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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이야.

4주간의 시간이 지난 뒤 루이는 프랑수아에게 복원이 완료되었다고 연락을 했다. 복원작업은 갈라짐 등의 미세한 결함을 채우고 기존의 색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현재 건조작업도 마무리 단계라고 전해줬다. 루이는 전화를 통해 복원 과정을 프랑수아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면서 통화 끝에 나지막하게 물어봤다.


“프랑수아, 정말 괜찮은 거지?”


“네, 그럼요.”


프랑수아는 루이에게 덧칠한 물감이 완전히 건조되는 시간 추가 1주를 기다렸다가 크레이트에 넣자고 제안했다. 설치팀과 스케줄을 조절해 1주 뒤에 프랑수아도 복원실에 들리기로 했다. 복원실에서 수장고로 작품을 이동할 때는 작품을 담당하는 큐레이터나 레지스트라가 함께 이동해야 한다. 잔느에게도 작품 복원이 완료되어 작품을 1주일 뒤에 포장하여 크레이트에 넣어 봉한 뒤 수장고에서 전시 설치 전까지 보관하겠다고 보고했다. 잔느는 큰 감흥이 없는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안경 너머로 프랑수아를 바라보며 “드디어 끝났네.”라고 한마디를 툭 던지며 모니터를 다시 바라본다, 그러다 이내 빼꼼히 고개를 들더니 “프랑수아, 그래도 완성된 작품을 포장 전에 확인해야지. 오늘 안에 복원실에 방문해서 완성된 작품 컨디션을 확인하고 학예팀용 컨디션 리포트를 작성해. 그리고 나에게 전달해 줘.” 역시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잔느는 베테랑 수석 학예사이다. 프랑수아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생각에 빠진다. ‘그럼, 오늘 마르트를 만날 수 있는 거네? 복원실이 아닌 수장고에서 그녀의 존재를 확인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루이에게 점심시간 지나고 복원실로 방문하겠다고 연락을 한 뒤 프랑수아는 잠잠히 오후가 되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전시회에서 대중에게 소개될 나비파 작품 목록을 천천히 확인한다. 이번주에는 나비파 작품에 대한 작품 설명을 작성하고 잔느에게 컨펌을 받아야 한다. <말렌 공주의 미뉴에트>에 대해서는 어떻게 쓸까? 복원을 완료한 작품을 보면 왠지 더 구체적으로 생동감 있게 작성될 것 같다. 약속시간이 된 후 프랑수아는 지하의 복원실로 발길을 옮긴다. 늘 느끼는 것인데 복원실로 가는 지하 복도는 조명이 켜져 있지만 어딘가 음산하고 비밀스럽다. 그렇다고 괴기스러운 것까지는 아닌데 관람객이 많은 지상 전시장에 비하면 관람객이 통제된 지하의 공간은 어딘가 현실과 단절된 느낌을 준다. 드디어 복원실에 도착하여 육중한 철문을 힘껏 밀어젖힌다. 역시나 ‘끼익’하는 어딘가 불쾌한 철의 소리가 들린다.


“안녕하세요. 복원된 작품 컨디션을 체크하러 왔어요. 간단하게 작품 촬영도 하고 컨디션 리포트도 작성하려고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그간 자주 들렸던 복원실이라 복원팀 일동은 프랑수아를 반갑게 맞이해 준다. 마치 원래 팀원이 출장을 갔다가 복귀했던 것처럼 그를 가장 반겨준 사람은 루이였다. “프랑수아. 오래간만이야. 복원실로 돌아온 것을 환영해!”


프랑수아는 천천히 작품을 살핀다. 복원팀이 제공해 준 이마에 착용하는 특수 랜턴을 켜고 작품 표면을 시간을 들여 꼼꼼히 관찰한다. 표면의 갈라짐 현상은 보수되었는지, 전반적인 색감은 이전과 동일한지, 캔버스 틀과 그림이 그려진 캔버스 천 부분이 이상 없이 잘 접합되었는지 등 다양한 디테일을 확인한다. 루이는 복원이 된 부분들을 상세히 설명해 주면서 사진 촬영이 용이하게끔 프랑수아에게 캔버스 구석구석을 보여준다. 프랑수아는 복원이 된 부분들의 세부 사진을 찍고 작품 전체의 사진을 찍는다. 복원팀장 루이와 수석 학예사 잔느의 최종 승인이 나면 미술관의 촬영팀이 복원실을 방문해 도록 출판 및 홍보물 제작을 위한 작품 사진을 촬영할 계획이다. 프랑수아는 그에 앞서 컨디션 리포트와 업무에 참고할만한 사진을 찍는다. 작품의 구석구석 촬영을 한 뒤 프랑수아는 마르트의 얼굴을 촬영한다. 한쪽 눈은 감고 다른 한쪽 눈으로 DSLR 카메라의 초점을 맞춘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고 집중하는 그 찰나, 카메라 렌즈에 잡힌 마르트가 프랑수아를 보며 윙크를 한다. 눈짓만 하는 아주 가벼운 윙크. 미소를 짓거나 다른 표정의 변화는 없다.


갑작스러운 마르트의 반응에 순간 당황한 프랑수아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못하고 잠시 주위를 살핀다. 멈칫하는 프랑수아를 보고 바로 뒤에 치켜보고 있던 루이가 “조명이 너무 어두운가? 얼굴 부분이 잘 안 찍혀?”라고 다급하게 묻는다. 아무래도 루이는 마르트의 표정 변화를 발견하지 못했나 보다. 프랑수아는 루이를 향해 “아니요, 손이 잠깐 떨려서요....”라고 대답을 얼버무린 뒤 다시 한번 뷰파인더에 초점을 맞춘다. 이번에도 마르트는 프랑수아를 향해 다시 한번 윙크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마르트 얼굴의 촬영을 마친다. 촬영을 마친 프랑수아는 뒤에 서 있는 루이를 돌아보며 “촬영을 마쳤습니다.”라고 말하며 루이의 반응을 살핀다. 루이는 정말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지 환하게 웃으며 “드디어 우리의 길고 긴 복원 여정의 거의 끝났구만! 촬영팀의 촬영만 남았어! 난 이번에 우리가 워낙 공들여한 작업이기 때문에 잔느와 홍보팀에게 <말렌 공주의 미뉴에트>에 대해 스토리텔링 작업을 하는 게 어떻냐고 제안할 생각이야. 복원한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도 관람객의 흥미를 유발하는 장치가 되기도 하잖아. 프랑수아, 그동안 정말 수고했어!”라고 만족한 함박웃음을 지면서 말한다.


프랑수아는 장기간 작업이 마무리된 것에 홀가분함을 느끼는 루이의 미소를 보며 혼자 생각에 빠진다. ‘선택된 한 명에게 보인다는 복원실의 환영이 나를 선택한 것인가?’ 다시 한번 그림 속의 마르트를 바라보지만 이번에 마르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일주일 뒤 예정대로 설치팀이 작품을 픽업하기 위해 복원실로 왔다. 프랑수아도 설치팀의 도착시간에 맞추어 복원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오늘은 설치팀이 수장고에 크레이트를 두고 떠나면 용기 내어 프랑수아가 마르트의 이름을 불러 수장고에서 마르트의 존재를 확인해 보리라 다짐한다. 설치팀은 매뉴얼대로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렌 공주의 미뉴에트>를 포장하기 시작한다. 크레이트에 스펀지를 깔고 작품을 올려놓는다. 습자지로 작품 표면을 조심스럽게 덮는다. 그리고 그 위에 경량 스펀지를 올리고 크레이트의 뚜껑을 닫고 드릴로 크레이트를 잠근다. “윙, 윙” 하는 하이톤의 드릴 소리가 복원실에 울린다. “이제 한동안 만날 일이 없겠어.” 마치 정성스럽게 키운 딸을 해외로 유학을 보내듯 루이는 아쉬워하며 마르트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한번 복원을 한 작품은 사건 사고가 있지 않는 한 한동안 복원할 일이 거의 없다. 너무 잦은 복원도 오래된 작품에 무리를 주기 때문이다.


루이와 복원팀에 인사를 하고 나온 프랑수아는 지하의 수장고를 향해 설치팀과 이동한다. 수장고는 미술관 지하의 동쪽 가장 끝 부분에 위치해 있다. 광활하다고 표현할 만큼 넓은 면적의 수장고에는 시대별로 작품이 정리되어 있으며 미술관 관계자들이 알아보기 쉽게 각 섹션별로 소장되어 있는 작품의 이미지와 작가 이름 그리고 제작연도가 붙어져 있다. 설치팀은 원래 <말렌 공주의 미뉴에트>가 있었던 19세기 후반의 나비파 코너에 작품을 두고 수장고 문을 나섰다. 프랑수아는 전시될 작품이 들어있는 크레이트의 위치를 한 번 더 확인하다고 말하며 수장고에 홀로 남았다. 설치팀이 떠난 지하의 수장고에는 적막함이 감돈다.


프랑수아는 침을 한번 삼키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부드럽고 작은 목소리로 마르트를 불러본다. “마르트, 거기에 있나요?” 그러나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한번 이번엔 좀 더 큰 목소리로 용기를 내어 마르트를 불러본다. “마르트, 마르트.” 역시나 인기척이 없다. 프랑수아는 고요함이 감도는 수장고를 한번 둘러본다. 항온 항습이 완벽하게 되는 수장고의 온도는 20도로 약간은 으스스한 냉기가 감돈다. 햇빛이 완벽히 차단되고 덥지도 춥지도 않지만 시원한 이 공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작품을 위한 공간이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프랑수아!”라는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희미하게 들려온다. 급히 뒤를 돌아보니 화사해진 모습의 마르트가 서 있다. 복원을 마쳐서인지 오늘따라 마르트의 얼굴은 더 장밋빛으로 빛난다. “프랑수아, 오래간만이야? 설마 나를 복원실의 환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라고 웃으며 질문하는 마르트에게 프랑수아는 자신의 생각이 읽힌 듯해서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린다. 프랑수아의 즉답이 없자 마르트는 까르르 소리 내어 웃으며 “역시 나를 그렇게 생각했네!”이라고 대답한다. 프랑수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수줍은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맞아요, 복원실의 환영으로 생각을 좁혀가고 있었어요. 다른 장소에서 만나지 못하고 복원실에서만 만나다면….” 말을 이어가려고 하는데 마르트가 프랑수아의 말을 자르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랬다면, 프랑수아는 자신을 선택받은 단 한 명이라고 생각했구나? 복원실 환영에게 선택받은 일인!” 프랑수아는 여기에 대해 자기 스스로 어리석다고 생각했는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마르트는 먼저 말을 시작한다. “프랑수아, 파트너랑은 이야기해 봤어? 파트너가 전에 좀 힘들어한다고 했잖아. 대한민국에서 온 유물에 관해서 말이야.”


“네, 이야기를 해봤죠. 그런데 본인 스스로 이미 생각을 정리했더라고요. 마르트가 지난번에 이야기해 준 것처럼 본인의 내면에서 ‘좀 더 알아가고 싶다’와 ‘모른 척하고 싶다’가 갈등을 했고 결국에는 ‘좀 더 알아가고 싶다’가 이겼데요. 그래서인지 갑자기 엄청 매운 한국 라면을 사 와서 끓여 먹는 바람에 전 정말 진땀을 뺐죠. 그렇게 매운맛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뜨거워서 더 맵게 느껴진 듯요.” 프랑수아는 지난 일을 돌이켜보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다. 길게 느껴졌던 과정인데 이렇게 말을 해버리니 순식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처럼 느껴진다.


마르트는 흡족하다는 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얼굴에 한가득하게 짓는다. “잘했네. 프랑수아의 파트너에게도 정말 잘 된 일이야. 이름이 뭐였더라?”라며 마리-킴에 관한 질문을 이어간다.


“마리-킴이에요. 뒤에 킴은 입양 전의 성이래요. 한국에서 온 것을 기억하라고 부모님이 first name 뒤에 하이픈을 넣어 이름을 만들어 주셨다고 해요.”


고개를 끄덕이며 귀 기울여 듣던 마르트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 말을 아끼더니 “응, 그랬구나. 그럼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어쩌면 마음속 깊이 한 구석에는 한국이라는 곳이 조금씩 쌓여 왔겠는데, 그렇지?”라며 이야기한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프랑수아 스스로는 생각해보지 못한 방향인데 마르트의 설명을 들으니 그럴 법하기도 하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줬을 때 마리-킴은 프랑스에 살고 있는 수많은 마리(Marie)와 달리 킴을 항상 들었으니까. 프랑수아가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마르트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간다. “프랑수아, 마리-킴에게 가서 이야기해 줘. 대한민국에서 온 유물을 꼭 전시하라고 말이야. 알겠지?”


예상치 못한 대답에 프랑수아는 눈을 크게 뜨고 “네에?”하고 반응한다. 그가 대답하는 그 짧은 사이에 마르트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졌다. 마르트가 서 있던 허공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마르트는 자신이 등장하고 싶을 때 등장하고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만 전하면 사라지는 존재인가?’ 황급히 사라진 마르트의 빈자리를 바라보던 프랑수아는 다시 한번 생각을 추스른다. 머릿속에 부스스한 백금발의 곱슬머리 잔느가 떠올랐다. 그녀는 왠지 사무실에서 프랑수아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지금쯤 프랑수아가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라면서.


수장고의 조명을 다 끄고 육중한 수장고의 철문을 닫고 문을 잠근다. 문 잠김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리고 보안 스위치를 올린다. 수장고는 미술관의 자산이 총집합해 있는 장소이기에 철저한 보안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1층 학예실로 급히 발걸음을 옮기는 프랑수아의 머릿속에는 마르트가 복원실의 환영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잔느에게 보고할 내용이 빠르게 정리되고 있다. 마치 잘 정돈된 책장의 선반처럼 복원의 전반적인 과정과 결과가 차곡차곡 정리되었다. 급히 학예실 문을 열고 돌아온 프랑수아를 마치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잔느는 자리에서 문을 향해 고개를 삐죽 빼고 바라본다. 그러더니 별다른 말없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프랑수아에게 그녀의 자리 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조금 전에 루이가 전화를 했어. 모든 과정이 문제없이 잘 끝났다고 말이야. 그리고 복원된 작품에 대해 스토리텔링을 해서 홍보 포인트로 삼자는데 프랑수아 생각은 어때? 난 좋은 아이디어 같아.”


“네, 제 생각도 그래요. 대중에게 알리면 좋죠. 모리스 드니의 작품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은 드물고 또 작품의 이미지가 워낙에 아름다우니 대중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응 그렇지? 그러면 홍보에 사용될 보도자료 초안도 프랑수아가 작성해 봐. 관람객이 아닌 대중을 향한 홍보용이니까 전시장에 사용되는 작품 설명 텍스트보다는 좀 더 쉽게 써야 할 거야. 프랑수아가 작성하고 내가 한번 체크하고 홍보팀에 넘기면 홍보팀에서 마지막으로 일반인들에게 좀 더 친절한 문체로 수정할 거야. 그 텍스트로 <말렌 공주의 미뉴에트>가 대중에게 알려지는 거지. 잘할 수 있지? 분명 보람찬 작업일 거야.”


오늘만큼은 프랑수아를 바라보는 잔느의 눈빛은 따뜻한 어머니의 눈빛이다. 간혹 매서운 사감처럼 쳐다보며 업무를 지시할 때도 있지만 오늘만큼은 프랑수아가 이 일의 적격자임을 믿고 말하고 있다. 그런 잔느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프랑수아도 열심히 해보겠다고 대답한다. ‘어쩌면 마르트와 대화할 기회가 더 생기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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