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킴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프랑수아의 이야기를 듣는다. 중간에 고개를 몇 번 끄덕일 뿐 긍정도 부정도 없는 덤덤한 모습이다. 프랑수아는 그간 일어났던 일들을 중요한 순서대로 이야기한다. 마르트와 대화를 했던 두 번의 경험과 루이가 들려준 복원실의 환영 이야기 그리고 루이의 의심쩍은 표정까지 말이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프랑수아의 이야기가 끝나자 마리-킴은 “흐음~”하고 신음에 가까운 한숨을 쉰다.
“마리-킴, 내 이야기가 어때? 이상하게 들리지?”
“아니, 이상하진 않아. 그냥 좀 의외일 뿐이야.”
“뭐가 의외라는 거야?”
“내 생각엔 프랑수아가 너무 <말렌 공주의 미뉴에트>에 몰입해서 상상에 가까운 환영을 본 것 같은데, 이건 또 한 번 증명해 보면 되지 않을까?”
“증명한다고? 어떻게 증명을 해?”
“복원실이 아닌 공간에서 마르트를 만나는 걸 시도해 보면 되지. 복원실이 아닌 곳에서도 만난다면, 마르트는 복원실의 환영은 아니라는 소리잖아.”
마리-킴의 기가 막힌 제안에 프랑수아는 눈이 번뜩 뜨인다. 현실에서 일어났다고 생각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도 마리-킴은 그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모습이다. “프랑수아, 나 사실은 오르세 미술관 복원실의 환영에 대해서 루브르 학교에 다닐 때 들어본 것 같아. 그때는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
“복원실의 환영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고?”
“응. 오르세 미술관 복원실에서 루브르 박물관으로 복원사가 이직했다고 했잖아. 그분의 이야기를 학교에서 들어본 것 같아. 동아시아 고미술의 경우 서양미술보다 복원팀과 긴밀히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루브르 박물관 복원팀과 실습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거든.”
“정말이야? 그럼 그 복원사를 만났던 거야?”
“아니, 그분을 특정 지을 수는 없는데. 루브르 박물관의 복원팀을 만나봤지. 그분들은 약간은 오컬트 이야기를 하듯 오르세 미술관 복원실의 환영이 대해 농담조로 이야기하더라고. 오직 선택된 단 한 명만 환영을 만났다고.”
프랑수아는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마리-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마리-킴은 프랑수아의 긴장감이 가득하게 깃든 시선을 받아가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내가 프랑수아가 복원실에서 만난 환영이 어떤 존재인지 판단할 수는 없어. 그렇지만 어떤 존재인지 증명을 시도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앞으로 복원실에 자주 가는 것이 어려워졌다며. 오히려 잘 되었지. 다른 장소에서 만나보는 거야”
“복원실의 환영이면 어떻게 하지?”
“프랑수아는 마르트가 복원실의 환영이라고 생각해?”
“아니,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 그냥 나는 지금까지 마르트 그 자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루이로부터 예전에 복원팀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의심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응 그랬구나”
마리-킴은 잠시 생각하더니 두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한다. “프랑수아, 수장고에 가서 마르트를 만나봐.”
“수장고?”
“응, 어차피 복원이 끝나면 다시 작품을 크레이트에 넣어서 전시 설치 전까지 수장고에 보관할 거 아니야. 그때 프랑수아는 수장고에 가서 마르트를 만나보면 되지. 아니 시도해 보면 되지. 수장고는 수시로 가는 장소잖아. 어때. 한번 해볼 만하지 않겠어?”
프랑수아는 마리-킴의 현실성 있는 제안에 눈이 번쩍 뜨인다. 그를 이상하게 생각하긴커녕 대안을 제시하는 연인의 멋진 모습을 오늘 새로 발견했다. 프랑수아는 마리-킴을 보며 밝은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저녁 시간에 처음으로 짓는 미소이다. “마리-킴은 왜 나의 이야기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야? 나는 그게 더 신기해.”
프랑수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마리-킴은 눈가에 미소를 띠며 대답한다. “프랑수아도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줬잖아. 『직지』에 대한 과한 감정 이입의 스토리를 말이야. 물론 너무 감정이 과다 이입되어서 다툼이 좀 있었지만. 프랑수아도 작품에 감정을 과다 이입한 것일 수도 있지. <말렌 공주의 미뉴에트>는 프랑수아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잖아. 안 그래?”
“응 그래, 마리-킴이 잘 이해해 줘서 너무 고마워. 그래 마리-킴 이야기대로 수장고에 가봐야겠어. 복원은 이제 채색과 안료 건조 단계만 거치면 이제 곧 종료돼. 마리-킴 말처럼 이제 작품은 다시 수장고로 돌아가지. 현실성 있는 계획이다.”
마리-킴은 싱긋 웃으며 대답한다. “물론 이건 불가능하겠지만, 나도 같이 가보고 싶은 걸? 마르트가 그렇게 미인이었다니 말이야. 내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어. 하하하.”
마리-킴의 질투 섞인 농담에 긴장감 돌던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프랑수아의 마음도 한결 놓인다. 마리-킴이 원형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있는 프랑수아를 향해 두 팔을 뻗어 손을 내민다. 프랑수아는 마리-킴의 손을 부여잡는다. 마리-킴의 매운 라면과 프랑수아의 비밀이 공유된 특별한 저녁이다. 두 연인은 어제보다 한결 더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