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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고 싶을 때, 겸재 정선도 느낀 그 감정

사람이 살다 보면 정말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귓가에서 울리는 '다다다닥'으로 치환될 수 있는 사람들의 대화소리, 디바이스에서 나오는 효과음, 도시의 차량 소리 등 다양한 관계와 여기에서 파생되는 소음이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하기에 사람이 없는 그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원래도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결혼해서 아이 둘이 생기다 보니 제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습니다. 남편, 아이, 육아를 도와주시는 친정 부모님 등 저 외 2인 이상과 함께 하는 순간들이 제 삶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어떨 때는 무인도에 가고 싶은데, 제 생각에 저는 무인도에 가도 1년은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밤이 되어 주변이 조용해지면 홀로 캐리어를 끌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녔던 싱글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홀로 여행을 하면 정말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게 됩니다. 이런 종류의 대화의 공백이 너무 좋았는데, 지금의 삶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현실입니다.


한국화의 대가 겸재 정선도 홀로 있는 시간을 즐겼던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 중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그림에서 유유자적하게 홀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종종 나오기 때문입니다. 겸재 정선이 생존했던 영조 시기는 당파 싸움이 심하여 당시 왕이었던 영조가 탕평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당파 싸움이 심했으면 왕이 정책까지 내놓았겠습니까. 겸재 정선은 살아생전 화가로 널리 이름을 알리며 38살 늦은 나이에 벼슬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에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닌 상소가 '겸재 정선은 천한 잡기로 관직을 했으니 그를 폐하소서'입니다. 당시 화가라는 직업은 중인 출신의 화원들이 하던 직업인데 몰락한 양반 사대부 가문의 겸재 정선이 취미가 아닌 생업에 가깝게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에게 쏟아졌던 비판입니다. 겸재 정선을 총애했던 영조도 이러한 상소를 매번 막아주지 못했나 봅니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인곡유거>입니다.




겸재 정선, 인곡유거, 18세기 중엽, 지본담채, 27.4 cm x 27.4 cm, 간송미술관




거대한 자연 속에 위치한 기와집이 보입니다. 작품 속 모티브들의 사이즈를 비교해 보면 집보다 마당에 위치한 버들나무와 오동나무가 더 크게 작품 정중앙에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대로 서양의 그림은 인물이 중심이며 자연은 부수적인 요소였지만 동양에서는 자연이 중심이었습니다. 겸재 정선의 그림에서도 이러현 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물과 그의 거주공간이 나름대로 세밀하게 묘사되었지만 작품의 주요 소재는 주거 공간 내부에 위치한 자연입니다. 마당에 위치한 큼지막한 나무들은 자연스럽게 원경의 산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묵의 농담을 조절하는 묵법과 붓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조절하는 세필법을 활용하여 자연의 요소들을 각기 다른 느낌과 옅은 채색으로 표현한 겸재 정선의 <인곡유거>는 웅장한 자연 속에서 한적한 삶을 사는 선비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당시 이 그림을 제작할 즈음인 영조 5년 1729년 겸재 정선의 나이 54세 그가 당시 맡고 있던 의금부 도사 자리가 그에게 지나치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1729년 12월 3일 남인계열의 사헌부 지평 김한운은 영조에게 '의금부 도사 정선은 잡기로 발신하여 이력도 모자라고 명망도 없으니 파면하시기 바란다'라고 간의 하였고 영조는 이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벼슬에서 물러난 겸재 정선은 그가 거주했던 인왕산 언저리의 인왕곡에 머물며 작품 활동에 매진하였고 <인곡유거>와 같은 명작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겸재 정선, 호방, 사공도시품첩, 1749, 견본담채, 27.8x 25.2cm, 국립중앙박물관




신선의 모습을 그린 겸재 정선의 <호방>은 무인도에 가고 싶은 저의 마음을 여실히 잘 보여준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책에서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짜릿함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다소 거친듯한 물살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물끄러미 저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인물은 주변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찬 풍파 속에서 약간은 근심스러워 보이는 표정은 더욱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림 속의 인물은 당장 어딘가로 이동하거나 움직이려고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거친 파도 속에서 그 자리를 지키며 담담히 자신이 가야 할 곳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전 이 작품을 보면서 현대인의 삶 깊숙이 위치한 소용돌이와 고독을 느꼈습니다. 또한 현시대를 살아가는 가장들의 삶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급변하는 삶과 스트레스 속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고 앞으로 향해 가야 하는 인간의 삶은 겸재 정선이 생존했던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 같습니다. 풍파 속에서도 잠시 휴식을 취하는 인물의 모습은 심지어 초월적으로 느껴집니다. 인물 주변의 세찬 파도는 흰색으로 표현하고 넘실거리는 파도 전반의 모습은 옅은 하늘색과 세필의 움직임으로 대조적으로 표현한 기법도 인상적입니다.


신선이나 도교는 신앙적인 원리나 논리를 전파하는 종교가 아닌 조상들의 삶과 의식에 스며들어온 삶의 태도 같은 종교입니다. 도교의 핵심은 수련을 통해 볼로장생하는 신선이 되는 것입니다. 세태가 혼란할수록 현실을 도피하고 이상세계를 갈망하며 신선이 되고자 하는 분위기는 당파 싸움이 거세게 일어났던 당시 사회적으로 형성된 분위기였을 것입니다. 가난한 유년시절 겸재 정선에게 학문의 길을 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던 안동김씨 김수향과 김수흥은 당파 싸움으로 인하여 사약을 받았습니다. 이는 겸재 정선의 주변에만 일어난 일은 아닌 거센 당파 싸움으로 인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권력과 명분을 둘러싼 혼탁한 싸움 앞에서 당시 사람들은 신선의 삶을 소망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를 사는 현대인의 삶도 녹녹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조직이든 정치적인 싸움은 존재하며 개인사업자, 프린랜서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잘 헤쳐가야 합니다. 어느 시대이건 인간이 발을 딛고 사는 현실은 돌발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존재하고 이를 버텨가며 사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인 것 같습니다. 저는 겸재 정선의 <인곡유거>와 <호방>을 보면서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삶은 같다고 느꼈습니다. 삶이 힘들수록 혼자만의 시간을 잠시나마 가지면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시대를 초월하여 동일합니다. 개인으로서 한 사람은 자신을 위한 짧게라도 온전한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프리랜서로 전시 기획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는 제가 당장 홀로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호방>에 그려진 파도 속의 바위와 같은 제 자리를 잘 지키며 짬짬이 나 홀로 재충전하는 시간을 잘 확보해보려고 합니다. 바쁜 삶을 사시는 독자님들 모두 자신만의 시간을 잘 가지시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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