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바위[2] _ 슬프고 대견한 자암(子巖)

by 이탁

이제 우리는, 우리가 농암바위로 알고 있었던 [자료 1]의 ①번 바위를 다시 살펴볼 차례이다. ⑭번 바위가 떨어져 나간 을사년 홍수 사건은 이 바위의 존재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하게 해 준다. 추정이지만, 저 바위는 농암 당시에는 없었던 바위다.


농암 당시에 없었다는 것은 이런 추정이다. 농암은 당시 인근의 웬만한 바위에는 모두 이름을 주고 더불어 물아일체의 삶을 살았다. 농암(聾巖), 상암(象巖), 사자석(獅子石), 점석(簟石)이 그런 바위들이다. 그런데 저 바위는 이름이 없다. 더해서 당시의 어떤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분천헌연도에도 물론 없다.

저 위치에, 저만한 크기의 바위가 이름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런 바위가 기록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분명 저 바위는 농암 당시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저 바위는 언제 어떻게 나타난 것인가? 나는 한 때, 일제(日帝)의 신작로(新作路) 조성의 잔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사진에 보듯이, 저곳은 암반지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선 저 정도의 공사로 저렇게 거대한 바위가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고, 무엇보다 저 시대 가까이 살았던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그런 사실이 없었다는 것이다. 저 바위는 그 이전부터 저기에 저렇게 있었다.


사람들은 언제부터인지 농암바위라 불렀지만, 내게는 불가해(不可解)한 바위였다. 분명 어디서 온 것인데, 저 바위는 어디서 왔을까? 크기와 무게로 봐서 상류에서 떠내려 오기도 어려웠다.

유력한 가능성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옆 산의 암반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이다. 그 가능성이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史實)이 있다. 바로 ⑭번 바위다. 이제 우리는 그 가능성을 확인해 보도록 하자.


우선 ①번 바위는 크기와 모양이 떨어진 빈자리와 거의 정확하게 맞다. ①은 지금 옆으로 누워있지만, 바로 세워 ⑭번 자리에 모양을 맞추어 넣으면 거의 헌연도 그림의 모습이 나온다. 없던 바위, 새로 나타난 바위가 이런 일치를 보이는 것이 그저 우연일까? 그 우연의 확율이 과연 얼마나 될까?

무엇보다 그 위치가 결정적이었다. ⑭번 바위가 물에 쓸려 떨어지면, 지형과 물의 흐름상, 거의 정확하게 ①번 지점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다음 그림이다. 앞의 <자료 1>인데, 이 사진은 사진 구도상 이걸 확인해 보여줄 수 있어서 정말 귀중한 자료다.


7.bmp


낙동강은 우측에서 좌측으로 지나간다. 홍수로 불어난 물이 수위를 높여서 ⑰번 농암바위를 우측에서 타격해 좌측으로 쓸고 지나가는데, 그러면 그 물의 힘과 지형으로 보면, 딱 ⑱번 자리쯤에 떨어지게 된다. 떨어졌지만, 자체 중량으로 떠내려가지는 않았던 것이다.

명시적 기록이 없고 추정이지만, 주변기록과 정황으로 보면 거의 명백하다. 홍수로 ⑭번이 떨어진 것은 사실(史實)인데, 주변에 떨어진 바위가 없다는 것도 이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 떨어진 ⑭번 바위가 바로 ①번 바위이다.


그렇게 보면, 저 ①번 바위가 농암바위라는 말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본체가 아닐 뿐이다. 농암바위의 아들바위(子巖)이라고 하면 될까? 본의 아니게 떨어지기는 했지만, 누르고 버텨 물살의 힘을 이기고 멀리 떠나지 않은, 보는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또 대견한 자암(子巖)이다.


나는 이글 앞부분에 저 바위를 ‘농암바위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 농암바위라고 부르면 틀렸다’고 한 바 있다. 이런 이유이다. 이 바위는 농암바위의 자암(子巖)일 수는 있지만, 농암바위라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상부가 있는 제일 뒤의 바위가 본체이고, 농암이라는 이름도 당연히 남아있는 그 본체의 몫일 것이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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