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에세이 2편
우리 아인 미술에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다. 그림 그려볼까 색연필을 가까이에 두면 엄마, 아빠가 그려줘~!하며 우리에게 미루기 일쑤였다. 미술에 관심이 없구나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가 좋아하는 로봇의 변신을 도와주며 몇개월이 흘렀다. 여섯살 형님반이 되어 어린이집 새로운 반에 적응하면서 아이가 갑자기 스케치북을 펼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지개와 숫자가 시작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무지개 그려줄까? 하며 빨간색부터 보라색 줄을 켜켜이 반원형태로 그리고선, 다시 무지개를 그리길래 또 그리나 하고 살펴보니 이번엔 반대로 보라색부터 시작해서 빨간색으로 마무리되는 무지개를 그리는 것이었다:) 지니어스~같은 걸 거꾸로 그리는 걸 누가 알려준 일도 없는데 이런 천재같은 발상은 뭐지 속으로 생각했다.
여기서 그치겠지 몇개월간 마음을 내려논 기억에서 비롯된 생각이었는데, 아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7부터 시작해서 10까지를 암호 작성하듯 신기한 방식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8은 눈사람처럼, 9는 알파벳 b를 거꾸로 그리듯이, 10은 좌우를 바꿔서 쓰는데 어찌나 신기하게 암호같은 그림 그리듯 쓰는지 자꾸 바라보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이건 뭐야? 우와 숫자 7,8,9,10 다 쓸 수 있는거야? 대단하다!를 연발하며 아이가 계속 암호같은 글자를 쓰는걸 지켜볼 수 있었다♡ 스케치북을 들춘 적이 없었던 아이인데 갑자기 발을 들인 아이의 스케치북 세상을 바라보는 게 너무나 소중한 시간으로 느껴졌다.
이젠 로봇을 변신시키다가도 좋아하는 영상을 보다가도 문득 스케치북과 색연필 하나를 들고와 매트에 엎드려 자신만의 암호세계로 들어간다. 시작은 무지개와 숫자였고, 지금은 요일과 알파벳으로 확장되었다. 아이가 쓴 '월화수목금토일'을 보고 있노라면 이건 좌우가 뒤바뀐 거울 세상에 와있는 기분이다:) '월'의 'ㅓ'가 바깥으로 뻗어있어 'ㅏ'이 되어있고, '금토일'은 거울에 비춘듯 방향이 바뀌어있다. 또 'ㅇ, ㅁ' 빈곳이 있는 글자는 꼭 색칠을 해둔다. 글자와 색칠놀이가 묘하게 합쳐져있는 거울 속 그림글자를 해독하는 해독자가 되어 아이의 스케치북을 들여다본다:)
좌우가 뒤바뀐 모습이 내겐 얼마나 재밌는 해독과제인지 모른다. 숫자 78910을 연이어 세번 쓴 스케치북 한장의 모습은 7이 대칭되어 하나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어디 아이그림 공모전에 내봐야하나 속으로 즐거운 상상도 한다:) 이중에 클라이막스는 아이가 스스로 쓰는 본인 이름이다. 꼭 본인이름을 서명처럼 기록해두는데 이름의 '시윤'이 각양각색이다. '윤시'가 되어 있을 때도 있고, 거기서 '시'는 또 거꾸로 쓰여있다. 거꾸로 안에 또 거꾸로!:) 이쯤되면 아이의 머릿속의 좌우대칭은 얼마나 자유자재인 걸까 그 시기의 아이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도 이렇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감탄한다♡ 본인이름을 서명처럼 박아둔 아이의 스케치북의 세계가 무한히 확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현실세계의 바른 좌우대칭은 지금은 절대 말하고 싶지않다:)
아이야, 너의 세계를 스케치북으로 엿볼 수 있었던 시간을 엄만 절대 잊지 못할거야. 이 스케치북만큼은 엄마가 다이어리를 버리지않고 차곡 모으듯 꼭 지켜낼거야. 언젠가 이렇게 자유롭게 기록했다는 사실을 네가 직접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로: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