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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Jan 25. 2023

말이 많으면 실수를 하게 된다.

나는 말이 많지 않은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방에 들어가서 인형놀이를 하곤 했다던 나는 친구들과 있을 때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주로 삼켜버리는 게 뱉어내는 것보다 속이 편한 사람이다.

말이 워낙 없다 보니 속에 있는 말들조차 누군가와 나눌 기회가 별로 없이 살았다. 사실 엄마와 가장 많은 대화를 하며 살아왔지만, 나의 힘든 상황을 토로했을 때 돌아오는 건 "네가 잘해야지."였다. 그러다 보니 엄마와도 점차 말을 하지 않게 되었고, 워낙 성향상 수다를 싫어하기에 말을 안 해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던 나의 인생에 복병이 찾아왔다. 바로 남편의 엄마다. 시어머니는 내가 가까이 지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수다스러우신 분이시다.

신혼 때에는 남편이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는 당연히 내가 앉았다. 시어머니께서는 뒷자리에 앉으셔서 앞 좌석에 앉은 우리와 나란히 하실 정도로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얼굴을 내미시고 차가 멈출 때까지 계속 말씀을 하셨다. 문제는 남편도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말이 없다는 점이다. 어머니의 말씀에 "네, 네" 대꾸해야 하는 건 나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시어머니를 만나고 오면 정신이 사나워 자주 체하거나 두통이 오기 일쑤였다.

요즘에는 차에 같이 탈 일이 있을 때 어머님이 조수석에 타시고 나는 뒷자리 아이들의 카시트 사이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는다. 사실 이 자리는 매우 불편한데, 카시트 때문에 더욱 힘들다. 그래도 어머님의 말씀에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꽤나 마음에 들어 괜찮다.


아이들이 놀면서 저희들끼리 하는 말에도 어머님은 일일이 대답을 하신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블록을 가지고 놀고 있을 때,

"야. 이거를 여기에다가 끼워야지." 한 아이가 말하면, 어머님은 거실에 계시다가도 아이 말에 대답을 하신다. "그래. 거기다 끼워. 끼워. 끼워야지."

아이들끼리 언성이 높아지면 나는 더 큰 싸움이 되기 전까지는 내버려 두는 편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꼭 참견을 하시며 "왜. 왜. 왜. 누나가 잘 돌봐줘야지."

눈치 채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어머님은 같은 단어를 세 번 이상 사용하기를 즐기신다.

질문을 하시고서도 "이거 먹어봐. 엄마가 무친 거야. 맛있지? 응? 응? 응?"

"네."라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응?"이 계속된다.

나는 내가 만든 음식에 맛있냐고 물어보기가 참 쑥스럽다. 그냥 맛있으면 다 먹겠고, 남기면 맛이 없다는 뜻이니까 굳이 물어볼 게 있나. 그리고 맛있냐고 물어보는데 맛없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없어도 있다고 할 테지.


그러다 보니 어머니와 대화를 하고 돌아오면 어머니의 말실수를 종종 반추하게 되는 시간이 생긴다. 그때 어머니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지?

우리 엄마 말에 따르면 나는 반응속도가 남들보다 반박자정도 느리다. 그리고 어머니 말씀에 정면으로 말대꾸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와 생각이 달라도 그냥 듣고 있다가 장단을 맞추기만 하고 돌아오는 편인데, 집에 와서 생각이 많아질 때가 종종 있다.


이번 방문에도 어머니께서 나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시고 말았다.

시부모님께서는 이혼을 하셨는데, 시아버지의 불륜 때문이었다.

그날도 시아버지 과거 이야기를 하시다가, 시할머니 이야기까지 하게 되셨다.

"그때 그 여자를 데려다가 너네 시할머니가 밥을 해 먹였잖아. 내가 그걸 알고 시어머니한테 전화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졌더니 뭐라는 줄 아냐? 너도 니 아들이 바람피워봐라. 내 심정 이해하지, 이러더라? 기가 막혀서. 나는 내 아들이 아무리 바람을 펴도 그 여자 데려다가 밥 해먹이지는 않을 거야. 야. 두고 봐라. 쟤가 다른 여자 데려와도 나는 너를 안 버려. "

이미 나는 여기에서 할 말을 잃었다. 어머니의 아들이 바람을 피울거라고 장담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기분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피가 어디 가겠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지. 그 피가 어디 안 가지."

마지막 말씀은 정말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아들이 바람피울 거라는 것을 가정하고, 며느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리 엄마라도 도를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결혼 철칙 중 하나는 시댁 식구들의 어떤 언행에 대해서도 서운하거나 기분 나쁜 티를 남편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나의 엄마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남편이 내 엄마 욕을 하면 나는 분명 기분이 많이 험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남편에게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거렸다. 결국 돌아오는 차에서 남편에게 우스갯소리처럼 이야기를 던졌다.

"어머님이 피는 어디 안 갈 거라던데? 그 피가 어디 가겠냐고. 마치 예언처럼 하셨어."

웃으며 뼈를 담아 남편에게 건넸다. 바람피우면 죽는다,는 속마음을 뼈에 담아.

남편은 "엄마가 점점 이상해져. 꼰대가 돼 가고 있는 거 같아. 쓸데없는 말이 점점 많아져."라고 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어머님은 처음 만난 십 년 전부터 변함이 없으시다. 남편 눈에는 여전히 엄마가 애처로운가 보다.


말이 없는 두 부부는 더 이상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괜히 남편이 바람피울까 걱정이 되는 나는 다음날 남편이 갑자기 운동하러 다녀오겠다며 나간 후 몹시도 불안하고 기분이 더러웠다.

최강 한파가 전국을 휩쓴 날, 굳이 운동을 하지도 않던 인간이 스스로 운동을 갔다. 누가 봐도 나에게 말하지 못하는 곳에 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주 열불이 났다. 평소라면 그랬을까. 쿨하게 다녀와,라고 했을 나인데, 바로 어제 들은 말이 뇌리에 남아 있어서 그쪽으로 사고가 기울어버렸다.

나는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나간 지 십 분 만에 돌아온 남편을 보고 안도를 했다.

"어우 추워. 나가자마자 왔네. 왜 이렇게 추운 거야. 운동 못하겠어."


아들 부부에게 부부싸움을 선물할 뻔한 어머니의 일화는 무궁무진하지만, 나는 어머니 또한 남편과의 이혼으로 가슴에 울분이 얼마나 쌓여있을까, 그 속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은 할 것이다. 자식들에게도 눈치 보며 말하지 못하는 노년이라면 얼마나 슬프겠는가.


다만, 시가에 다녀오면 나는 이박삼일은 아무것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고 좀 쉬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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