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허겁지겁 출근을 한 프랑수아의 머릿속은 뿌옇다. 연핑크색 셔츠 위에 어제도 입었던 네이비 컬러 재킷을 대충 걸치고 뛰어나왔다. 어제 따라 유난히 예민했던 마리-킴과 생각나는 대로 말한 부주의한 자신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리-킴은 왜 그리 『직지』 이야기만 나오면 예민해질까? 이해를 하려고 해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오래된 책이 그녀에게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프랑수아는 10시부터 진행될 복원팀과의 작업에 관해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하나씩 수집한다. ‘복원팀장 루이는 오늘도 팀원들과 작업 전에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올까? 오늘 마르트가 나에게 다시 말을 걸어줄까? 그저께 정말 나는 마르트와 대화를 한 걸까?’ 프랑수아의 시선은 노트북의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지만 머릿 속은 모니터와 별개로 허공을 떠돌고 있다. 다행히 오늘따라 수석 학예사 잔느는 병원을 들렸다가 학예실에는 조금 늦게 출근한다고 한다. 괜스레 마음이 놓인다. 프랑수아는 예순을 바라보는 경험이 풍부한 잔느가 왠지 그의 머릿속까지 읽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9시 50분이 되자 프랑수아는 필기도구와 수첩을 챙겨 미술관 지하에 위치한 복원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가 자주 착용하는 네이비 컬러 재킷은 오늘따라 더 무겁게 느껴진다. 재킷 아래로 보이는 화사한 연핑크 색의 셔츠는 오늘따라 피곤한 프랑수아의 안색을 살짝 밝혀준다. 지하에 위치한 복원실의 철문을 힘을 다해 밀어서 연다. 늘 그렇듯 ‘끼익’하는 약간은 불쾌한 철의 소리가 들린다. 문 뒤에 서있는 루이가 프랑수아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오늘따라 루이는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다. “프랑수아. 오늘따라 되게 피곤해 보이네? 또 잠을 설친 거야?”
“아 네, 어제는 유난히 피곤했어요. 그래서 오늘은 더 조심해야겠어요. 제가 작품 옆에서 부주의한 행동을 하면 안 되잖아요.”
루이는 사뭇 피곤해 보이는 프랑수아를 걱정하며 말을 건넨다. “그지, 그럴 때일수록 더 조심해야지. 그럼 우리랑 커피 한잔하러 가겠어? 아니면 아예 이 아늑한 지하실에서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눈을 좀 붙이고 있겠어? 테이블 옆에 플라스틱 의자 보이지? 저기에 좀 기대서 앉아 있어 봐. 이럴 때는 좀 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이렇게 피곤한 줄 알았으면 오늘 작업은 우리끼리 하는 건데 말이야….”
안타깝게 쳐다보는 루이에게 프랑수아는 “아니에요, 저도 지켜보면서 복원에 대해 어깨너머로 배워야죠. 저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에요. 그럼 다녀오세요. 저도 좀 쉬고 있을 게요.”라고 대답한다.
“응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지. 20-30분 정도 걸릴 거야. 자, 복원팀 이제 나갑시다!” 티타임을 알리는 부드러우면서 강단 있는 루이의 목소리에 복원팀 일동은 프랑수아에게 눈인사를 하며 차례로 복원실을 빠져나간다. 곧이어 복원실의 육중한 철문이 닫히고 프랑수아와 <말렌 공주의 미뉴에트>만 남았다. 피곤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프랑수아 뒤로 누군가 그를 부드럽고 나지막하게 부른다.
“프랑수아, 잘 지냈어?”
화들짝 놀란 프랑수아가 뒤를 돌아본다. 너무 놀란 나머지 안경테 밖으로 동공이 튀어나올 것 같다. 이번에는 잠도 들지 않았는데, 마르트가 그에게 말을 건 것이다. 당황했지만 마르트의 질문에 침착하게 대답하기 시작한다. “네, 뭐 그럭저럭 지냈어요.” 그의 시선은 마르트에 머물다가 곧이어 <말렌 공주의 미뉴에트> 캔버스 위로 이동한다. 캔버스 속의 마르트는 미동 없는 움직임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프랑수아, 그림을 굳이 보지 않아도 돼. 난 여기에 지금 있으니까. 근데 여기가 어디야? 지난번부터 묻고 싶었어. 미술관인 것 같긴 한데. 새로 지어진 건물인가?”
“아, 네 여기는 미술관 맞아요. 그전에는 기차역이었죠. 그리고 더 이전에는 영화 촬영지였고 전쟁 중에는 소포 발송 센터였다고 해요. 마르트도 여기를 본 적이 있을 거예요.”
“응 그랬구나, 어쩐지 익숙했어. 신기한 일이네. 기차역에서 미술관이 되다니.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공간인 건 여전히 동일하네. 근데 프랑수아 무슨 일이 있지? 아까 루이랑 하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어.”
프랑수아는 마리-킴과의 갈등을 마르트에게 공유하기엔 너무 개인적인 일이 아닌가 잠시 고민을 한다. 그러나 포용적인 미소로 답을 기다리는 마르트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음, 이건 개인적인 일인데. 사실 여자 친구랑 다퉜거든요. 같이 산지 이제 이년 정도 되어가요. 여자 친구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동양 고문서 연구자인데, 대한민국이라는 아시아에서 온 유물을 전시하냐 마냐로 인해 엄청 예민해져 있어요. 사실 여자친구는 대한민국 출신의 입양아예요. 어린 시절 프랑스로 와서 줄곧 이곳에서 성장했죠. 생각도 마인드도 완전 파리지엔이에요.”
“응 그랬구나. 특별한 사연이긴 하네. 근데 왜 다툰 거야?”
“그게, 그 유물을 전시하냐 마냐를 두고 상사가 여자친구에게 의견을 물어봤는데, 여자친구가 자기도 모르게 정치적인 이야기를 했나 봐요. 예상치 못했던 자신의 행동에 여자친구도 놀랬다고 해요. 그 뒤로 상사가 자신의 얼굴 표정을 읽으려고 한다고 하는데. 저도 그런 시선으로 여자친구를 바라보았다고 엄청 화를 내더라고요.”
“음, 프랑수아 시선은 과연 어땠었던 것 같아?”
“글쎄, 뭐랄까. 저도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반응했던 거라….”
“즉각적으로 어떻게?”
“저도 모르게 여자친구 자신의 이야기 같다고 말했어요.” 그 순간부터 엄청나게 화를 내더니 저를 뿌리쳤어요. 그전까지는 나름 화기애애했던 것 같은데요. 어쩌면 저도 여자친구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 거겠죠. 저도 모르게요.”
마르트는 온화한 미소로 프랑수아를 바라보며 “그런 시선이 도대체 뭐였을까?”라고 묻는다. 대답을 종용하거나 채근하는 표정은 아니다. 프랑수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대답을 한다. “솔직히 말하면, 아주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 여자친구를 만났을 때 반곱슬의 짙은 흑발과 창백해 보이는 얼굴에 박혀 있는 반짝이는 깊이 있는 검은 두 눈동자가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국적인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프랑수아의 이야기를 들은 마르트는 즉답을 하지 않고 그윽한 시선으로 프랑수아를 바라본다. 마치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듯한 마르트의 시선은 프랑수아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그렇다면 여자친구가 지적한 내용이 맞는 것 같은데? 프랑수아 자신도 모르게 여자친구를 외국인처럼 관찰한 것일 수 있지. 안 그래?”
“아….”
“프랑수아,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여자친구를 응원해 줘 봐. 지금 여자친구 마음이 복잡하잖아. 왜 복잡할까? 아마 그 내면에는 ‘더 알아보고 싶다’라는 마음과 ‘모른 척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싸우고 있을 거야. ‘더 알아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좀 더 커서 괴로운 거지. 안 그럴까? 한번 생각해 봐. 프랑수아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
프랑수아는 별다른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갑자기 복원실의 철문이 열리더니 루이와 복원팀원들이 돌아온다. 허공을 향해 고개를 움직이는 프랑수아를 본 루이는 프랑수아에게 외치듯이 큰 목소리로 말을 건다. “프랑수아, 괜찮아? 영 상태가 좋지 않은데?” 예상치 못한 루이와 복원팀의 등장에 깜짝 놀란 프랑수아는 머리를 앞뒤로 가볍게 흔들며 루이를 바라본다. 어색한 웃음과 함께 “아, 이제 잠에서 다 깼어요. 덕분에 잘 쉬었어요.”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프랑수아를 보던 루이는 이내 개인적인 호기심을 누르고 복원팀에게 작업 지시를 내린다. 오늘은 바니쉬를 걷어내는 날이다. 조심스럽고 섬세한 손길로 100년이 넘게 그림 표면을 덮고 있었던 코팅제를 벗겨 내는 것이다. 복원팀은 장갑을 끼고 캔버스 틀에서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 천을 분리해 내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캔버스의 천과 틀을 연결하고 있던 오래된 못 들을 조심스럽게 제거한다. 제거된 못은 복원이 완료된 후 재사용될 예정이기에 조심스럽게 한 곳에 모아둔다. 워낙 오랜 시간을 캔버스 천과 틀이 부착된 상태로 지냈기 때문에 못을 제거했다고 한들 바로 캔버스 천과 틀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복원팀은 조심스럽게 물감용 나이프를 캔버스 천과 틀 사이에 넣어 서서히 움직인다. 조금씩 나이프가 좌우로 움직이면서 캔버스 천과 틀은 분리가 된다. '스슥 스슥'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나이프 아래로 캔버스 천에서 탈락된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켜켜이 쌓인 먼지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복원사들은 염소털 브러시와 청소도구로 아주 조심스럽게 먼지를 털어낸다.
복원사들이 작업대 위로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 천을 올리는 동안 루이는 바니쉬를 걷어내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 작업을 한다. 플라스틱 용기에 테레빈유를 담고 손잡이가 긴 순면 100%의 팁이 달린 긴 면봉 여러 개를 차례로 테레빈유에 담근다. 면봉의 팁에 테레빈유가 충분히 적셔 지길 기다린 다음 장갑을 낀 손으로 면봉 팁을 지그시 누른다. 테레빈유가 루이의 손끝을 타고 플라스틱 용기 속으로 똑 똑 떨어진다. 루이는 천천히 그리고 섬세하게 캔버스 천의 모서리부터 바니쉬를 제거하기 시작한다.
노련한 루이의 손놀림과 테레빈유가 듬뿍 적셔진 면봉이 지나간 자리는 조금 전의 작품에서 보았던 어두운 색은 사라지고 단숨에 화사한 컬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루이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에는 마치 순차적으로 조명이 켜진 것처럼 캔버스 위에 채색된 컬러들이 원래의 밝은 빛을 찾기 시작한다. 작업은 캔버스 천의 모서리에서 중심부로 넘어가며 진행된다. 복원실에 있는 모든 인원의 시선이 캔버스의 중앙부로 향한다. 마르트의 옅은 갈색 머리카락은 반짝이는 금발에 가까운 색으로 변하고 핑크빛의 피부는 더 화사한 혈색이 감도는 건강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그녀 뒤로 보이는 악보는 아이보리 빛에서 오프 화이트 빛으로 명도가 높아지고 허공을 채우고 있는 점들 또한 형형색색의 반딧불처럼 선명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마르트의 두 눈은 생기 있는 푸른색으로 입술은 자두를 한입 베어 문 짙은 핑크 색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녀가 착용하고 있는 에이프런은 선명한 마젠터 컬러의 플라워 패턴을 자랑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블랙과 화이트가 대조를 이루며 채색된 피아노 건반 부분을 덮고 있던 바니쉬를 제거하자 마침내 <말렌 공주의 미뉴에트>는 화사한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답답했던 누런 빛의 갑옷 같았던 코팅제가 벗겨지자 마르트는 좀 더 자유를 찾은 듯한 표정을 가지게 되었다. 적어도 프랑수아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림을 찬찬히 쳐다보는 프랑수아를 향해 루이가 말한다. “프랑수아, 마르트가 정말 미인이 되었어? 그렇지? 이제 좀 쉬었다가 갈라진 부분 채색에 들어가야겠어.”
루이는 복원팀에게 복원을 위해 특수 주문된 안료 세팅을 요청한다. 복원팀은 갈라진 부분에 맞춰 세심하게 색을 조색한다. 루이는 복원팀의 준비 작업을 보더니 프랑수아를 힐끔 보며 함께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프랑수아, 잠시 나랑 바람 좀 쐬고 올까? 나도 좀 한 템포 쉬어야 다음 작업에 집중할 수 있어.”
미술관의 지하 공간에서 1층으로 올라온 두 남자는 정문을 향해 놓인 긴 복도를 별말 없이 걷는다. 오르세 미술관 천장의 반투명 유리를 통해 비친 자연광은 미술관 복도에 놓인 고전적인 조각상들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한다. 약간은 어색한 침묵이 감돌고 루이가 먼저 침묵을 깬다. “프랑수아, 근데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좀 이상해. 아까는 보니까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있더라고.”
“아…. 제가 그랬나요?” 프랑수아는 이 순간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까 고민한다. ‘마르트의 환영을 보았다고 솔직하게 말을 해야 하나’ 그러나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이어서 루이가 진지하게 질문을 한다. “학예실 일이 많이 힘들어? 잔느가 너무 세세한 일도 다 지도하려고 해? 잔느가 보통 사람이 아니란 건 나도 들어서 잘 알고 있어. 베테랑도 보통 베테랑이 아니지. 잔느랑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지?”
프랑수아는 손사래를 치며 루이에게 답한다. “아니에요, 그런 건 절대 아니죠. 제가 자기 관리를 잘 못 해서 그런 거죠. 걱정하지 마세요.”
어느덧 긴 미술관의 복도를 지나 1층 야외로 나온 루이는 담배를 한 입 물면서 말을 이어간다. 루이는 작정이라도 한 듯 프랑수아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복원실에서 뭐 이상한 걸 본 건 아니지?”
예상치 못한 의미심장한 루이의 질문에 프랑수아는 눈이 동그래져 반문한다. “네에?” 놀란 프랑수아의 표정을 보면서 루이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아니, 한 10년 전에 우리 복원팀 막내 직원이 환영을 봤다고 해서 내가 그 사건에 엄청 시달렸어. 그 직원 말로는 복원실에 원래부터 존재했던 오래된 유령이라고 하는데. 나는 정말이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 마치 오페라의 유령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지. 게다가 복원실이 지하에 위치해 있잖아. 불이 꺼지면 또 세상에 그렇게 음산한 공간이 없다고.”
“아, 그분은 아직도 여기서 일하세요?” 프랑수아는 긴장감으로 인해 타 들어가는 목에 침을 겨우 삼키며 질문한다.
“아니, 여기에는 이제 없지. 말도 마…. 정말 몇 번의 난리가 났었어. 복원실 테이블에 올려놓은 작품을 떨어뜨릴 뻔도 했었어. 프랑수아도 알다시피 우리 미술관 소장품들은 오래되기도 되었지만 그 가치가 어마어마하잖아? 내가 정말 가슴이 철렁했다니까. 당사자도 미치겠다고 하는 거야. 당최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데. 어디서 환영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면서 말이야. 그 직원은 결국에는 루브르 박물관으로 이직했어. 소문으로 듣기에 거기서는 괜찮았나 봐. 설마 프랑수아도 같은 것을 경험한 건 아니지? 그 직원 이후로는 환영을 본 사람은 없었어. 그렇지만 그 당시 난리가 나는 바람에 복원팀 멤버들이 하나둘씩 퇴사했지. 다들 미심쩍었는지 불안했는지…. 지금 복원팀은 3년 전에 짜인 새로운 멤버들이야. 아무도 그 일에 대해서 몰라”
“아…. 전 그런 건 아니에요. 걱정 마세요. 누가 들으면 미술관에 귀신이 사는 줄 알겠어요.” 프랑수아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그러나 내심 속으로는 불안하다. ‘내가 본 마르트가 그동안 복원에 존재해 왔던 환영인가?’
루이는 약간은 미심쩍지만 그래도 나름 안심한 듯 “그래, 그렇다면 괜찮아. 그래 이건 10년 전에 일어난 일이니까. 그 친구가 정신질환이 있었을 수도 있지, 그 당시에.”라고 답한다. “자 프랑수아, 이제 복원실로 돌아가서 리터칭 작업을 슬슬 시작해 볼까?”
“네네, 먼저 시작하고 계시죠. 저는 잠시 학예실에 들렀다가 바로 돌아갈게요.”
“그래 잠시 뒤에 복원실에서 보자고!” 불이 꺼진 담배꽁초를 비벼 재떨이에 버린 후 루이는 미술관 정문을 지나 지하 복원실을 향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긴다. 프랑수아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학예실 방향으로 몸을 턴다. 그리고 루이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화장실로 다시 방향을 바꾼다. 1층 화장실의 세면대에 찬물을 세게 튼 후 그의 얼굴을 매서운 손길로 씻어낸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복원실의 환영이었을까? 아니면 마르트 그 자체였을까?’ 내심 불안해진 프랑수아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창백한 얼굴은 더 하얗게 질렸으며 세수하느라 안경을 벗은 움푹 파인 두 눈가에는 더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오늘은 집에 가면 마리-킴에게 오늘 일어난 일을 말해야겠다. 그녀가 믿든 말든, 그래야 그의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