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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Jan 21. 2023

사람을 즐기는 일

일의 기쁨과 슬픔


어렸을 때는 3월이 싫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모든 것이 변하는 그 환경 덕분에 친구 사귀기가 어려운 나 같은 사람은 3월이 일 년 중 가장 추운 달이었다.

소녀들에게 친구라는 건 꼭 필요한 거였다. 꼭 '너'라서가 아니고, 그냥 내가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한 액세서리 같은 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가 전부였던 그 시절, 반이 바뀌면 또다시 새로운 친구를 찾아 헤매고 무리를 지어야지만 마음이 안정되던 미숙한 계절들이 있었다.

친구를 사귐에 느린 나는 3월은 참으로 마음  시린 달이었다.



지금은 그렇게도 싫어하 3월이, 여전히 싫다. 새로운 학급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아이들도 어렵지만 교사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심지어 학교를 옮긴 해라면 추운 학교가 더욱 시리게 느껴지곤 한다. 

그래도 이제는 더 이상 무리를 찾아 어슬렁대는 하이에나는 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의 저의를 잘 못 느끼는 병이 있는데, 쉽게 말해 눈치가 없는 것이다.


한 번은 동료 두 명이서 청첩장을 내밀었다. 나는 그들이 사귀는 줄도 몰랐다. 역시나 그들은 비밀연애를 하고 있긴 했지만, 나만 빼고 다른 분들은 대충이라도 눈치는 채고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나는 얼마 전에 그 두 명과 셋이서 고기를 먹었다. 잘 익은 고기를 여자동료의 앞접시에 놓아주는 남자동료를 보고도 하등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왜 데이트하는 연인 사이에 껴서 고기를 먹었을까.


언젠가는 개교기념일에 같이 에버랜드에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나이가 좀 있으신 남자 선생님과 나보다 어린 여선생님이었는데, 거절을 잘 못하는 나는, 그 귀한 개교기념일에 가고 싶지 않은 에버랜드에 같이 가게 되었다. 남자 선생님의 차를 타고 갔는데, 조수석에는 여자 선생님이 앉으셨고, 나 홀로 뒷자리에 앉았다. 뒷자리에 앉는 순간 느꼈다. 아, 나는 들러리구나.



몇 번의 눈치 없는 시기를 보내고 이제 나이먹어서인지, 나름대로의 의연함이 익숙해져서인지, 근에는 직장 즐거 때가 많다. 눈치채지 못하던 동료들의 속 깊은, 의외의 배려심을 발견할 렇다.


더운 여름 어느 날 박선배가 어젯밤에 얼려놓은 건데 오는 동안 다 녹았다며 꺼내 준 이슬 맺힌 반쯤 언 스타벅스 카페라테 컵커피에서, 평소 그녀의 성격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다정함을 알게 되는 기쁨이 즐겁다.


상담하느라 급식을 못 먹고 복도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있다가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교실에서 커피로 배를 채우던 내게 빨리 와서 식사하라고 메시지를 보내주시는 영양선생님에게는 감사함을 넘어서는 따뜻함을 발견다.


매 순간 느리고 눈치가 없는 나는 게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본캐를 발견할 때 유레카를 외칠 만큼 겁다.

눈치 없는 내가 깨닫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워 그런 날은 직장이라는 틀에 갇혀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쁘다.


친구를 사귀려고 눈치게임을 시작하지 않아도, 다정하고 어여쁜 동료들과의 평범한 하루가 감사한  그런 날들이 반드시 온다고, 열다섯 살의 나에게 말해준다면 그때의 나는 3월에 조금은 웃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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