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연체자_반납해 줘서 고마워
달마다 체크해야 하는 사서의 업무는 책 반납 연체자를 확인해 빠른 반납을 유도하는 것이다. 연체자 중에서도 집중해야 할 대상은 장. 기. 연. 체. 자. 대부분의 이용자가 '학생'으로 한정된 학교도서관의 특성상 어느 정도 연체를 해도 아주 빡빡하게 굴지는 않는다. 공공도서관이라면 어느 기준을 넘어서면 바로 이용자에게 연락을 취하겠지만 학교도서관이라 먼저 담임선생님에게 매달 공지를 한다. 공지 효과로 제 발 저려 반납하는 몇몇을 빼고 매달 공통된 장기연체자는 늘 적재되어 있다.
몇 달을 근무하다 보니 이곳의 연체도 패턴이 있는 듯하다. 1학기 5월 특정 기간에 대출이 집중되어 있고 그 시점부터 대량의 연체가 발생된다.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다음 기말고사 전까지 여유가 있는 오월의 봄날, 국어 수업이 도서관에서 진행된다. 수행이든 숙제든 아이들은 책을 빌려 읽어야 할 상황이 되고 우르르 각 반마다 책을 빌려간다. 그리고 착실한 소수를 제외하고 하루이틀 연체가 쌓여간다. 그렇게 해서 2학기 현재 대략 150여 일 정도 반납하지 않은 장기연체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패턴이었다면 작년, 재작년부터 이어졌을 500일 이상의 최장기 연체일 수가 설명된다.
고질적인 장기연체자들은 최종적으로 도서관 담당선생님의 일대일 대면 등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는 해결이 된다. 한바탕 장기연체자들의 늪에서 조금씩 빠져나가려는 찰나, 10월이다.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다음 기말고사 전까지 여유가 있는 시월의 가을날, 다시 도서관에서 국어 수업을 시작한다. 연체자의 악순환(?)이 다시 기지개를 켠다.
"반납함에 넣었는데요."
학생에게 연체를 물었을 때 흔히 듣는 대답이다. 도서관이 문을 열지 않은 시간에 도서관 바깥에 설치된 반납함에 넣었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서가에는 없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뿐만 아니라 그 주변 서가는 물론 혹시 청구기호가 헷갈려 잘못된 자리에 꽂혔나 싶어 아예 다른 서가까지 샅샅이 뒤져본다. 운이 좋다면 정말 다른 서가에서 찾기도 하지만 못 찾을 때가 많다. 날 잡고 서가를 샅샅이 훑었는데 며칠 뒤에 보니 그 책이 뻔뻔스레 제 자리에 꽂혀 있던 일도 있다. 지나치게 두 눈 부릅뜨고 찾다가 잠시 정신이 흐려진 틈에 지나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애타게 찾던 책을 찾아 삑- 바코드를 찍고 반납을 완료하면 그래도 그 찝찝했던 마음이 어느새 사르르 녹는다.
그래서 매달 똑같이 반납되지 않는 장기 연체책들은 달마다 목록을 출력해 다시 찾아보는 수고가 필요하다. 분명 없다고 확신했던 책들도 가끔은 도깨비장난처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발견되기도 하니까. 낮은 서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책등 하나하나를 훑으며 '이미 반납했다고 주장하는' 책을 찾는 일은 비록 몸은 고될지라도 때로는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즐거운 일이다. 그렇게 온 서가를 헤매다가 드디어 눈 빠지게 찾던 책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이 엄청나 이 책이 여기서 발견된 연유 같은 건 아무런 상관이 없을 정도다. 또 책을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서가 구석구석 뒤지다가, '이 책 재밌겠는데!' '오, 이 작가가 이런 책도 냈구나!' '박경리 작가의 토지 전권이 다 있네. 이 참에 한 번 싸악 읽어봐야 할 텐데' 같은 혼자 생각을 하다 보면 구부러진 허리의 수고로움도 견딜만하다. 오늘 나는 800번대 모든 서가를 이 잡듯 훑은 끝에 '이미 반납했다고 주장하는' 책을 무려 두 권이나 찾아냈다. 기분 째진다.
매달 연체자 목록은 학생들 위주로 작성하지만 사실 교직원의 연체도 만만치 않다. 다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경고도 주지 않는 것 같다. 도서관 담당 선생님이 아주 신참이니 나서기 쉬운 일은 아닐지 모르겠다. 어쩌면 아예 문제라는 생각조차 안 할 수도 있고. 이미 이 학교를 떠난 선생님에서부터 현재 이 학교에 계시면서도 몇 년째 반납을 하지 않고 있는 교직원이 부지기수다. 어차피 여기 오래 있지 않을 몸, 나한테 시키면 잘할 텐데. (ㅎㅎ) 그러니 오히려 아무리 늦어도 반납을 해주는 학생들이 오면 나는 인사한다.
"반납해 줘서 고마워."