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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Apr 26. 2020

토론토 여행기 - 2

밴쿠버 시골쥐의 대도시 탐방

 3시간 정도 푹 자고 난 뒤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했다. 다운타운에서 토론토에서 워홀 하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숙소에서 다운타운까지는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야 했는데 내가 타야 하는 지하철 노선은  탈 거면 타봐 C.. (TTC)이라는 닉네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주말임에도 지하철은 운행이 중단되었다.


 어떤 공사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대신 지하철 운행구간을 다니는 무료 셔틀버스가 있었다. 배차 간격이 꽤 짧아서 금방 탈 수 있었으나 도로 상황은 정말 최악이었다. 운행을 안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차가 너무 막혀서 5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를 버스 안에서 거의 한 시간을 서서 갔다.

토론토 교통카드 Presto

 긴 기다림 끝에 다른 노선으로 갈아탈 수 있었다. 우이신설선 만한 밴쿠버 스카이 트레인만 타다 만난 토론토 지하철은 넓고 쾌적했다. 여전히 지하에서 핸드폰은 안 터지지만 서울에서 지하철 타던 기억이 날 정도로 좋았다. 그렇게 토론토에서 워홀 하는 친구와 감격의 상봉을 마친 뒤 점심을 먹기 위해 거리를 나섰다.


 첫끼는 할랄 가이즈. 입맛이 비슷한 친구라 할랄 가이즈를 꼭 먹어보라며 추천을 엄청 해줬는데 안타깝게도 밴쿠버에는 할랄 가이즈가 없었다. 그래서 토론토 첫끼는 꼭 할랄 가이즈로 가겠노라 다짐했었다. (알고 보니 강남에 할랄 가이즈 있다고 한다. 서울에서 헛살았나 보다.)

 처음 맛본 맛은 아니었다. 평소 치폴레에 단련되어 있었고 수많은 중동 음식점을 스쳐 지나가다 맡아본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고 먹은 첫끼라 처음에는 배가 고파 맛있게 먹다가 반쯤 먹었을 무렵 향신료가 다소 강하게 느껴지긴 했다.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이제 본격적으로 다운타운 구경을 할 차례. 날씨가 다소 궂었지만 이미 레인 쿠버에 적응되어있어서 큰 영향은 끼치지 않았다.

 분명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 밴쿠버의 작은 도심에 익숙해져 버렸는지 토론토 다운타운 거리를 걸으면서 자꾸 도시의 규모에 감탄하고 친구에게 부러움을 내비쳤다. '뭐야 토론토 엄청 크고 좋잖아?' 이런 내 모습을 본 친구는 시골쥐가 되어버린 나를 낯설어했다. 그렇지만 거의 모든 건물이 다 크고 높고, 거리에 사람이 많아서 오랜만에 본 북적거림이 신기했던 건 사실이다.


가장 큰 쇼핑센터인 이튼타워도 가보고 캐나다 대표 음료(?) 버블티도 먹었다. 토론토도 역시 밴쿠버 못지않게 버블티 집이 많았고 이 집 망고 스무디는 진짜 맛있었다. 타피오카 펄은 너무 크고 질겨서 버렸지만.

 관광객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찾아간 구 시청. 한국인 단체 관광객은 물론 세계 각국 관광객이 많았다. 프레임에 아무도 없이 독사진 찍는건 불가능 했을 정도라 후다닥 찍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운이 좋게 점점 날씨가 개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가려고 했던 세인트 로렌스 마켓은 이미 문이 닫혀 방황하다 근처에 위치한 토론토 유명 커피숍인 발작 커피에 방문했다.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분주한 바리스타들과 카페 모습은 기억에 남는다.

 뜬금없지만 이 카페에서의 가장 큰 발견은 커피보다 친구와 같은 아이팟 케이스를 쓴다는 점이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케이스가 있는데 같은걸 쓴다니! 밴쿠버와 토론토 사이의 거리가 케이스 하나로 한층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커피를 마신 후 더 맑게 개인 하늘을 즐기며 도심 탐방을 이어갔다. 다음 장소는 토론토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 옛날에 양조장이 있던 곳이라는데 현재 각종 갤러리, 아트샵, 레스토랑 등 구경거리가 많다. 깨끗하고 분위기가 잘 정돈되어 있어 젊은 예술가들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우리도 이 곳에 위치한 멕시코 음식점에 가려했으나 어떤 단체손님들이 가게를 통째로 대관해서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특이한 외관으로 유명한 건물인데 이름을 잊었다..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

 


 슬슬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저녁 고민을 하다 브루어리에 가기로 결정했다. 웬만한 곳은 다 걸어서 가도 되는 밴쿠버 다운타운과 달리 우리의 목적지는 거리가 꽤 있어서 스트릿카를 타고 가기로 했다. 트램 같은 차인데 생각보다 내부가 정말 넓고 길었다. 그새 해는 넘어가 버리고 도착한 브루어리. 주말이라 엄청 시끄럽고 다소 정신이 없었지만 탁 트인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다. 트러플 오일이 들어간 피자와 맥주. 게눈 감추듯 먹고 마셨다.

토론토 시내를 다니는 스트릿카

 다 먹고 마신 후 소화시킬 겸 워터프론트 주위를 걷는데 적당히 솔솔 부는 바람에 참 기분이 좋았다. 끝없이 나오는 하이라이즈 빌딩들에 감탄과 동시에 대체 여기 부동산값은 미쳐버렸구나 하는 씁쓸함.


 아 그리고 발견한 밴쿠버와의 차이점 중 하나는 인종 비율이었다. 동양인이 압도적인 밴쿠버와 달리 흑인이 굉장히 많았다. 미국도 서부보다 동부에 흑인이 많다고 하는데 북미 전체의 특징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 날 처음으로 캐나다에서 대놓고 인종차별을 당했다. 사실 차별보다는 괴롭힘에 가까운데, 친구들과 셋이서 걷다가 앞에서 오는 흑인 무리 중 어떤 남자가 우리 (정확히는 내 쪽)에 가까이 오자 왁!! 소리 지르며 놀래켰다. 깜짝 놀라는 나를 보며 자기 무리들끼리 재밌다고 웃는 모습이 참.. 기분이 나쁜건 물론 여러가지 감정이 들었는데, 서열을 나누고 싶진 않지만 역시 동양인 여자가 제일 만만한걸까 하는 현타가 왔다.


 앞선 사건은 똥밟았다 치고 집가는 길 피곤함을 합리화하며 우버를 탔다. 마침 숙소 맞은편에 큰 한인마트가 있어 다음날 아침 거리를 사고 무김치를 샀다. 교정기 생각 안 하고 보자마자 너무 먹고 싶은 생각에 사서 밤 열두 시에 우걱우걱 먹으며 잠을 청했다.


 사실 큰 계획을 짜지 않고 전적으로 하루 일정을 친구에게 맡겨버려 프리라이더가 된 느낌이라 미안했던 하루였다. 장소만 다를 뿐 평소 친구와 행아웃 하는 여느 날과 다르진 않았지만 상상력을 자극시켜주는 날임은 분명했다. 도심이 익숙한 나는 서울의 향수에 잠시 젖을 수 있었고 토론토에서 워홀할걸 하는 약간의 후회도 느꼈다. (떠나는 날엔 밴쿠버를 선택했음이 옳은 결정이었다는 걸 느꼈다.)


 가장 크게 느꼈던 감정은 토론토에 도착한 후 타국이 아닌 타 '도시'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 캐나다에 적응했음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었다. 물론 여전히 외국인이지만 :/


 새로운 거리를 걸으며 낯선 장소를 탐색하는 일은 언제나 넓은 시야를 갖게 해 주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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