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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상 Jun 08. 2016

환생

이보게! 자네! 그래 당신.


머리는 반쯤 벗겨진 체 눈을 가늘게 흘기며 나를 바라보는 한 노인. 그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큰 소리로 불러 세웠다. 나는 어색한 보폭으로 그 노인을 향해 걸어갔다.


"무슨 일이세요?"


잔뜩 의심하는 목소리로 노인을 향해 물었다.


"시간 교환할 생각 없나?"

"네?"

"아니, 시간 교환할 생각 없냐고."

"그게... 무슨...?"

"하, 거참. 말 안 통하는군."


노인은 답답한 표정으로 주름진 오른손으로 가슴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멀쩡히 길을 걷다 부른 노인에게 들은 '시간 교환'이라는 이야기는 누구라도 이해할 수 없는 주제일 것이다.


"이봐, 청년.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지. 다른 사람과 시간을 교환할 생각 없어?"

"아니, 잠깐만요. 갑작스럽게 부르더니 제게 물어보는 게 시간을 교환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는 겁니까?"

"그래. 당신과 같은 사람이 다른 차원에 존재하거든. 당신이 잠든 시간, 그리고 다른 차원의 자네가 잠든 시간을 서로 교환하는 거야."


나는 멍한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희한하게 노인의 말들이 거짓처럼 들리진 않았다. 동시에 궁금함이 생긴 것은 덤이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 한 뒤 노인에게 말했다.


"... 그럼 내가 잠들고 있을 때 다른 차원의 내가 내 몸을 쓰는 건가요?"

"하하하하!!!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노인은 배를 부여잡으며 굽은 허리를 앞 뒤로 흔들어댔다.


"그 무슨 소설 같은 얘기란 말인가?"


나는 속은 듯한 느낌에 배 속 깊이 화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창피함과 동시에 밀려드는 화는 곧 터질 것만 같았다. 뭐라고 말을 하려던 차, 노인은 내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을 했다. 그것과 동시에 노인은 갑작스레 내 손을 잡았다.


"!!! 뭡니까!"

"다른 사람의 시간을 체험하는 것이야. 잠을 통해 당신과 다른 차원의 당신은 연결될 것이야. 마치 다른 인생을 체험하는 듯하겠지."

"... 그게 가능한 얘기입니까?"

"흥! 믿지 않겠다면 말리지 않아."


미련 없이 돌아서는 노인의 모습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불러 세웠다.


"잠시만요! 한 번... 체험해봐도 됩니까?"

"흐흐... 잘 생각했어. 이리로 따라오라고."


노인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나보고 따라오라며 깊은 골목 끝으로 향했다. 생전 처음 보는 길이었지만 이내 노인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사방으로 흩뿌려지기 시작하는 양 옆의 벽들. 마치 파쇄기의 종이들 같았다. 놀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하얀 방. 깔끔한 방이었다. 베이지색의 리클라이너 의자가 그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며 이 곳이 내가 있던 평범한 세계가 아니구나를 깨닫고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누워봐."


그의 목소리에 홀린 듯이 누웠다. 어떠한 의심과 궁금증 따위는 저 세계에 놔두고 온듯했다. 오직 눈 앞에는 편안해 보이는 베이지 색 의자만 보였다.


자세를 고쳐 잡아 앉은 나는 등받이에 편히 몸을 기댔다. 푸딩처럼 부드럽게 몸을 감싸며 뒤로 넘어가는 느낌이 예술이었다. 뒷 목을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잡아 몸에 전체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자, 시작한다."


그 목소리에 내 의식은 한없이 멀리, 저 멀리 날아갔다. 시간과 중력을 넘어선 어떤 의지에 의해 나는 점점 속도를 높여갔다. 허무한 공간들이 주위에 둘러 쌓여 커다란 암흑만이 내 주변을 감쌌다. 간혹 가다 보이는 빛줄기에 아름다움을 느낀 것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원래의 세계와도 그 이상한 하얀 방에서도 멀어졌다. 도착하지 않는 긴 여행을 떠난 느낌이었다. 불안한 여정을 시작했다기보다는 안정적이었다. 사실 그런 마음이 들만한 시간조차 없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그저 신기하고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영겁의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졌다. 떠나올 때 내가 무엇을 했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원래 내 이름은 무엇인지 조금씩 잊어갔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텅 빈 머릿속을 경험할 때쯤에서야 눈 앞에 빛이 강하게 일었다.


눈부신 그 광체에 짧은 단말마와 같은 호흡을 한 뒤 양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리곤 느껴지는 편안함. 따뜻한 온도에 온 몸의 긴장이 풀렸다. 동시에 등줄기에 느껴지는 알싸한 한기가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것도 잠시일 뿐 이내 몸 전체에 온기가 퍼졌다.


담요를 덮은 듯 행복한 느낌이 충만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내 의식은 끊겼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내 기억의 마지막이다.


"우리 아가. 예쁜 우리 아가. 건강하게 잘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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