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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Feb 08. 2023

무단횡단을 했다

역행자를 읽다가 순리자가 되었다

평소에 규칙과 원칙을 고수하려는 조금은 고지식한 사람이다.

버스줄에서 끼어든다던지, 쓰레기를 아무렇지 않게 흘리는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욕을 한다. 신호를 지키지 않고 불법유턴을 하거나 잠시 편하자고 불법 주정차를 하는 차들을 보면 너무나도 신고하고 싶어 진다. 아쉽게도 운전 중에 핸드폰을 보는 것이 익숙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행동은 무섭기 때문에 안전신문고 앱을 깔아놓기만 하고 신고를 못해봤다. 

나는 이 세상 규칙을 다 잘 지킬 것처럼 깨끗한 척은 혼자 다했는데, 얼마 전 무단횡단을 했다. 그것도 아이의 손을 잡고 말이다.




유치원버스를 타려면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그렇지 않은가. 아이를 데리고 출발하려면 그때서야 화장실에 간다거나, 그때서야 깜빡한 포켓몬 카드를 챙겨야 한다거나. 

나는 원리 원칙을 강조하는 중에서도 특히 지각에 무척 예민한데, 무조건 일찍 가있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도 아이를 낳고 나니 그게 내 뜻대로 되지 않아 무척 속이 타들어갈 때가 많다. 

내가 지각을 싫어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나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게 싫고, 좀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자면 욕먹는 게 싫어서다.


그날도 아이는 양치를 한 뒤, 가글을 해야 한다며 가그린을 오물오물 거리며 태연하게 쳐다보았다. 내가 계획한 시간이라면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하는데 말이다. 엘리베이터부터 잡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하는 운동화를 찾기 위해 다시 신발장을 연다. 으악, 엘리베이터는 13층에 왔다가 다시 내려가 버렸다.

유치원버스 도착 시간이 3분 남았다. 3분 동안 옆 단지까지 뛰어야 하는데, 항상 관건은 신호등이다. 

큰길로 달려 나갔다. 그런데 보여서는 안 되는 유치원 버스가 벌써 좌회전 신호를 받고 서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빠른 상황판단으로 그냥 길을 건너버렸다. 물론 동네에 차들이 잘 없다. 좌우를 살피고 차가 없음을 확인하고 건넜지만, 전력질주를 하는 그 숨이 턱에까지 오는 상황에서도 아이에게 말했다.

"이호야, 이건 특별 상황이야. 헥헥. 유치원버스가 우리를 기다리느라 늦게 출발하면 모두에게 피해가 돌아가잖아. 사람은 융통성이 있어야 해. 헥헥. 아이고 숨차. 빨리 뛰어. 그리고 이 상황은 잊어버려. 비밀이야. 그리고 혹시 너 혼자서는 절대 무단횡단하면 안 돼. 헥헥헥."


겨우 유치원버스를 태우고 돌아오면서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내가 그렇게 욕하던, 아이와 함께 무단횡단하는 엄마가 되었다. 




이십 대 시절, 무단횡단을 하다가 경찰에게 걸린 적이 있었다. 그때 난생처음 경찰이 나에게 다가오는 경험을 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신분증을 제시하라는 경찰관에게 나는 한 번만 봐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사실 나는 무단횡단을 하는 줄도 몰랐다. 처음 가는 길이었는데, 골목길 수준이었다. 높은 건물들에서 찾고 있는 간판을 쫒느라 하늘만 보고 걸었다. 대로 가였으면 절대 무단횡단을 하지 않았을 거다. 

아마 그곳에 경찰이 서있었던 것도 신호등이 없게 생긴 곳에 사람들이 편안하게 길을 건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어서 무단횡단이 많은 곳이었기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벌벌 떨며 한 번만 봐달라는 나를 보고 경찰관은 한숨을 푹 쉬고 가라고 손을 까딱까딱했다.

모범생으로만 살다가 경찰에게 애원하는 나를 맞닥뜨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이후에는 신호를 잘 지켜서 건너는 것에 더욱 열심히 살았다.

다시는 경찰관에게 사정하며 비는 수치스러운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젊었을 때는 안 그러시더니 60대가 넘고 나서부터 길 가다 침을 그렇게 뱉어댔다.

"엄마, 침 좀 뱉지 마."

내가 인상을 쓰며 그렇게 말해도, 엄마는 "침이 나오는데 어떻게 안 뱉냐."그러시고 우리 아이를 안고서도 침을 그렇게 뱉어대셨다. 말해봤자 싸움만 나니까 나는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지만 엄마와 길을 걸을 때면 너무 불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그러셨다. 

나이가 드니까 목에 이물감이 너무 느껴져서 침을 삼키기 어렵다고. 

길에서 침을 뱉는 노인들을 보면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때부터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침은 사람 없을 때 뱉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깊이 들어가 보면 사정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학기 초와 학년말에는 복도에서 뛰는 녀석들을 잡아내려고 앞문 앞에 서있게 된다.

왜 학기 초와 학년말이냐면, 학기 초에는 아이들에게 규칙이 무엇인지 알려줘야 했고(물론 녀석들은 알고 있다. 몸이 안 따라줄 뿐) 학년말에는 나에 대해 모든 것을 파악한 녀석들이 나를 우습게 알고 게기기 때문이다. 선생님한테 걸려도 별로 안 혼나, 하나도 안 무서워, 뭐 이런 거. 그래서 무규칙의 시대가 도래하는 때가 바로 학년 말이다.

복도에서 뛰는 녀석 하나를 잡는다.

"왜 뛰어?"

"화장실 급해서요."

화장실이 급하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래도 뛰지 말고 가세요."


또 한 녀석 잡는다.

"왜 뛰어?"

"그냥요."

그래, 한창 뛸 나이지.

"뛰지 마세요."


사실 긴 복도를 보면 뛰고 싶게 생겼다. 얼마나 전력질주하게 생겼는지 복도 끝에 한 번 서보면 알게 된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지 않나.

나도 핑계 한 번 대본다.

-유치원 버스 놓치면 안 되잖아요.




요즘 "역행자"를 읽고 있다. 남 탓, 환경 탓을 하며 나 스스로를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우리는 자의식의 노예라고 한다. 그것이 바로 순리자의 길이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듣던 말, 순리대로 살아라.

그게 정답인 줄 알았는데, 역행해서 살라니, 너무 참신했다.


복도에서 뛰다가 친구랑 부딪히거나 넘어지면 안 된다. 

무단횡단을 하다가 사고가 나면 어쩌려고 그러나. 

그런데 가끔은 복도에서 뛸 수도 있고, 가끔은 침을 뱉어야지만 할 때가 있지 않을까. 이걸 누군가는 합리화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자의식을 해체하는 중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핑계를 또 대본다.

역행자를 읽다가 이상한 쪽으로 역행하고 말았다.


사실 나도 아이가 없었다면 아이의 손을 잡고 무단횡단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아닌 타인을 온전히 케어한다는 것, 인생에서 이렇게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또 있었나 싶다. 육아란 내가 맡은 일중에서 가장 진이 빠지고 무기력해지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안돼. 이번 생을 틀렸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와의 삶은 매일매일이 시행착오다. 시행착오가 있기 때문에 내일은 또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아이와의 삶만 그런 것은 아니다.

마흔이 넘은 내 삶도 그렇다. 변명과 순리라는 틀에 갇혀 또 하루를 자책하며 보내는 밤이 돌아와도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웃을 수 있는 것이겠지.



#역행자.나는 아직은 순리대로 사는 게 조금은 더 좋다. 그래도 매일 읽고 쓰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으니 나도 언젠가는 역행자가 될 것이라는 희망은 놓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도 무단횡단은 잘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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