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마치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
1377년 7월 제작, 21.4㎝ x 15.8㎝
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은 고려 시대 경한 스님이 역대 여러 부처와 고승들의 대화, 편지 등을 중심으로 편찬한 책으로 원래는 상하권 총 2권으로 구성된 책이다. 본래 제목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며 간략하게 『직지심체요절』 혹은 『직지』라고도 부른다. 당시 활자의 주소술[1]과 조판술[2]이 미숙했던 고려시대 청주의 지방사찰인 흥덕사에서 1377년 7월에 제작되었으며 전통적인 밀랍 주조법으로 제작하고 찍어냈기 때문에 활자의 크기와 모양이 고르지 않다. 『직지』가 제작된 흥덕사의 창건 년대와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의 간기에 고려 우왕 3년(1377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책을 인쇄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제작과정상 부족한 활자는 나무활자로 제작하여 찍어냈기에 인쇄 상태 또한 수려하지 않다. 그러나 고려시대 주자본[3]중 유일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금속 활자 인쇄본이며 1455년 독일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78년 앞서 간행되었다.
『직지』를 수집한 당시 구한말 주한 프랑스 대사관 대리 공사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1953-1922)[4]
『직지』에 대해서는 대한민국과 프랑스 정부 간에 반환 이슈가 늘 존재해 왔다. 사실상 이 책은 프랑스 정부의 약탈 문화재가 아니기에 프랑스 측에서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한다. 『직지』는 구한말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대리 공사로 근무했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가 1880년대 말에서 1890년대 초에 수집해 간 장서에 포함되어 있었다. 빅토르는 고문서 애호가였으며 프랑스 파리 동양어학교((L'École des Langues orientales vivantes)에서 법학과 중국어를 전공했기에 『직지』의 내용을 해석할 수 있었고 또한 출판업에 종사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이 책의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봤다. 빅토르는 당시 대한제국 황제를 설득하여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의 대한제국 전시관에서 『직지』를 선보였다. 그러나 당시의 반응은 『직지』가 최초의 금속 활자 인쇄본의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그 진위 여부를 의심하는 분위기였다. 이후 『직지』는 골동품 수집가였던 앙리 베베르(Henri Vever)에게 넘어갔다. 앙리가 1950년대에 사망하면서 그의 유언에 따라 『직지』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으로 이관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현재로서 상권은 행방이 묘연하며 하권만이 프랑스에 소장되어 있다. 하권은 총 3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장은 없고 2장부터 39장까지 총 38장만 보존되고 있다.
『직지』가 처음으로 공개되었던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 대한제국 파빌리온 [5]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직지』를 1967년 한국에서 유학 온 프랑스 국립 도서관 사서였던 박병선 박사가 그녀의 스승 이병도 교수가 당부한 대로 『외규장각의궤』를 찾아보고 있던 중 우연히 『직지』를 『외규장각의궤』보다 먼저 발견했으며 연구를 통해 그 가치를 입증했다. 추후 1972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도서의 해>에 출품하여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았다. 1972년 이후 『직지』는 학계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으며 한국 대중도 이 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직지』는 금속활자를 이용하여 인쇄술을 보다 편리하고 경제적으로 활용하게 해 주었으며 책의 신속한 생산에 공헌하였다. 또한 활자 인쇄술에 필요한 먹을 발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동양 인쇄사에 큰 영향을 끼치고 이어 유럽 등지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6].
2007년 서양 미술사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할 때 40대가 되면 미술사를 베이스로 한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학업 계획서에 그 내용을 써넣었습니다. 왜 그 내용을 학업계획서에 기입했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다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14년 주관사 측 큐레이터로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 오르세미술관 전을 올리면서 당시 전시 작품 중 하나인 모리스 드니의 <말렌 공주의 미뉴에트>를 소설의 소재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시 설치를 위해 프랑스에서 가져온 크레이트를 개봉한 바로 그 순간 신비로운 그림의 분위기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것이죠. 상징주의 작가답게 모리스 드니는 그림 속에 다양한 내러티브를 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2024년이 되어서야 미술사를 기반으로 모리스 드니의 그림을 소재로 한 소설을 완성했습니다. 사실은 소설 쓰기를 잊고 있었습니다. 육아하느라 직장 생활하느라, 도저히 짬이 나지 않았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한 7개월 정도 지났을 때 저의 베스트 프렌드가 ‘너 소설 안 써? 일단 써봐!’라고 동기부여를 해줬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내년에 둘째가 초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은 유치원생보다 일찍 끝나기 때문에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둘째가 초 1이 되기 전에 완결을 목표로 삼고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9만 자 정도 쓰게 되었네요.
처음부터 『직지』를 중요하게 다룰 생각은 없었습니다. 제 전공은 서양미술사이고 심지어 한문에 문맹이었기 때문에 『직지』를 중요하게 다뤄야만 했다면 저는 아마 소설 쓰기를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실 저도 남들처럼 『직지』가 프랑스에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소설의 소재로 접근하고 그때부터 『직지』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책은 정말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우리의 문화유산이었습니다. 책이 탄생하고 1년 뒤에 책을 발간한 흥덕사는 일본과의 전쟁으로 인해 불타버렸습니다. 그러나 직지는 어딘가에 보관되어 화재로 소실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연구진들은 『직지』가 불상의 내부에 들어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직지』 표지에 남겨진 반질 반질한 윤기가 나무로 만들 불상의 진액에서 나왔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딘가에서 담겨 보관된 『직지』는 그 가치를 알아본 대한 제국에 파견된 프랑스 대리 공사의 손을 통해 프랑스로 건너가게 되고 1900년대 만국박람회에서 선보이게 됩니다. 1900년 만국박람회는 프랑스 미술에 있어서도 중요한 시대적 배경으로 프랑스 인상주의와 상징주의에 대해서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게 된 장입니다. 또한 1900년 만국박람회는 전 세계의 발전사를 한자리에서 보게 된 인류 문물의 축제였습니다. 『직지』도 그 장소에서 처음으로 전 세계 대중에게 선보이게 되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한국 최초로 프랑스 유학비자를 받은 여성 박병선 박사님께서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사서로 근무하시면서 동양문헌실에서 방치된 『직지』를 발견하게 되고 그 가치를 증명해 내어 오늘날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기록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글을 쓰면서 『직지』는 점차 중요한 메인 소재가 되었습니다. 연재의 마지막 글이 『직지심체요절』이 된 것도 이 책에 대해 한 번은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하는 챕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의 소설에서 『직지』가 중요해진 이유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저의 정체성과 결부되어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서양 미술사를 전공하고 서양 미술을 다룬 전시를 개최하고 유수의 해외 작가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저의 개인적인 뿌리는 전통문화에 깊숙이 심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39장의 책에 몰두할 필요가 없었겠죠. 또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지만 소유권이 우리에게 없는 『직지』의 특수한 상황이 저로 하여금 더 몰입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프랑스 측에서 『직지』의 대여나 반환에 대해 선을 그은 이유가 바로 ‘박물관의 환경이 좋지 않다’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전시장 컨디션을 가지고 있으며 학예 연구원들과 복원사들도 우수한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소설에 쓴 것처럼 이제는 『직지』가 대한민국에서 선보여지는 그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연재를 마칩니다. 끝!
[1] 녹인 쇠붙이를 거푸집에 부어 일정한 물건을 만드는 기술. 네이버 국어사전
[2] 활판 인쇄용 판을 만드는 기술을 의미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3] 쇠붙이를 녹여 부어 만든 활자로 짠 판. 또는 그 판으로 인쇄한 책. 네이버 국어사전
[4] 고문서 수집광이었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의 이름은 한자로 갈림 덕(葛林德)이라고 한다. 아마도 '콜랭 드'를 한자로 적은 것 같다. 때문에 직지의 첫 페이지에는 갈('葛')이라는 글자가 붙어있다. 출처: 나무 위키
[5] Google Arts & Culture Korean Pavilion, 1900 Paris Exposition 페이지 참고
[6] 한국의 세계 유산 페이지 내용 참고
단행본
최은영, 『우리 책 직지의 소원: 직지심체요절이 들려주는 고려 시대 이야기』, 개암나무, 2018
GNC Media, 『인상주의 그 빛을 넘어』, 2014
자현, 『(자현 스님이 들려주는) 불교사 100장면: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100장면에 담긴 2,600년 불교의 역사』, 불광, 2018
김홍영, 라경준, 『직지심체요절: 금속 활자로 찍은 가장 오래된 책』, 주니어 김영사, 2019
김진명, 『직지: 아모르 마네트 1』, 쌤앤파커스, 2019
김진명, 『직지: 아모르 마네트 2』, 쌤앤파커스, 2019
강민기 외 5인, 『한국 미술 문화의 이해』, 예경, 2006
Jean-Paul Bouillon 외 4인, 『Maurice Denis, L'éternel Printemps』, Musée des impressionnismes Giverny, 2012
온라인 자료
국가 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모리스 드니, 작가노트 부분 위키피디아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Maurice_Denis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도서관의 ‘세계의 도서관’ 자료
빅토르 콜랭 드 프랑시, 위키피디아 참고
https://en.wikipedia.org/wiki/Victor_Collin_de_Plancy
50년 만에 세상 밖으로…'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 실물 공개, 연합뉴스 기사 참고, 2023년 4월 11일 자
https://www.yna.co.kr/view/AKR20230409021900005
직지, 활자의 시간여행 1-5부, 국가 유산 채널 참고
https://www.youtube.com/@koreanheritage
Google Arts & Culture Korean Pavilion, 1900 Paris Exposition 페이지 참고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korean-pavilion-1900-paris-exposition/PAHyzkjW4fYy5g?hl=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