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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한강 그리고 나의 한강

그때와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강에 대한 글을 쓰기 전에 검색 포털에 "한강"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제가 늘 바라보고 살았던 한강은 서울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인데, 검색창이 제공해 준 검색 결과는 강원도 태백시에서 시작하여 한반도의 중부를 동에서 서로 관통하며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라고 합니다. 한강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한강은 고등학교 시절에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장소였고 대학생과 직장인 시절에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장소였습니다. 저희 집에서 가까운 한강 공원은 여의도 한강 고수부지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불꽃축제를 보겠다고 친구와 한강에 갔다가 인파에 휩쓸려 여의도역에서 지하철을 타지 못하고 한참 걸어 내려와서 당산 쪽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새벽 한 시에 도착해서 부모님께 엄청 혼이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불꽃과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인파에 놀랐고 이렇게까지 밖에 오래 있을 수 있구나를 처음 깨달았던 시절이라 한강은 현실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일탈의 장소로 각인되었습니다. 성인이 되어 대학교를 오가고 을지로에 위치한 회사를 출퇴근하며 당산철교에서 물끄러미 바라본 한강은 하루의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장소였습니다. 계절에 따라 그리고 시간에 따라 빛을 반사하며 다른 색채를 보여주는 한강은 신비하면서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힐링의 장소였습니다. 매일 같이 지나가는 당산철교와 거기서 바라보는 같은 한강이었지만 매번 한강을 바라보려고 당산철교에서는 하던 일을 멈추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 부모가 된 저에게 한강은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는 장소입니다. 여의도 한강 고수부지의 물빛정원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물놀이를 하기 정말 좋은 공간입니다. 얕은 물높이와 주변의 편의시설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단 치열한 주차난을 통과해야만 이 호사를 누릴 수 있습니다.


겸재 정선도 한강을 사랑했는지 한강을 그린 다수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조선시대에도 한강은 풍경이 아름다워 중국 사신들도 조선에 방문하면 꼭 들리고자 했던 장소라고 합니다. 겸재 정선이 양천현령으로 부임을 받았던 1740년, 당대의 시인이자 겸재 정선의 오랜 벗인 사천 이병연과 시와 그림을 바꾸어 보기로 약속을 하며 제작된 화첩이 보물 1950호 『경교명습첩』입니다. 본래 하나의 첩이었던 『경교명습첩』은 겸재 정선의 집에서 보관하였으나 1802년 심환지가 소장하게 되면서 상권, 하권으로 분철이 되었습니다. 상권에는 그림 19폭이 하권에는 그림 14폭이 수록되어 당시 한양과 그 근방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담한 구도와 강렬한 먹색과 은은한 채색이 한데 조화롭게 아우러진 작품들이 수록된 『경교명습첩』에는 과거의 압구정, 광진, 소악루(강서구), 양천현아, 양화환도(양화대교), 송파진, 목멱조돈(남산), 미호(남양주 석실서원) 등 지금도 익숙한 서울과 그 근방 지역이 당대의 모습 그대로 그려져 있습니다. 저는 겸재정선미술관에 전시된 『경교명습첩』의 영인본 작품들을 보며 과거 서울의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말 그대로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한산한 분위기는 현대의 그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습니다. 빼곡한 고층건물과 높은 인구밀도는 상상할 수 없는 한적한 여유가 과거의 서울에서 발산되고 있었습니다.


 


겸재 정선, 목멱조돈도, 1740~1741, 23 x 29.2 cm, 간송미술관


한강에서 바라본 남산, 출처 : 주니파님 블로그




『경교명습첩』 상권에 수록된 작품 <목멱조돈도>와 <안현석봉도>는 양천현령 겸재 정선의 하루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목멱조돈도>는 양천항교 근방에서 바라본 서울 남산의 모습입니다. 한강 너머 남산에 해가 걸쳐지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의 풍경으로 서울 중심에 우뚝 서 있는 남산의 모습이 강한 붓터치로 먹의 농담을 살려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남산 앞에 그려진 한강도 유유자적하게 고요히 흐르고 있습니다. 지금의 남산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지요?


2022년 사진 속의 남산은 각종 다양한 건물들이 마치 성벽처럼 남산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입니다. 겸재 정선의 작품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서울을 상징하는 서울타워(구 남산타워)의 모습도 잘 보입니다. 날씨가 좋은 날 제가 살고 있는 양천구의 신정동의 산에 오르면 희미하게 저 멀리에서 남산이 보입니다. 겸재 정선이 살던 18세기에는 높은 건물도 미세먼지도 없었으니 양천에서 남산은 더 잘 보였을 것 같습니다. 겸재 정선의 하루는 한강변에 드리워진 남산의 일출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의 마무리는 안산의 봉화를 보며 별 탈 없는 하루를 확인했습니다. 하단의 작품 <안현석봉도>는 서대문구의 안산에 올라온 봉화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안산은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 뒤에 위치한 산으로 이화여자대학교를 지나 연세대학교까지 이어지는 산입니다. 조선시대 태조 때부터 안산에 봉화를 올려 국가의 안위를 확인했습니다. 봉홧불이 하나면 무사한 하루라는 뜻이고 외적이 나타나면 두 개, 외적이 국경에 다가오면 세 개, 국경을 침범하면 네 개, 싸움이 붙으면 다섯 개를 올리도록 했습니다. 무탈한 하루를 보내면 안산의 봉화는 하나가 올라오는 것입니다. 겸재 정선이 그린 안산의 봉화는 다행히도 하나입니다. 별 탈 없는 하루를 보냈기에 봉화가 하나 올라온 저녁 시간을 그릴 수 있었겠지요. 안산의 봉화를 올리던 봉수대는 세종 1438년(세종 20년)부터 갑오개혁을 실시한 1895년(고종 32년)까지 약 500년간 기능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안산의 봉수대는 1994년 서울 600년을 기념하여 복원되었습니다.




겸재 정선, 안현석봉도, 23 x 29.2cm, 견본담채, 간송미술관 소장


안산의 봉수대




이제 겸재 정선이 묘사한 한강 이남의 풍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장소는 압구정입니다. 한명회의 별장이 있었던 장소인 압구정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고즈넉한 모습입니다. 한강변을 끼고 있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 정자가 바로 압구정이며 이 정자의 현재 위치는 동호대교 남단의 현대 아파트 11동 뒤편이라고 합니다. 정자 아래의 모래터에는 배가 정박해 있고 강을 건너고 있는 배에는 사람이 타고 있습니다. 지금의 한강 모습은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진행된 한강종합개발사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이전의 모습은 겸재 정선이 묘사한 잔잔한 모래터와 자연스러운 구릉의 모습이었습니다. 한강개발사업을 통해 한강은 수로가 고정화 및 안정화되어 치수 기능이 확대되었으며 지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한강 고수부지 공원과 올림픽 대로가 건설되었습니다. 또한 하수처리장이 건설되었고 예전 나루터 자리에는 유람선과 수상 레저, 스포츠 시설이 자리 잡았습니다.  




겸재 정선, 압구정, 1740~1741, 견본담채, 20.0x31.5cm. 간송미술관
압구정 현대 아파트 일대





하단의 작품은 압구정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보이는 송파진과 광진의 과거 모습입니다. 겸재 정선이 작품으로 남긴 송파진, 광진, 동작진, 양화환도 등의 포구는 당시 조세와 물산을 실어 나르는 주요 교통로로 사회, 경제적 중요성이 큰 장소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겸재 정선이 묘사한 포구들의 위치에 현재 광진교, 동작대교, 양화대교 등의 서울시내 주요 다리들이 위치하여 여전히 서울의 교통과 물류의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송파진의 모습 역시 압구정처럼 전반적으로 한적하고 한강 위에 나룻배가 떠 다니는 모습입니다. 행호관어도는 행주산성 아래편의 한강에서 고깃배들이 고기를 잡는 모습입니다. 지금도 한강에서 취미로 낚시를 하시는 분들을 종종 보지만, 한강에서 잡은 고기를 먹는 사람은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예전 한강물이 맑고 자연의 상태였을 때는 어부들이 생계를 위해 고기를 잡았다고 합니다. 정말 엄청난 변화를 거친 한강의 모습이지요?





겸재정선, 송파진, 1740-1741, 20.0 x 31.5 cm, 견본담채, 간송미술관
롯데월드타워가 보이는 한강에서 바라본 송파, 출처: 하얀 종이님 블로그




겸재 정선, 광진, 1740-1741, 20.0 x 31.5cm, 견본담채, 간송미술관
아파트가 빼곡하게 위치한 광진구의 현재 모습




겸재 정선, 행호관어도, 1741, 23 x 29.2 cm, 견본담채, 간송미술관
현재의 행주산성 근방 사진, 출처: 이뉴스 투데이




모든 것이 다 변했지만 행주산성의 근방만큼은 그나마 과거의 모습이 많이 유지된 듯합니다. 행주산성은 1982년 한강종합개발사업이 시작되기 이전인 1978년 경기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었기에 이 지역은 대대적인 개발을 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숲과 강으로만 이루어져 마치 어촌 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18세기의 한강은 이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고도성장의 상징인 한강이 되었습니다.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의 반사광을 볼 수 있는 밤 시간의 한강은 시민들이 퇴근 후 잠시나마 바쁜 하루를 돌아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가 장소가 되었습니다. 제가 본 한강의 저녁시간은 언제나 강물에 비친 반사광이 보석처럼 빛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모습이 늘 낭만적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과거의 한강의 모습을 보니 고즈넉하고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서울에서 살아온 저에게 한강은 '강'이라는 공간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해외 출장 및 여행을 다니며 템즈강, 센강, 도나우강, 라인강 등을 바라보며 늘 한강을 떠올렸습니다. '어, 여긴 한강보다 훨씬 작네?'. '어, 여긴 한강만큼 넓네?' 등 한강을 기준으로 다른 장소를 탐색하는 저의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약 한 달 전 겸재정선미술관에 방문하여 겸재 정선의 작품을 감상했을 때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작품이 바로 『경교명습첩』이었습니다. 겸재 정선 미술관에 원본은 없지만 디지털 패널 터치형으로 제작된  『경교명습첩』은 패널 위에 표기된 한강 유역을 곳곳을 터치하면 겸재 정선이 묘사한 한강의 과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저와 초등학생 아들에게 정말 흥미진진한 경험이었습니다. 서울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너무나 많은 것들이 파괴되었고 1970-90년대의 고도경제성장기에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새로운 건물과 도로가 건설되면서 옛 모습을 거의 다 잃어버렸기에 『경교명습첩』 감상은 정말이지 충격에 가까운 인상 깊은 경험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시간과 여유가 허락되시면 서울특별시 강서구에 위치한 겸재정선미술관에 방문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곳에서는 겸재 정선의 작품을 원본과 영인본으로 한 자리에서 전부 다 감상할 수 있습니다. 겸재 정선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이다 보니 주요 작품이 여러 소장처에 나눠져서 보관되어 있습니다. 여기저기 방문하며 겸재 정선의 회화를 조금씩 만나보는 것이 아니라 겸재정선미술관에서 한꺼번에 다작을 한 겸재 정선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어서 편리합니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양 미술에 익숙하여 한국화를 오히려 낯설게 느끼지만 겸재 정선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한국화도 거대한 스케일의 대작으로도 제작되며 그 나름의 멋을 알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화가 주는 자연스러움이 마음에 차분한 평안을 안겨줍니다. 오늘도 평안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번 글은 겸재정선미술관 학술도록 『웅건호활: 강서에서 만난 겸재 정선』과 나무 위키의 <한국종합개발공사>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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