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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Jan 26. 2023

미용실에 가기 싫다

대길이 머리로 살아가기

미용실을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면 미용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괴롭다.

파마라도 할라치면 2~3시간은 기본이니, 고역이 아닐 수가 없다.

미용실에 가는 것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인 사람도 있듯이, 가는 것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있.

살면서 머리를 하고 예뻐 보인 적이 거의 없었다. 어차피 패완얼이니까, 얼굴이 이럴 바에는 미용실에 가지 않겠다는 거다.


재작년에는 너무 길어진 머리를 자르기 위해 셀프 가위질을 해보았는데 꽤 만족스러웠다. 머리를 이마까지 거꾸로 올려 묶은 후에 끝을 댕강 자르고 머리를 풀면 자연스럽게 층이 진 스타일이 연출된다. 그런데 이 방법은 가슴선 아래로 내려오는 긴 머리에만 추천한다. 짧은 머리는 층이 너무 위로 올라가기 때문에 영구 머리가 될 수도 있다.


작년에는 파마가 하고 싶었다. 쿠팡에서 셀프파마약과 재료들을 구매했는데, 머리를 다 태워먹고 어쩔 수 없이 미용실에 갔다. 상한 부분을 잘라내고 파마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십만 원의 비용이었지만 미용실에서 나오는 나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전혀 곱슬거리지 않았고, 웨이브만 살짝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벌써 1년이 되어간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머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드릉드릉할 때는 네이버 미용실 예약을 했다가 취소하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것도 꽤나 귀찮다.


머리숱이 많고 반곱슬에 두꺼운 모발을 자랑하는 헤어 상태 덕분에 어렸을 때는 가늘고 쫙쫙 펴지는 생머리를 부러워했지만 성인이 된 후로는 여전히 숱이 많은 나의 머리가 이제야 만족스럽다.
미용실에 가면 늘 듣는 말이 있다.

"숱이 많으시네요. 파마가 잘 나오는 머리예요."

그런데 왜 최근에는 파마를 하면 곧장 다 풀릴까.

나이가 들어서일까, 싶다가도 할머니들의 빠글빠글한 파마를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미용사 실력의 부재일까, 그렇다면 요즘에는 빠글빠글 파마를 잘하지 않고 다들 자연스럽게 웨이브 진 머리를 원해서 나까지도 그걸 원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는 분명 뽀글뽀글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말이다. 심지어 사진도 가져갔는데 사진과는 전혀 다른 다 풀린 웨이브로 해놓고, "파마 잘 나왔어요."라고 말하는 건 왜일까. 정말 잘 나왔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면서 네이버 후기를 부탁한다. 악플은 달 수 없으니 후기를 생략할 수밖에 없는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몇 번 미용실 실패를 겪고 나서 이제 미용실에 절대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다 풀린 웨이브를 하기 위해 이십만 원씩 쓰는 건 우리 집 경제 사정에 맞지 않다.

추노 머리를 하고 있지만 나름 히피 같다고 생각하는 나의 헤어 스타일은 할머니가 될 때까지도 유지하고 싶다. 마음만은 보헤미안처럼 말이다. 대길이를 패션아이콘으로 끌고 오는 게 시대에 뒤처진 걸까, 앞서가는 걸까, 나는 심하게 긍정적인 편도 아닌데 마구마구 긍정의 회로를 돌리고 있다.


KBS드라마 추노의 대길이



대학교 때 현직 교사이신 강사님의 강의를 들었던 적이 있다. 50대 후반이셨던 강사님은 새끼손가락에만 매니큐어를 발랐는데, 찐 빨강, 찐 파랑, 찐 노랑 등으로 매주 그 색깔이 바뀌었다.

새끼손가락보다 더 인상적인 건 그녀의 헤어스타일이었다. 허리까지 오는 머리를 풀어헤쳤는데, 당시 유행하던 매직파마 스타일의 '엘라스틴 했어요' 같은 머리가 아니고 부스스한 머릿결이었다. 그런 헤어스타일로 긴치마를 입고 오시는 강사님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건 나의 히피스러운 기질에 그분의 외향이 잘 맞았기 때문이리라. 그때는 나이도 많은 사람이 손톱은 왜 저러며, 머리는 왜 저럴까. 주책이야,라는 생각을 조금 했던 것 같다. 하나 이제 내가 나이가 들고 보니 그녀의 미적 취향을 이해할 수 있다.

남들과 비슷하게 살지 않고 자신만의 매력을 그대로 드러내어 살기를 원하는, 50이 넘은 나이에도 박사과정을 마치셨던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멋쟁이였다.


지금은 천편일률적으로 아줌마 파마를 하고 다니는 40대나 50대는 거의 없다. 다들 나름의 미적 기준으로 자신을 가꾸고 살아간다. 미용실에 가든, 가지 않든.

가고도 대길이 머리를 할 바에는 안 가고 대길이 머리를 택하겠다.

그리고 나만의 매력을 뽐낼 수 있는 아우라를 만들어 가겠다. 그것이 꼭 눈으로 보이는 외적인 면일뿐만 아니라, 내면까지도 말이다. 나만의 개성을 만들기에 마흔은 늦은 나이가 아니리라 믿는다.


헤어스타일에 나이가 있으랴, 나는 긴 머리를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보헤미안 랩소디를 흥얼거릴 법한 반백살이 될 거다.



#이 글은 헤어디자이너들이 싫어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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