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에세이 3편
요즘 누우면 빠르게 잠에 빠져드는 아이가 자기전 내게 말했다. "두 밤만 자면 주말이니까 잘 기다리자." 그말을 듣고 "오 기다리라는 말도 아는거야?"하고 대견해하는 내 말을 듣고 아이는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이젠 꽤나 길어진 다리를 신기한 자세로 만들고 잠든 아이 옆에 잠시 누워 생각했다. 내게 건네는 청유형의 말이었을까, 스스로에게 건네는 다짐의 말이었을까. 처음 들었을 땐 아이가 스스로를 다독이는 씩씩한 다짐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이젠 놀라울 정도로 논리정연해진 아이가 청유형 문장을 뱉었다는 게 함께 잘 기다리자는 공동의 의미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도 이제 아는 것이다. 엄마아빠도 간절히 주말을 기다린다는 걸.
여섯살이 되고나서 어린이집 아침 등원길에 내 바지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며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아이 모습을 마주했다. 만18개월부터 어린이집에 간 이래로 이런 적이 처음이라 신랑과 난 무척 당황스러웠다. 삼년 가까운 시간 동안 어린이집 등원할 때 문앞에서 우는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아인 잘 들어가는 모습에 내심 우쭐하기도 했고, 안정적인 애착형성이 되었다는 생각에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왜 이제야 이런 모습이 등장하는 거지?'란 생각에 허우적거렸다. 어린이집 담임선생님과 이런저런 하소연 비슷한 상담을 하고 방법을 공유하다가 원인을 찾고파하는 다급한 마음을 일단 내려놓고 아이가 원하는 시간대에 최대한 맞춰 하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 계기는 사소하지만 강렬했다. 어르고 달래보다가 화도 내보면서도 앞이 보이지 않던 어느 날,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데리러 올 거라는 아침 공지(?)에 아이가 집에서 어린이집까지 정말 한마리의 나비처럼 사뿐히 한달음에 뛰어갔다. 그모습을 물끄러미 뒤에서 걸어가며 바라보는데, 이렇게 산뜻한 기분으로 등원길이 이루어진 건 이주일 중에 처음이라는 걸 몸이 먼저 알아챘다.
아이의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키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확고해지면서 점점 방향을 찾아갔다. 아침에 몇시에 오겠다고 여러번 공지하고 등원길에 울지않고 씩씩하게 들어갈 수 있지? 되묻고 어린이집 앞에서 꼭 안아주고 시간을 다시 언지하며 손가락을 건다. 방법이 조금씩 추가되어 어린이집 식단을 읊으며 좋아하는 간식 등을 먹을 수 있는 즐거움도 얹어준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나올 때 모습을 지켜보다 알아버렸다. 아이가 본인 신발을 꺼내며 신발장에 남아있는 다른 아이 신발들을 유심히 보고 숫자까지 세어본다는 걸. 숫자세기를 30까지 하게 된 아이가 숫자세기를 이런 것에 적용하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회사에서 내가 나오기 전까지 누구누구가 남아서 일을 하는지 은근슬쩍 보는 나와 다른 게 뭔가 또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이젠 비교라는 걸 시작했고, 일찍 가는 다른 아이들이 눈에 띄고, 유리한걸 더 누리고 싶고 자신이 원하는 걸 꽤나 논리적으로 당당히 요청할 수 있는 인간적인 모습이 나왔을 뿐이란 걸 이해할 수 있었다.
더해 아이는 이제 기다림도 체득하고 있다. "두밤만 자면 (엄마아빠도 나도 가장 좋아하는) 주말이니까 (어린이집 가서 보내는 시간을/엄마아빠가 일터에 가서 버티는 시간을) 잘 기다리자"고 먼저 건네기까지 한다. 그래 우리 아이는 정말 잘 크고 있다. 고심하고 버티고 울고 감격하고 웃으며 고난과 평온이 함께 하는 시간을 자연스레 통과하며. 아이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도. 엄마아빠도 정말 잘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