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하게 펼치고, 끄적이는 책과의 스킨십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내가 사회 초년생이던 10여 년 전에는 회사에 입사하면 전공이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마주치는 선배나 상사들에게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런 질문을 받았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책 전공했습니다”였다.
당시에만 해도 문예창작학과라고 소개하면 무예? 운동? 하고 오해하는 사람도 많았고, 이해했다 하더라도 “그럼 시 잘 쓰겠네~”라는 농담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 소설, 희곡 등 문학 전반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어느 한 분야에서도 재능을 꽃피우지는 못했다. 다만 책 읽는 습관을 배울 수 있었다. “문학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의 큰 축복이다”라고 하신 당시 학과장 교수님의 말씀은 지금 생각해도 '진리'다.
대학시절 한참 순수 소설에 빠져 읽고 모임에서 토론하던 일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교수님께서 내가 읽던 책을 보고 깜짝 놀라며 꾸짖으신 일이 있다. 나름 정독하며 빨간 볼펜으로 줄을 치고, 여백의 공간에 생각나는 것들을 메모도 해둔 터라 책이 매우 지저분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교수님께서는 본인의 책을 보여주시며, 자신은 책이 상할까 봐 끝까지 펼치지도 않고 조심스럽게 읽는다며, 책을 소중히 다루라고 말씀하셨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한동안은 조심스럽게 책을 다루기도 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의 방식대로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것도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하나의 유용한 독서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유독 책과 친해지지 못하는 독서 초보자라면 한번 따라 해 보길 권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일명 ‘책을 훼손하며 읽기’다.
당장 주변에 있는 책을 하나 잡고 펼쳐보자. 그리고 책에서 손을 떼 보자. 그러면 책의 표지가 원래 닫혀있던 자신의 형태를 유지하고자 기어코 덮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책을 읽고자 하면 시작부터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된다.
보통 책 한 권이 400페이지라고 치면, 400장을 넘기는 동안 끝까지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벌을 받는 것과 같다. 앉았다, 일어섰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책을 잡고 400페이지를 읽는 10시간 동안 벌을 서야 할까?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다.
책을 펼쳐 꾹꾹 눌러보자. 활짝 펼쳐진 채로 책상에 두고 두 손을 해방시켜주면 좀 더 편안한 자세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뭔가 나의 마음을 자극하는 문장이나 단어를 발견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볼펜으로 밑줄을 그어도 된다.(대여한 책의 경우 해당사항이 없다)
어떤 문장은 오래도록 잊지 않고 싶은 소중한 메시지를 전달해 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머리에만 담아두지 말고 책의 여백에 볼펜으로 메모해도 좋다. 그럼에도 뭔가 성에 안찬다면 동그라미와 별표를 마음껏 그려 넣어도 된다.
누구에게 물려줘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내 책이고,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한정된 기간 동안의 만남이니 격렬하게 애정을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다.
어떤 책들은 힘주어 펼치다 보면 제본된 부분에서 한 페이지가 찢겨 나갈 때도 있다. 그럼 테이프로 붙이면 그만이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있다.
날씨가 추운 겨울철, 책이 차가운 곳에 있었다면 난로 곁에서 책의 온도를 조금 높여주거나 엉덩이로 깔고 앉았다가 펼치는 것을 추천한다. 차가워진 책은 본드로 이어진 이음새가 얼어있기 때문에 활짝 펼치면 간혹 똑~ 하고 부러지며 두 동강 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테이프로 붙이면 그만이긴 하다.
아무쪼록 “책은 성스러운 것이야, 감히 내가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것이지”와 같은 거리감을 갖지 말고 훼손하며 읽어보기 바란다. 서로 투닥투닥 싸우며 애정을 쌓아가는 연인들처럼 독서 초보자에게 책을 훼손하며 읽는 것은 그동안 썸만 타고 말았던 책과 좀 더 가깝게 진도를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