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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의 재미

그리고 초보의 특권

by 은구

부산에 갔다. 올해 면허를 딴 언니가 모는 차를 처음으로 탔다. 장산 제1터널에 진입하려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선 행렬 가운데에 끼어서 긴장된 마음으로 언니와 도로를 계속 지켜봤다. 풍문으로 들은 부산의 운전 문화가 반쯤은 사실인 것 같다. 차선을 바꿀 때 아무도 깜빡이를 안 켜는데, 거기에 대고 클랙션을 잘 울리지도 않는다. 뒷유리에 ‘초보’를 거대하게 써붙인 언니 차만 성실하게 깜빡이를 켠다. 이질적인 운전 습관 때문인지, 거대한 초보 문구 덕분인지, 우리 뒤에는 아무도 바짝 붙지 않는다. 넉넉한 간격을 두고 선 뒤차를 보고 ‘부산 인심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tunnel.jpeg 장산1터널, 출처: 부산역사문화대전


상냥한 세상이다. 사실 초보인지 아닌지는 당사자에게만 중요한 사실 아닌가. 당신이 초보인 게 내 알 바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인지 요즘 초보운전 메시지는 점점 ‘나는 굴러다니는 폭탄이니까 알아서 조심하라’는 뉘앙스로 바뀌긴 했다. 나도 우스갯소리로 방안지에다가 ‘전운보초’라고 써야 아무도 안 건드릴 거라고 말을 얹었다. 솔직히 따져보면 언니의 초보 운전이 나보다 훨씬 낫다. 나는 필로티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가 문짝을 필로티에 긁었고, 접촉사고도 났었다. 그 모든 경제적 타격과 심리적 위축을 극복한 후에야 스스로도 초보를 벗어났다는 실감이 났다.


초보를 갓 벗어나면 운전하는 시간이 즐겁다. 초보는 신호등, 차로, 내비게이션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길이 익숙해지면 보이는 게 많아진다. 이 교차로는 얼마나 신호에 여유가 있는지, 어느 구간에서 무단횡단이 자주 발생하는지, 어디쯤에서 차선을 바꾸는 게 제일 적절한지를 알게 된다. 차량 조작법이나 교통 법규를 배우는 것보다 이런 점이 운전에서 배우는 진짜 즐거움이었다. 무질서해 보이기만 했던 세상에 규칙이 있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었다.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다시 마음이 바뀐다. 운전은 그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자 과업일 뿐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길 위의 규칙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그 일부가 되었다. 흐름을 끊는 차가 나타나면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 인내심도 바닥난 지 오래다. 처음 배울 땐 재미있었는데, 이젠 운전하는 재미가 하나도 없다. 어디 크게 초보라고 써붙이고 다시 돌아다녀 볼까. 아니면 나도 부산으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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