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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포 Nov 13. 2019

'속독'은 미친 짓이다

효율적으로 독서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책을 덮어라

한국인의 뜨거운 사랑을 받는 공부법이 있다. 한번 배운 내용은 결코 잊지 않는 천재를 제외하고, 학창 시절 이 방법을 잠시라도 사용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바로 ‘벼락치기’다. 


공부라는 것은 일정한 시간을 들이고 충분히 이해하는 과정이지만, 시험이나 제한된 시간 안에 성과를 내야 한다면 벼락치기보다 효율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온 경험으로 잘 알고 있듯 벼락치기의 효과는 잠시 뿐 결국 남는 것이 없다는 심각한 단점을 지니고 있다.


책 읽기에도 이런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독서법이 있다. 때로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며 유행하기도 한 방법이다. 흔히 ‘속독’이라고 불리는 독서법이다. 글자가 빼곡한 한 페이지를 단 몇 초 만에 빠르게 읽어 나가는 방법이다. 그렇게 하면 책 한 권을 읽는데 불과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속독의 달인들은 이미 TV 등 매체를 통해 여러 번 소개된 바 있다. 뛰어난 속독가 들은 대충 책장을 넘기기 바쁜 것 같지만, 읽고 나면 책의 내용은 물론이고 몇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냥 책장을 넘긴 것이 아니라 정말로 책을 읽었음에 틀림이 없다. 10시간을 들여 한 권을 읽는 나보다도 훨씬 정확하게,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독서법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런 속독법은 담배보다 해롭다고 말하고 싶다. 속독법을 주장하는 사람은 독서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우리는 스스로에게 왜 독서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독서의 사전적 의미는 ‘책 읽기’다. 책을 읽는 목적은 사람마다, 처해진 상황마다 다양하게 존재한다.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서, 재미를 위해서 등 크고 작은 목적들을 수없이 늘어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독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함'이 되어야만 한다.


인간은 우주와 같이 무한한 존재라는 말처럼 우리 안에 잠재된 무한한 가능성은 일상생활을 통해 확인하기 어렵다. 책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방을 열어보는 하나의 장치로서 기능하고 있다. 이처럼 소중하고 빛나는 가능성의 방들은 책이 아닌 우리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 즉, 책을 다 읽은 결과보다 책을 읽는 과정 중에 보고 느끼는 감정과 사유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책은, 우리 내면에 자리 잡고 있지만 아직 열리지 않은 가능성의 방으로 인도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담당한다. 독서는 책이 안내하는 여러 길들을 나 자신이 스스로 보고 판단하며 따라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독서라는 것은 책을 읽으며 얻는 지식과 정보보다 그것을 내면에서 깊이 생각해보는 사유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속독은 이런 사유의 시간을 줄여 책을 빠르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마치 좋은 음식을 먹되, 영양은 빼고 먹자는 말과 같다.


한 달에 3권의 책을 읽고 싶은데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속독법’은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단호하게 속독의 유혹을 물리치라고 말하고 싶다. 차라리 덜 읽는 것을 택해야 한다. 더 빨리 더 많이 읽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기를 바란다. TV에 나오는 전문가들의 ‘속독법’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방법일뿐더러, 의미 있는 독서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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