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방댁! 김서방댁!"
실신한 김서방댁의 두 뺨을 세차게 연거푸 때리는 매서운 주모의 손바닥이 빚어내는 찰진 소리와 김서방댁을 애타게 부르는 고통스러운 외침에도 불구하고 김서방댁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애가 타는 마음에 주모가 김서방댁의 몸을 흔들면 흔들수록 눈꺼풀이 반쯤 뒤집혀서 흰자를 보이는 김서방댁을 보다 못한 주모는 하서방댁을 향해 소리를 버럭 지른다.
"하서방댁! 지금 따뜻한 음식보다 찬물을 끼얹어야 할 것 같아! 조롱박에 물 좀 떠 와! 사람부터 정신을 차리게 해야지!"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겨울철의 차가운 물이 김서방댁의 얼굴을 매섭게 휘갈긴다. 찬물에 번뜩 정신을 차린 김서방댁은 느닷없이 온몸에 닥친 한기에 상반신을 부르르 떤다.
"시방 여기가 여딘교? 내가 왜 여기에 있는교? 요기가 장터 주막 아닌교?"
새파래진 입술과 창백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는 김서방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주모는 연거푸 김서방댁의 등짝을 후려친다.
"이 사람아, 여기가 주막이지. 그럼 어디야! 이제 정신이 좀 드는가?"
김서방댁은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으로 주모의 두 눈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은 ‘이 사람 나를 강가에서 얼어 죽게 내버려 두지 왜 하서방댁을 보냈는가'라는 생각을 심연의 소용돌이처럼 불러 일으킨다. 얼어붙은 강물처럼 차갑게 얼어붙은 몸을 녹일 수 있는 구수한 숭늉을 끓여 온 하서방댁은 김서방댁을 바라보며 "한 사발 들이키구마, 몸부터 언능 뜨시게 해야제. 이러다 얼어 죽겠다 아이가...."라며 연신 두 눈을 무명천 치마에 훔치며 말끝을 흐린다.
때마침 장날이 아닌지라 손님이 없는 텅 빈 주막 마루에 걸터앉는 세 여인은 서로를 돌아가며 바라본다. 세월이 스쳐 지나간 흔적이 남았지만 여전히 양귀비처럼 고운 얼굴의 주모는 김서방댁을 측은한 듯이 바라보고 김서방댁은 불편한 듯 그 시선을 애써 피하며 하서방댁을 바라본다. 치마 앞섶에 연거푸 손을 닦는 하서방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다시 주모를 바라본다. 안쓰러움과 고마움과 안타까움이 교차되는 와중에 무슨 결연한 다짐이라도 했는지 주모는 두 눈에 힘을 불끈 주고 조심스레 다물고 있었던 입술을 뗀다. 김서방을 바라보는 주모의 시선은 연민과 참담함이 연이어 교차되는 무거운 무게감이 상대방을 압도하는 눈길이다.
"김서방댁, 알고 있었지? 세복이 아버지..."
"뭘예, 무슨 소리 하십니꺼? 세복이 즈그 아부지가 뭐예? 내는 지금도 주모가 무슨 말하는지 모르겠어예."
"김서방댁,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이제 잘 받아들이고, 이 세상에 남은 김서방댁은 자기 삶을 어떻게든 살아야지. 지발로 세상 떠난 서방을 따라 이렇게 죽을 수는 없잖아. 자네에게는 세복이도 있잖아."
두 여인의 긴장된 눈빛만이 주막을 채우면서 삽시간에 불편한 정적이 주막을 감싼다.
"자, 이제 내가 직접 본 일을 이야기해 줄게, 잘 들어봐. 여기에 거짓은 없어. 일절 보탠 이야기가 없다고."
김서방댁은 하염없이 주모의 두 눈을 바라본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왜 굳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해주려는 걸까. 차라리 모르고 속 편히 살면 좋을 텐데'. 그러나 이미 섬진강의 강물을 따라 떠나버린 세복이 아버지 덕분에 아예 모르고 살 수도 없는 세상의 비밀이 튀어나오는 순간이다.
"그래. 나도 참. 떳떳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누굴 만나러 물레방앗간에 갔어. 그쪽에서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나도 뒷산 넘어 쌍계사 근처의 물레방앗간에 갔지. 주변에 아무도 없는 듯했어. 나도 근방 사람들에게 다 아는 알려진 얼굴이니 내가 비록 주모일지라도 사람들 시선을 아예 무시하고 살 수는 없는 법이야. 그래서 주위를 잘 살피고 조심스럽게 물레방앗간에 들어갔어."
김서방댁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모를 바라본다. "그래예? 물레방앗간이예?" 김서방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주모는 안타깝다는 듯 혹은 답답하다는 듯이 김서방댁을 바라보며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간다.
"내가 왜 물레방앗간에 간 이야기를 김서방댁에게 하겠어. 거기서 세복이 아버지를 본 거지. 나도 깜짝 놀랐다고. 세복이 아버지가 물레방앗간에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거든. 근데 더 놀란 것은 말이야, 거기서 세복이 아버지와 같이 있었던 사람이 남자였어.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남자."
"예에?“ 침이 목구멍에 꿀꺽 넘어가는 김서방댁은 반사적으로 반응한다. "젊은 남자랑요?"
"으응, 내가 보니 열여덟? 그 정도 되어 보이는 이쁘장하게 생긴 남정네였는데, 내가 들어가니 후다닥 물레방앗간 뒷문으로 도망치더라고. 얼핏 보기에는 구례의 최참판댁과 기생 사이에 낳았다는 그 사내 같던데. 구례에 달맞이꽃처럼 화사한 관기가 있잖아. 자네도 소문은 들어봐서 알지? 그 어여쁜 얼굴을 한 번 보면 평생 잊을 수 없다는 그 관기. 그런데 내가 그때 얼핏 봐서는 정확히 잘 모르겠어. 그 사내가 나름 의복을 갖춰 입고 있었어. 무명천의 흰색 윗도리와 아랫도리는 아니었어. 김서방은 이상하게도 도망치지 않고 나를 빤히 한번 한참을 바라보더니 그 사내를 따라 뒷문으로 나가더라고."
"아니 이게 참말입니꺼, 근데 왜 주모를 빤히 쳐다보고 나갔지예?"
"그건 나도 모르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말하긴 뭐 하지만, 그 둘은 보통 사이가 아니야."
"와예? 물레방앗간에서 사내끼리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닙니꺼?"
"아우, 이 사람 세상 답답하네! 사내끼리 이야기하려면 주막에 오지 왜 물레방앗간으로 가나? 그리고 말이야, 물레방앗간의 공기가 사뭇 달랐어. 눅눅한 습기가 자욱했다고. 나도 놀랬기도 하지만 찜찜한 기분에 그냥 다시 주막으로 부리나케 달려 내려왔다네. 그런데 말이야, 나를 바라보던 세복이 아버지의 눈빛이 잊히지가 않아."
"와예?"
"왜나면, 뭐랄까... 마치 이 일을 알려달라는 듯한 눈빛이었어. 나는 화개장터의 주모잖아. 장날이면 지리산을 타고 온 수많은 상인들이 들리는 주막의 주모이니, 내가 말하면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가는 것은 시간문제이지. 그렇지만 나는 주막을 오고 가는 보부상들에게 이를 차마 말할 수 없었어. 우리 하동이 보통 동네인가? 자랑스러운 양반 동네 아닌가? 하서방댁에게는 세복이 아버지가 좀 이상하다고 속내를 털어놓았지만 말이야. 그런데 나 말고도 세복이 아버지와 그 젊은 사내를 본 사람들이 더러 있었나 봐. 나에게 와서 언질을 주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어. 내가 그 사람들이 누구라고는 말하지는 못해. 그들도 나름 사정이 있어서 물레방앗간을 찾은 거니까 말이야."
두 눈에 초점을 잃은 김서방댁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애써 정돈해 보려고 한다. 머리카락을 만지는 두 손은 힘이 빠져서 있지 좀처럼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채 정리가 되지 않는다. 찬물에 흠뻑 젖은 옅은 회색의 저고리와 고동색이 되어버린 감색의 치마 그리고 겨울의 한기를 품은 강물에 젖은 짚신과 때가 누렇게 물든 버선을 만지며 자기 스스로를 애써 가누어 본다. 그러나 혼이 나간 마음과 정신을 단단히 부여잡기엔 두 귀를 칼로 베듯이 스치는 지리산 자락의 바람과 무성하던 소문의 뒷이야기가 김서방댁의 몸과 마음을 온 힘껏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어마나. 이렇게 물에 젖은 사람을 내가 마루에 앉혀 놓았네. 잠깐 방으로 들어가세. 아궁이에 불을 넉넉히 떼줄게. 몸을 좀 녹이고 가. 이러다 얼어 죽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