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포스터가 유난히 이뻐보인 날
"예사로움"공모전에 도전하게 된 것은 필연적으로 저의 퇴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 회사 대표님과 둘이서 스타트업을 한 뒤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말로 다 못할 많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습니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와 예상치 못했던 수많은 문제들과 드라마틱한 해결들. 많은 노력과 일을 통해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 등. 그러나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한 후 업무와 살림과 육아는 엉망진창이 되었고 '모든 워킹맘이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닐까?'라는 자조적인 생각을 하며 무엇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삶을 관망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방학이 끝나고 아이가 2학기가 시작되어고 '엉망진창의 사이클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를 한참을 고민했는데, 그 때 문득 든 생각은 '그래, 이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내 자식을 키우고 싶은 사람은 나 밖에 없다. 남은 내 자식을 키우고 싶지 않다.' 였습니다. 사실이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시 저는 당시 우울증 치료를 하고 있었고 정말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8개월 정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8개월과 1년 사이의 시간. 그 시간 동안 요가에도 빠지고 요리를 탐닉하고 동네 뒷산도 가면서 자연스러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시간은 상대적이어서 어떤 식으로 쓰던 나의 것이 되는데 시간을 쓰는 새로운 방식을 도전하기 전에는 시간이 다르게 느껴지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도 깨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육아 동지인 안 선생님은 저의 퇴사와 휴식을 응원해 줬습니다. "맞아, 언니 이제 좀 쉬어도 되요, 너무 달렸어요. 나중에 일은 다시 하면 되지 뭐." 당시 이 말을 듣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어떻게 다시 일해?'
쉬는 동안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챙길 수 있게 되습니다. 첫째와는 등교길에 더 이상 싸우지 않게 되었고, 놀아달라는 6살 둘째의 원성도 맘편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과 달리 개인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지면서 생긴 변화였습니다. 아이들과 왜 이렇게 싸웠나를 생각해 보니 저의 내면 안에는 아이들을 무조건 빨리 보내고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했고 정작 아이들이 하교/하원하고 나서도 지속되는 업무로 인해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 같습니다. 벌어들이는 수입은 줄었지만 마음에 강같은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늘 똑같이 흘러가던 여유로운 일상의 어느 날, 솔직히 말하면 인생이 약간 심심하다라고 느끼고 있던 중 집 옆 건물인 양천문화회관(양천문화재단)에 붙은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방문을 열고 나와 외부를 향한 창을 통해 소통을 시도한다는 의미의 포스터는 살바도르 달리 회화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으로 '오 문화재단 포스터가 이렇게 이쁘다니! 웬일이냐!'라고 생각하며 포스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포스터의 내용은 대강 이러했습니다. 양천구 내의 지역 예술가 지원 프로젝트이며 양천구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예사로움을 담은 프로젝트를 공모한다는 내용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예술가인가?" 저는 스스로 기획자라고 생각하며 여태것 살아왔는데, 이번에는 "예술가"인 셈 하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 생각은 "아, 양천구 살이 30년. 나 이건 정말 잘 할 수 있다. 나만큼 여기에 오래산 사람도 별로 없겠지!"였습니다. 이 지역에서 30년간 살아오면서 잠자리 채를 들고 뛰어다녔던 해바라기 밭에 건물이 들어서는 과정을 바라보았고 고등학교 시절 처음 생겨 수많은 추억을 쌓아온 동네 맥도날드가 폐점하는 모습도 목도했습니다.
포스터의 내용을 찬찬히 읽고 양천문화재단 홈페이지에 들어보니 세상에나 서류 접수 기간이 일주일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동안 오며 가며 포스터를 보고 '포스터 디자인 참 잘했네'라고 생각만 했지 기한을 보지 않았던 거였죠. 일을 손에 놓으니 기한은 저에게 남의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하고는 싶은데 기한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과연 내가 기한 안에 신청서를 잘 써서 낼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을 하는 중에 머리 속에는 아이러니하게 진행할 콘텐츠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용기내어 저의 육아동지 안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미소엄마, 우리 이거 해볼까요? 공모전 공고 혹시 봤어요?"
그러자 안 선생님은 대답합니다.
"언니, 저 하고 싶어요. 포스터가 이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오디너리 콜렉터는 시각적 동물인지라 이쁜 포스터에 끌렸습니다. 정말로 단순합니다. 미소 어머니 안 선생님도 육아와 미술교습소 외에 다른 영역으로 일을 확장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둘 다 양천구 살이 30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한을 확인하지 않고 포스터 디자인만 보고 감탄하던 우리에게 새로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팀명도 정했습니다. 일상을 수집하는 '오디너리 콜렉터'.
신청 서류 양식을 보고 내용을 채워가는데 신기하게도 술술 빈칸이 채워져갔습니다. '우리가 성장해온 지난 30년간 아쉬웠던 것을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자'가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굉장히 자연스럽고 심플한 주제였습니다. 우리의 주제는 바로 '아빠(싱글맘을 포함하여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미술 작품을 만드는 시간'입니다. 대한민국의 육아는 엄마에게 집중적으로 편향되어 있습니다. 엄마가 직업이 있든 없든 간에 육아는 엄마의 몫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아빠는 경제적으로 집을 부양하는 것이 1번 덕목입니다. 저는 1세대 맞벌이 가정에서 자랐는데, 엄마는 직장일과 육아로 늘 분주하셨고 아빠는 일에 몰두하셔서 집에 돌아오셔서도 늘 골똘한 모습이셨습니다. 지금은 아빠들의 육아 참여율이 예전보다 높아졌다고 하지만 대한민국 K-가장이 어깨 위로 짊어지는 부담감은 예나 지금이나 별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빠처럼 가정의 경제를 짊어지고 사는 싱글맘도 적지 않습니다. 프로젝트 기획안을 쓰면서 부모님들이 아이와 함께 마음을 나누는 에세이, 드로잉, 조형물을 창작하고 양천구 내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프로젝트의 진짜 목적은 단순한 창작활동을 뛰어 넘어서 힐링과 관계의 회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