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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책장 Feb 07. 2023

남편의 새벽은 소란하다

잔소리하지 않기

아침 5시 30분 알람이 울린다. 핸드폰에 최대음량으로 설정된 알람이다.

거실에 앉아 있던 나는 마음이 급해진다. 

-저걸 빨리 끄지 않고 왜 저러고 있어.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나는 남편이 오는 날은 조금 소란스러운 새벽을 마주쳐야 한다. 새벽시간기상은 나만의 고요한 혼자 시간 확보를 위해 꼭 필요한 루틴인데 아이들이 깨어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혹시 아이들이 일찍 일어나는 날은 기분이 급하강한다. 그래서 나는 늘 살금살금 조심조심, 정수기 물도 소리가 나지 않게 컵을 높이 치켜들고 따른다. 

그러나 그의 알람이 울리는 새벽은 짜증이 솟구친다.


신혼 때부터 남편의 알람이 항상 나를 깨웠다. 임신해서 잠이 많아졌을 때에도 늘 그의 알람에 먼저 기상하는 것은 나였다. 알람을 해놓고 자는데 알람 소리에 일어나지 못할 거면 왜 해놓고 자는 걸까.

결국 알람을 끄고 그를 흔들어 깨운다.

하지만 둘이 살 때, 내가 조금 불편을 감수하는 것과 아이들을 키울 때와는 모든 것이 다르다.

알람소리에 아이들이 깨어날까 봐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나는 적어도 핸드폰으로 소리 나는 알람을 해놓고 자지 않는다. 누군가와 한 방에서 자는 날에는 그것이 당연한 예의라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나의 단잠까지도 깨워버리는 기상 알람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핸드폰 알람도 진동으로 설정하고 자는 나는 그걸 이해할 수 없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저렴한 샤오미 미밴드를 구입해서 잘 사용하고 있다. 미밴드에 알람 진동을 설정해 두고 손목에 차고 자면 조용히 기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스마트 워치(미밴드보다 비싼 삼성 스마트 워치가 있는 사람이다!)를 차고 자는 것은 불편해서 싫다고 한다. 

본인의 편함을 위해 동거인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있는 것을 왜 못 느낄까.




남편에게는 장점이 많다. 새벽까지 술을 마셔도 늘 일찍 일어나 출근하고, 그만두는 젊은이들이 많은 공사현장에서 20년 가까이 일하고 있을 정도로 성실하다. 본인 피셜, 노동자분들이 다 자기를 좋아하고, 하청업체 사장님들과도 친분이 좋아 많은 일들을 자기가 해결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남자들이 이 정도로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간다."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런 사람이다. 열심히 일하고 꽤나 능력이 있다. 일에 있어서는.




나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이것은 남편도 인정한다. 그런데 내가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은 그를 위해서가 아니고 분란을 싫어하는 나를 위해서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잔소리를 매우 싫어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럴 테지만 말이다.

얼마나 싫어하냐면 아무 생각 없던 행동도 누군가 지적 아닌 지적을 하면 오기가 발동해서 더 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내 안에는 청개구리가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냥 남들이 하라고 시키면 다 싫다.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시어머니는 뒤통수 예뻐지게 엎어놓고 키우라고 볼 때마다 매번 그 소리를 하셨다. 나는 죽어라고 애를 똑바로 누워서 키웠고, 지금 아이 두상은 나쁘지 않다.

또 백일부터는 분유먹이라는 소리를 하셔서 나는 돌 때까지 모유를 먹였다.

이번에는 둘째를 낳고 모유수유에 실패했다. 아이가 젖을 잘 물지 못했는데 큰아이도 가정보육을 하고 있으니, 둘째 젖 먹이는데 온 힘을 다 쏟을 수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백일까지는 모유를 먹여야 한다고 통화할 때마다 말씀 하셨지만 이미 젖이 잘 안 나오기도 하는 걸, 또 나는 그냥 젖을 확 떼버리고 분유를 먹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분유먹인 둘째가 우리 집에서 면역력이 제일 좋다. 제일 어린놈이 감기, 코로나, 장염 등에 가장 굳건하다.)

누가 A로 하라고 하면 B로 하려고 애를 쓰는 내 삶에 잔소리처럼 쥐약인 것은 없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 잡았던 것 같다. 

그래서 결혼하고 나서 내가 가장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은 남편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어린아이 둘을 키우던 시절 어느 날 밤에 시아버지는 나에게 전화해서 이렇게 퍼부어댔다.

"네가 애 술 좀 못 마시게 하고 담배도 끊게 해야지. 지금까지 애가 어디서 술 마시는지도 모르고 누구랑 술 마시는지도 모르면 네가 지금 뭐 하는 거냐?"

주 4회 이상 회식하며 술을 마시고 들어오던 현장이었다. 그나마 집에서 출퇴근하던 현장이어서 그렇지, 주말부부인 지금은 주 몇 회 술을 마시는지 나는 알지도 못한다.

내 밥도 챙기지 못하던 3살, 1살 육아맘에게 퍼붓기에는 역시 육아를 안 해 본 시아버지다운 언급이었다. 

담배를 피우게 하고 술을 마시게 한 건 내가 아니다. 그가 중학생 때 아버지는 집에 안 계셔서 잘 모르겠지만 그때부터 흡연을 했다는데 내가 무슨 수로 금연을 시킨단 말인가.


주로 시가 어른들의 잔소리가 떠오르는 걸 보면 잔소리보다는 시가에 대한 반발인가 싶기도 한데, 우리 부모님들은 나에게 크게 잔소리를 하지 않으셔서 기억에 남는 큰 에피소드가 없기도 하다. 어릴 때 잔소리를 안 듣고 자라서인지, 성인이 된 후 듣는 잔소리는 더 싫다. 아무튼 청개구리는 청개구리다.




남편의 알람은 여전히 속이 시끄럽다. 나 같으면 새벽 일찍 출근을 하면 식구들이 깰세라 조용조용 움직일 텐데, 그에게 그런 배려가 없는 것 또한 아쉽다. 문도 조심해서 닫지 않고, 거실 불도 환하게 켠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출근 준비하는 새벽시간에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니라면 그 어떤 말도 기분이 나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냥 냉장고에서 그가 좋아하는 칸타타 커피캔을 꺼내 건넬 뿐이다.

"잘 다녀와. 다음 주에 봐."

근질근질한 나의 입을 잘 단속해서 잔소리 안 하기 미션을 성공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손을 흔들며 나는 조용히 현관문을 닫는다.


겨우 새벽 6시다.

고된 노동을 향해 떠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안 한 나를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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