난자 여왕인데, 냉동시킬까?"

진지하게 물어보는 강후배를 보며 그래, 누구나 가지 않은 길에 환상이 있는 법이니까. 나도 지금 강후배입장이었다면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근데 아가씨가 난자 검사는 왜 했대?" 역시 직설적인 박선배가 묻는다.

"아, 이 사람들이 뭘 모르네. 요즘 다 검사해요. 언니랑 같이 가서 했잖아. 언니는 자기 난자나이 안 알려주던데. 약간 절망한 느낌?"

, 최선배랑 같이 갔구나. 솔로를 즐기는 듯 보였던 선배도 결혼을 생각하긴 하나보다. 그래 나라도 그랬을 거다.



서른을 막 넘어섰을 때 갑자기, 길에서 만난 배 위에 손을 올린 만삭 임산부를 보고 강렬하게 질투를 느꼈던 경험이 있다.

"나도 임신을 하고 싶다"

아니 무슨 결혼을 하고 싶다도 아니고 연애를 하고 싶다도 아닌 임신을 하고 싶다니.

그리고 우연찮게도 그로부터 6개월 후에 남편을 만났고, 그로부터 6개월 후에 결혼을 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믿음 따위는 나에게 없다. 그냥 모든 것은 우연의 결과였을 뿐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라고 치부하는 이도 있지만, 나는 신 따위는 믿지 않기 때문에, 그냥 우연과 필연의 결과들이 모여서 지금의 내가 된 거라고 생각한다.


그 필연의 일부분은 내가 하려는 일에 한 걸음 내딛는 용기이다. 지금의 나를 이루는 것은 나의 마음이 가는 대로 내가 발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한 발자국도 가지 않으면 열 발자국은 당연히 못 가는 법이니까.




난자를 냉동시키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으니, 나는 냉동시키는 데 한 표를 던졌다.

박선배와 차선배는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하느냐고 했지만.

나는 꼭 그렇게까지라도 하고 싶다면 해보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이라는 구덩이에 빠져보고 싶다면 빠져보라고. (나만 죽을 수는 없다!)

내가 볼 때는 참 매력적인 강후배인데, 환상 속의 결혼생활로 들어서든, 더 환상적인 솔로로 화려하게 살아가든.

그녀의 선택이 후회 없는 결정이 되도록, 뭐가 되었든 한 발자국 내디뎌보길 권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을 즐기는 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