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섬진강

11월 중순의 차가운 공기를 가득 머금은 칠흑같이 어두운 겨울 섬진강의 거센 물살이 점점 빨라진다. 비가 자주 오지 않는 겨울철의 강물 수위는 여름철에 비해 얕은 법인데 오늘따라 유달리 물은 거세고 빠르게 흘러 멈추는 것을 잊은 듯 하다.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 김서방을 애타게 찾는 김서방댁의 한이 서린 오열은 인적이 드문 겨울 강가를 살을 에이는 추위와 함께 고통스럽게 메우고 있다.


"세복이 아버지! 세복이 아버지!"


"세복이 아버지, 말 좀 해보이소, 대체 어디에 있는교?"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하동을 관통하는 섬진강의 거센 물살이 김서방댁의 목소리를 단숨에 집어삼킨다. 굽이 굽이 흐르는 섬진강의 물줄기는 마치 화선지를 가로지르는 붓의 움직임처럼 강렬한 율동감을 가지며 거침없이 흐른다. 김서방댁의 감색 치맛자락은 이내 얼음장 같은 차가운 겨울철 강물로 젖기 시작해 밑단부터 고동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지리산의 매서운 칼바람은 차가운 강물과 함께 김서방댁의 온몸을 휘감는다. 그러나 사라진 남편을 찾는 여인의 오열은 살을 에워싸는 겨울의 한기보다 더 강하다.


"김서방댁. 강물에서 퍼뜩 나온다! 산 사람은 살야야제!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아이가!"


반쯤 정신을 잃은 채 애타게 김서방을 찾는 김서방댁을 찾아 화개장터 주막에서 일하는 하서방댁이 강가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김서방이 섬진강에서 없어졌다는 소문이 하동에 파다하게 퍼지면서 김서방댁과 가깝게 지내는 하서방댁이 주막일을 잠시 멈추고 강가로 발 빠르게 내려온 것이다. 짚신 사이로 신은 누런 빛깔의 버선이 차가운 강물과 닿아 서서히 옅은 회색빛을 띠기 시작한다. 차가운 강물에 발이 꽁꽁 얼어붙을 것 같지만 평소에 친자매처럼 가깝게 지내온 김서방댁을 강가에 홀로 둘 수는 없는 법이다. 하서방댁은 김서방댁의 손을 잡아끌며 강둑으로 올라온다. 억지로 잡아 끄는 하서방댁의 손을 세차게 뿌리치지만 김서방댁의 마음속에는 사라진 서방을 따라 강가에 몸을 던지고 싶은 마음은 이상하게도 눈곱만큼도 없다.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는 분노가 절망 가운데 빠진 그녀의 마음을 두드린다.


'세복이 아버지가 남색을 한다는 항간의 소문이 사실이란 말인가...'


김서방댁을 볼 때마다 눈을 흘기며 안타까운 듯이 혀를 차는 주모의 시선을 천박한 여인네의 눈길이라 애써 외면했건만 오늘따라 주모의 시선이 차가운 추위와 함께 살을 파고드는 격렬한 사실로 김서방댁 마음 한구석을 난도질한다. 사회의 질서와 사람 간의 예의를 그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양반 동네인 하동에서 남색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양반이 아닌 소작농의 삶이지만 예와 도리를 다 갖춘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던 김서방댁에게는 천지가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일이다. '세복이에게는 어떻게 이 사실을 설명해야 할까. 아버지가 강가에서 사라진 일을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아니 아버지가 차가운 겨울 강물에 몸을 던졌다는 것을 어떻게 어린 자식에게 알려줘야 할까.' 명민한 김서방댁의 머릿속은 세찬 태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복잡하다. 추위에 입술마저 파랗게 질려버린 김서방댁을 하서방댁은 온 힘 껏 꼭 껴안으며 통곡을 한다.


"김서방댁아, 니가 정신을 차려야지. 니 이러다 죽는다. 니도 죽는기다. 니가 지금 강물에 뛰어 들어가 때가? 세복이를 생각해야제!"


차가운 바람과 어두움 사이를 뚫고 하서방댁의 따뜻한 손길에 이끌려 당도한 곳은 김서방댁이 그토록 오기 싫었던 주막이다. 화개장터의 모든 소문이 머물다 퍼져나가는 주막은 양귀비처럼 화사한 인물을 자랑하는 주모의 웃음과 색기로 수많은 남정네들이 몸과 마음을 머물다 가는 곳이다. 그들의 발걸음처럼 소문도 삽시간 안에 하동과 닿아있는 광양까지 퍼져나가곤 했다.


"김서방댁, 이리 와, 꼴이 이게 뭐야! 이리 와서 몸을 좀 녹여봐! 세상에나 옷이 다 젖었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한양에서 야반도주해서 하동에 내려왔다는 주모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한양말씨를 맵시 있게 썼다. 뽀얀 피부 위의 탐스러운 앵두보다 더 붉은 입술 그리고 아이를 낳은 적이 없는 것 같은 날씬한 몸을 가진 주모는 중년의 나이이지만 아가씨 같은 외모를 뽐내고 있다. 구수한 사투리가 아닌 딸랑거리는 은방울 종소리 같은 주모의 말씨는 사내들의 마음을 더 요동치게 했다.


이윽고 반쯤 넋이 나간 김서방댁은 텅 빈 동공으로 주모를 쳐다본다. 그런 김서방댁의 등을 후려치며 주모가 알랑거리는 고운 종소리가 아닌 거대한 천둥 같은 소리를 냅다 지른다.


"김서방댁, 정신 차려, 여길 보라고! 내가 보이는가? 하서방댁, 어서 가서 뜨듯한 국물 좀 챙겨 와. 이러다 사람 얼어 죽겠어!"


주모의 고함과 함께 하서방댁은 부리나케 주방으로 향하고 김서방댁은 이내 다리가 풀려버린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김서방댁의 몸을 흔들어재끼는 주모 손의 따뜻한 온기 때문인지 그토록 오기 싫었던 주막에서 김서방댁은 그만 실신해 버렸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